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과목

by 꿈에서본시인

올해도 이윽고 수능이 찾아왔다.

유난히 ‘수능 한파’가 찾아오지 않았다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공기와 마른바람, 그리고 예년보다 심하게 돌고 있다는 독감 소식까지, 매해 반복되는 계절의 감각이 그대로 돌아왔다. 공기는 긴장감으로 묵직했고, 거리에는 이른 새벽부터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는 부모들의 표정이 묘하게 비슷했다. 초겨울의 공기 속에는 언제나 ‘결과’라는 단어가 공기 중에 섞여 있다. 누군가는 첫눈보다 이 날의 냄새를 더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수능이라는 이름의 문 앞에 서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세상이 필수라고 정한 과목들 말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또 하나의 과목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오래전부터 그 답이 ‘사람’이라는 과목이 아닐까 생각해 왔다.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사람은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중요한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의 논리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마음이 얽히고, 관계가 꼬이고, 때로는 이유를 모른 채 오해와 단절이 생긴다. 수학처럼 공식을 세워 증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 사이의 감정은 언제나 미지수로 남는다. 변수는 예측할 수 없고,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다시 배우고, 다시 틀리고, 다시 이해하게 된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학교에서 ‘사람과의 관계’라는 과목이 있다면, 그 교과서의 첫 장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시작하지 않을까.

“당신이 이해받고 싶다면,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단순한 문장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빠르고, 사람은 각자의 사정 속에서 바쁘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온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 관계는 얕아지고, 신뢰는 닳는다.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말속에서 망설임과 두려움을 읽고, 그 안의 맥락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관계를 맺으며 배웠다. 어떤 사람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대화를 해도 끝내 닿지 않았다. 겉으로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마음의 언어는 달랐던 것이다. 그 차이를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가 무엇에 상처받는 사람인지, 어떤 말에 위로를 느끼는지,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는지.

그런 깨달음은 늘 늦게 찾아왔다.

대학 시절엔 성적이 곧 실력이고, 실력이 곧 나의 전부라 믿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성과가 곧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결국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건 결과가 아니라 ‘관계’였다. 어떤 말을 건넸는지, 어떤 표정으로 함께 있었는지, 그때의 공기 속 온도였다. 수많은 일의 성과보다, 마음 한편에 남는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나를 버티게 했다. 삶은 점점 더 계산적이 되어가지만,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감정으로 움직인다. 효율과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결국 관계는 감정의 질감으로 결정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진심, 그 불완전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람’이라는 과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암기나 속도가 아닌, 느림과 반복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많은 문제를 푸는 법을 배웠지만, 마음의 문제를 푸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지, 관계 속에서 내가 왜 자주 무너지는지. 이런 질문들은 교과서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 질문 속에서 만들어진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정답’을 찾으려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심리학의 언어를 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마음의 일에는 공식이 없다는 것을. 사람은 언제나 예외이며, 감정은 일정하지 않다. 어제의 미소가 오늘의 눈물이 되고, 오늘의 침묵이 내일의 용기가 되기도 한다. 관계는 늘 변하고, 그 속에서 나 역시 변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라는 과목의 본질은 정답이 아니라 ‘이해의 시도’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 태도 속에는 나의 온도가 있고, 나의 인격이 있다. 상대를 향한 존중은 말보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해진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배려가 가장 따뜻한 대화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종종 ‘성숙’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성숙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을 배워가는 일이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의 온도와 속도를 인정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때로는 상처받고, 다시 회복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애써 노력했는데도 오해가 남고, 진심을 다했는데도 멀어지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되뇐다. “그래도 배우는 중이야.” 관계는 완성되지 않는다. 늘 미완성의 상태로, 조금씩 이어지고 흩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성장한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마음이 아려올 때, 이전보다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사람이라는 과목에서 한 단원을 통과한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점점 더 일찍 경쟁 속으로 들어간다. 공부를 잘하는 법은 배우지만, 함께 사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성적이 인격을 대신하고, 협력보다 성취가 앞서는 시대다. 그래서 더욱 ‘사람’이라는 과목이 필요하다. 시험에 나오지 않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에 등장하는 과목. 한 번도 졸업할 수 없는, 평생의 학습이다.

만약 내가 선생님이 되어 이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표가 없습니다. 성적도 없고, 순위도 없어요. 대신 마음의 기록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친절, 그게 바로 점수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우리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간다.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이 쌓여 세상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삶은 덜 외로워진다.

오늘도 수많은 ‘시험’을 치르듯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배우는 일은 더 깊고 오래 남는다. 결국 인생은 문제풀이가 아니라 관계의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잘 푸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함께 읽어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이라는 과목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이는 여전히 이해하려 애쓰고, 어떤 이는 잠시 포기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수험생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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