기다림의 리스트

소비의 정서적 공허함과 기다림의 아이러니

by 꿈에서본시인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지 않아도, 그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있는 상태는 묘하게 정지된 듯한 불안을 준다. 마치 세상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감각. 손끝 하나로 무한히 이어지는 화면 속에서, ‘구매하지 않음’은 일종의 소외처럼 느껴졌다. 이 무료함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도는 지루함이 아니라, 나만 빠져나온 듯한 체계 밖의 어색함이었다. 사회가 정한 리듬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조용한 불안이었다.

사람들은 소비를 불만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도, 혹은 그것을 치료하는 수단으로도 말한다. 그 모순의 경계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사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세계’에 서 있었다. 소비는 필요의 충족이라기보다 존재의 확인이 되어버린 듯했다. 장바구니는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징표처럼 보였다. “이것을 원한다”는 행위 자체가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듯했으니까. 나는 그저 무언가를 고르고, 클릭하고, 도착을 기다리는 사이에서 조용히 안심했다.

‘무엇을 살까, 어떤 물건이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소비의 찰나적 기쁨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잠시나마 삶의 이유를 찾은 듯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지갑은 늘 현실적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손에 들어오는 세상에서, 유혹은 너무 가볍고 빠르다. 마음의 규제를 한순간만 풀어도, 계획된 질서는 무너진다. 정제된 욕망의 표면은 언제든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장바구니 대신 ‘찜한 상품’을 자주 들여다본다. 거기엔 결정의 부담이 없다. 장바구니는 마지막 관문처럼 결제를 종용하지만, 찜 목록은 조용히 머문다. 그들은 나를 향해 손짓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여기 있어요. 잊지 말아요.” 그 말이 주는 온기가 좋았다. 욕망이 아니라 기억처럼 남아 있는 물건들. 그들은 나의 불안과 함께 조용히 존재했다.

이 리스트는 내 안의 유예된 감정처럼, 당장 실현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클릭 한 번이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지우지 않는다. 어떤 날엔 ‘이 물건을 정말 사야 할까’ 고민하다가도, 또 어떤 날엔 그냥 그 목록을 스크롤하며 위안을 얻는다. 사고 싶지만 사지 않는, 그 미묘한 경계에서 나는 이상한 평화를 느낀다. 완전한 절제는 아니지만, 무절제도 아니다. 삶을 망치지 않을 정도의 망설임이 그곳에 있다.

소비의 욕망이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리듬이기도 하다. 다만 그 리듬이 통제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휩쓸린다. 식비만큼은 아끼지 않으려는 내 신념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고통스럽게 질병의 늪을 헤엄치고 싶지 않았기에,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관대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통제 없는 과소비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습관이라는 무서운 질서 속에 묶여 있었다. 계획된 루틴이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처음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던 날은 유난히 설렜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낯선 상업의 논리가 내 현관 앞까지 찾아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말 저 어둠 속을 헤치고, 나를 위해 오는 걸까?” 새벽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고요와 고독이 담겨 있었는데, 그 시간에 도착하는 택배는 묘하게 따뜻했다. 상자 하나가 놓인 그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았다는 이상한 확신을 얻었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새벽의 트럭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배송 기사들의 분주한 발자국이 들릴 듯하면, 나도 모르게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몇 번의 새벽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물건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향해 오고 있다는 단순한 감각이 주는 안도감이 달콤했다.

세상은 점점 ‘즉시성’을 요구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느린 기다림에서 위안을 찾았다. 장바구니의 물건이 배송되는 시간, 찜한 목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간, 그 모든 지연의 순간들이 내게는 삶의 여백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이 그 여백 안에서 자랐다.

나는 여전히 소비한다. 다만 이제는 알고 있다. 소비의 중심에는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불안의 대가이자, 존재의 확증이며, 때로는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다. 클릭 한 번으로 닿을 수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찜한 상품’들을 바라본다. 그 속에는 미처 결제하지 못한 내 욕망과, 아직 포기하지 못한 나의 여유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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