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로서의 논리적 세계와 예술을 사랑하는 감정적 세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개의 시간축 위를 걷고 있다.
학창 시절, 내 생기부(생활기록부)에는 언제나 "웹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머"라는 장래 희망이 적혀 있었다. 그 꿈은 대학을 지나 마침내 현실이 되었고, 나는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개발자가 된 순간, 나는 꿈을 이뤘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첫 직장에서 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문제를 해결했지만, 동시에 내 부족함도 깊이 마주해야 했다. 하루 종일 코드와 씨름하면서도, 밤이 되면 머릿속엔 온통 해결되지 않은 오류들이 맴돌았고 언젠가부터, 나는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퇴근 시간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은 연애와 이별을 겪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나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단순히 에펠탑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하지만 진짜 만남은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모네의 그림 속에서 이루어졌다.
빛을 머금은 색채, 화면을 가득 채운 물감의 향연.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의 공허한 빈틈에 색이 번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일을 좋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나 역시 덕업일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삶이 변하자, 일에 대한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색과 선을 바라보는 감각이, 코드와 구조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기술과 예술. 마지막 글자는 같지만 너무도 다른 두 세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이제 풀어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