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경하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곳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언제나 다르다.
슈퍼컴퓨터, 병렬 컴퓨팅. 대학 시절부터 꿈꾸던 세계는 내게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첫 직장에서 마주한 팀장님은 띠동갑이었고, 사수 또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했지만, 그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기본기는 있었으나 응용하는 법을 몰랐기에 마치 연애를 책으로 배운 것처럼, 사수가 설명해주는 개념을 머리는 이해했지만 체득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피드백을 받고, 혼나고, 다시 처음부터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마치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끝없이 돌을 굴리는 삶이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었고, 학교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다’라고 알려주지만, 회사에서는 ‘왜 이런 실수를 했느냐’고 묻는다. 같은 개발자인데도 나는 너무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나는 공허함 속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은 어렵고, 나는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에 생애 첫 연애를 뒤늦게 시작했지만, 결국 1년 만에 이별의 길에 들어섰다. 그날 밤,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고 세상을 다 가졌던 것처럼 행복했던 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았다.
사랑도,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그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때 떠오른 한 가지 기억. "우리, 에펠탑을 보러 가자."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작은 약속이 떠올랐다. 이제 그녀는 없지만, 그 꿈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기에 그 순간, 나는 마음을 정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파리로 떠나기로. "이제 나를 위해 떠나자."
나는 비행기 표를 끊고, 불어 한 마디도 모른 채 가방을 꾸렸다. 그리고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어프랑스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석. 내 옆자리에는 중년의 어르신이 앉아 계셨다. 우연히 말을 걸었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가 이번에 해외여행을 혼자 처음 가봐요.”
그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챈 듯했다. 어르신은 파리 외곽에서 사신다고 했다. 우리는 비행이 끝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는 그와 함께 짐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공항의 유리벽 너머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저씨, 저기 이모님이 찾으시는 거 같아요!"
그제야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야."
나는 두 분과 함께 공항을 나섰고, 뜻밖에도 그분들이 내게 도움을 주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에펠탑은 봐야지?” 이모님이 운전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차창 너머로 처음으로 에펠탑을 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나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낯선 곳에서 만난 친절함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