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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Aug 20. 2019

기다림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 하진의 「기다림」


  “매년 여름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어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는 아이러니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 책은 유부남 의사가 시골 출신 부인에게 싫증을 느껴 새로 만난 -젊고 예쁘고 말이 통하고 도시 출신인-여자와 사랑에 빠져 염치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불륜 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남다른 몇 가지 특징들로 인해 파렴치한 치정에서 멀어진다. 

 우선, 이야기를 만드는 배경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배경이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 운동, 바로 문화대혁명이 중심부에 놓였다는 점이다. 그 당시,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쳤다. 정치적인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숙청당하고 있었다. 주인공 쿵린이 의사라고는 하지만, 그 당시 의사의 권위란 실상 별 볼 일 없었다. 무엇보다 쿵린과 만나 모두 군에 소속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따르는 처분은 가혹했다. 도덕적인 잣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그들의 사랑은 광포한 시대의 행정 소용돌이 안에도 갇히게 되는 것이다. 군의 이름으로 관리되는 그들의 사생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혼인하여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17년이 넘도록 내내 잠자리를 가져보지 않은 아내, 질책이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빠진 사랑, 그럼에도 나라에 증명받아 이혼하기 위해 17년 동안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내연의 여인, 그 여인의 굴곡진 기다림. 소설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돌던 중국의 한 시대를 배경으로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다림’이라는 것이 단순히 세 남녀의 복잡다단한 연애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중국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고 사랑스럽게 말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쿵린은 말한다.

 

 “쑤린에게 규정을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 이성적으로 생각해, 만나. 순간의 쾌락이 영원히 우리 삶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자유롭지 못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그들의 행위 안에 들끓는 욕망은, 자본주의와 자유를 열망하던 당시 사람들의 심리와도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인물 각각이 시대 상황이 뚜렷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이기도 하다.  


기다림의 작가 하진 - 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나 헤이롱지앙대학과 산동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보스턴대학의 영문과 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은 1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벌어지는 그들의 기다림에 대해서 쉼 없이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을 준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은 간결한 문장 덕택인 것 같다. 물론 그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섬세한 심리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묘사와 서술 그리고 대사의 적절한 배치가 글의 가독성을 탁월하게 만든다. 소설의 작가는 하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미국인이다. 그러나 그는 스무 해까지 중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 토박이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한 번도 모국어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문장은 대체적으로 간결하다. 복잡한 심리를 그리면서도 고요한 그의 문장들이 이야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대사의 비중이 많은 편인데 허투루 쓰지 않고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화려한 수식이나 시적인 묘사 대신 인물의 행위와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는 소설가 김연수를 통해 번역된 것이기에 더욱 유려하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하진의 다른 소설에서도 보이는 특징이다. 작가만의 문장 스타일이라고 여겨졌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그는 톈안먼 사건을 접하고 중국에 환멸을 느껴 미국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치열했을 중국의 한 시기를 엿본 자여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는 혼란한 중국의 현대사가 잘 묘사되고 있다. 본 소설이 소재의 진부함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시대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작가의 이러한 사연 때문이 아닐까. 소설은 1950~70년을 배경으로 하는 여타의 소설들보다도 현대적인 느낌을 느끼게 해 준다. 물 흐르듯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만 종국에는 마음에 커다란 공허와 쓸쓸함이 남는 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가진 진중한 무게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의 극한을 달리는 미국에서 공부했던 작가에게 중국 사회의 변모는 아마도 큰 화두로 남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본 소설에서 묘사된 인물들의 심리와 아이러니하게 맺어지는 소설의 결말은 사건의 바깥에 서서 누구보다 예리한 시선으로 사건을 내밀하게 통찰한 작가의 오랜 고민이 묻어나고 있다. 소설이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 바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심인물인 쿵린, 만나, 수위 중 어느 하나 중심으로 나서서 상황을 타파하려는 이는 없다. 우선 사건을 만드는 인물 쿵린은 의사라는 직업답게 지적인 탐구를 좋아하는 인텔리이다. “의사란 백정 놈들과 매한가지니까.”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의사란 직업은 권위가 없었다. 특히 군에 소속된 의사들의 월급은 직급에 의해 배당받고 그 액수도 짰다. 오랜 시간 공부해 주위의 존경을 받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그의 행동이 소심하기 짝이 없고 우유부단한 것은 아마도 그 당시 사회에 종속된 지식인들의 모습과 흡사할 것이다. 그는 자본과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사상이 담긴 금서들을 즐겨 읽는다. 만나와 연이 닿게 된 것도 그의 숙소에 숨겨진 금서들 때문이었다. 금서가 들키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면서도 그는 그것들을 읽는 걸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압제된 사회를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꿈꾸던 당시 젊은이들의 열망과도 닮았다. 그러나 행동은 그뿐. 그는 무력한 개인일 뿐이다. 항변은커녕 본부인인 수위에게도 이혼을 종용하지 못한다. 그저 시대가 변하고 법이 바뀌어 바라는 일이 성취하기만을 바라는 인물이다. 그는 고뇌하고 방황한다.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든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 능동적 자유라는 것은 애초에 없고 언제나 시대의 눈치를 보는 쿵린은 어찌 보면 기다림의 주체라기보다는 관찰자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무참히 강간당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편에 훨씬 더 어울린다. 그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맞추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차악만을 면하는 인물이다. 대혁명에 휩쓸려 무력하게 침묵하던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과 겹쳐진다. 그들이 정말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달콤한 과일을 앞에 두고도 목을 조금이라도 내밀면 예리한 칼날에 목이 베인다. 그들은 고개를 들고 그저 그 달콤한 과일이 자기 앞에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아주 오래, 속으로만 애타게 갈망하면서.


  만나는 다소 대범한 면이 돋보이는 여자다. 수위와 정반대의 인물로, 교육받길 원하고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신여성이다. 그녀는 쿵린이 가야 할 새로운 세상이며 목표이다. 활기차며 지적이고 당당한 그녀의 행동은 인물 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십수 년의 기다림과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만나를 지치고 늙게 만든다. 그렇기에 소설 후반부 쿵린과 만나의 기다림은 사랑이 퇴색된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이 되고 만다. 뜨거운 기쁨 대신 갈망하던 흔적과 감정의 잔여물만이 남게 된다. 쿵린 또한 그토록 바라던 만나와의 결혼 생활이 지치기는 똑같다. 만나는 아이를 낳고 몸이 부쩍 약해져 생기 잃던 모습은 온데 간데없다. 전에 없던 고함과 악바리 같은 모습만 남아 쿵린을 괴롭게 만든다. 이는 시장 경제가 자본주의가 되며 벌어진 중국의 현대 사회를 생각나게 한다. 급격한 개방으로 서구의 자본이 밀려오며 그들은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모든 것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흡수했다. 또한 불모지였던 땅의 개발로 졸부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중국 특유의 문화인 ‘꽌시(關係)’는 자본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이익을 움켜쥔 일부 기득권이 보여주는 배금주의는 점차 소시민들에게도 전이된다. 금서를 읽고 새로운 세상을 원하던 쿵린이 마주한 만나와의 갈등은 문화혁명이 끝난 중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줘 씁쓸하다. 쿵린의 발걸음은 다시 수위에게로 향한다. 수위와 딸이 사는 집 앞에서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는 쿵린은, 자본이 중국을 지배하기 전 사회에 대한 일종의 향수처럼 받아들여지게 한다. 물론 부패가 난무하는 사회의 시원은 뿌리 깊은 공산주의와 강력한 압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력한 시민은 그저 시대에 휩쓸릴 뿐 현재가 그들이 추구한 목표일 수는 없다. 농업이 기반이 된 혁명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를 대변하는 수위는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악법처럼 전해오는, 끔찍하게 작은 발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수위는 도시로 올라온 뒤에도 전족을 벗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자존심이나 자신만의 신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그렇게 성장해왔고 자신이 아는 세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개방 이전 농사를 짓고 소박하게 살며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나라의 관리에게 바치던 사람들처럼. 수위는 쿵린과 만나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핵심이 되는 인물임에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반전을 꾀하거나 드러나는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저 거기에 있다는 이유로 사건에 관계되는 인물이다. 느리고 때로는 미련해 보이는 그런 그녀의 행동은 오히려 사건을 전개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수위도 어쩌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위 또한 타인에 의해 정해진 자리에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수위에게는 당연한 삶이었다. 제가 맡은 몫을 다해나가면서도 그렇기에 수위는 골칫덩이다. 수위는 아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왜 자신이 떠나야 하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기에 남편은 저리도 자신을 불편해하는지. 우스꽝스러운 그녀의 외향도 미련하게 삶과 시간을 짊어지고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며 또 옳은 일이었기에. 


 “그 세월 동안 너는 몽유병자처럼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한 거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끌려가면서 말이야. 외부의 압력에, 너만의 환상에, 스스로 내면화한 규정에 끌려가면서. 좌절과 수동적인 태도 때문에 너는 잘못된 길로 간 거야. 자기한테 허용되지 않는 일들이야말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만나와 싸운 뒤 병원부지 언덕에 올라가 지난날을 회상하던 쿵린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신이 기다린 것은 대체 무엇이었냐고. 그리고 그의 내면은 허상을 잡으려 했던 지난 십 수년의 세월을 이렇게 정의한다. 병들어 죽어가는 만나를 내버려두고 다시 본래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쿵린의 마지막 모습은 첫 문장의 아이러니와 닮아 있다. 책을 덮고 나서 기다림에 대해 생각한다. 기다림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걸까. 초기의 그 열정적인 감정은 시간과 함께 스러진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기다리는 목표를 향해 함께 뛰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들의 기다림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랑이 퇴색되는 순간과 쿵린의 흔들림은 읽는 이로 하여금 주저하게 만든다. 누구에게 처연히 감정 몰입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가늠하며 이야기의 사이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기다린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다시 정의되는 일상은, 기다림을 끝낸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말을 건다. 기다림을 향한 의문이 여정이 재탄생되는 것이다. 중국 출신의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모국의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말해나가는 방식은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사랑이라는 사적인 사건을 확장해나가며 단순히 중국의 시대상을 떠나 기다림의 본질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의미, 그리고 선택이 좌우하는 현재에 대한 역설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는 아마도 계획하지 않고 써내려 간 것이 아닐까 한다. 소설 같은 실화에 감명받아 이야기를 써 내려갔지만 그가 이해한, 그의 시선이 침투한 모국의 잔해들이 시나브로 소설 안에 자리 잡아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폭넓은 사유를 가질 수 있게 한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쿵린과 수위 그리고 만나 모두 진정 살아있는 인물로 구체성을 띠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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