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끔은 찌질해도, 대체로 우아하게
J의 전남편과의 헤어짐을 결심한 그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이른 봄비로 벚꽃이 무너져 내린 2년 전 봄날, 전남편의 세 번째 외도를 알게 되었고, J는 이혼을 결심했었다.
“어느새 2년이 지났구나.. 오래 지난 것 같네.”
그녀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고 생각했다.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감정 변화와 환경 변화를 겪은 시기는 그녀에게 거의 없었으니까. 무던하고 침착한 성격이라 어지간해선 크게 동요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J는 혹시 우연히라도 전남편을 마주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종종 상상하곤 했다. 약속 때문에 이혼 전 살던 동네에 가기도 했고, 심지어 그와 자주 가던 맛집을 친구와 방문하기도 했었다. 전남편과 자주 갔던 평양냉면집인 을밀대에 방문해서 물냉면을 먹다가도, 혹시나 싶어 주변을 괜히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아니,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있지?’
그런 생각도 했지만, 가급적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마음 한 편으로는 2년이나 지난 지금이라면, 만나서 안부를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잘 지냈냐고, 아이들은 건강히 지내냐고, 이직한 회사는 그대로 잘 다니고 있냐고.
이런 마음이 미련인가, 혹시 아직 전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건가 걱정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저 작년에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을 때의 마음처럼, 이제는 그도 역시 건강히 잘 살고 있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이 크다고 느꼈다.
‘내가 어느새 이 정도 마음을 먹을 만큼 치유가 되었구나..’
J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 자기 자신이 신기했다.
J에게 지난 2년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매일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었다.
이혼을 했음에도 이혼 사유에 대해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사실 아주 힘들다고, 사실은 정말 괴롭다고 말하지 못한 그녀는, 찌질하게 혼자 울기도 하고 처량함에 하늘을 보며 공허한 마음을 억누르는 시간들을 견뎌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건 자신한테 못할 짓이라 여기며, 그 괴로움들을 어떻게든 혼자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상을 성실히 사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라 믿고 묵묵히 즐겁게 회사를 다녔다. 겁이 많은 성격임에도 새로운 관계와 만남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낯선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다.
그녀에게 혼자 산다는 건 수많은 낯선 환경과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성장이니 성숙이니 하는 거창한 것 말고, 그저 순간순간 닥치는 일들을 어떻게든 해결해 가며 버텨내는 과정.
어느덧 30대 끄트머리에 있는 J는 더 이상 힘들다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토로할 수 없는 나이라고 혼자 정해놓았었다. 어릴 때도 그런 걸 잘 못하는 미련한 성격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게 될 리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한 걸음이라도 발을 떼는 것뿐이었다.
“혼자 사는 거 어때요?”
누군가가 물어왔을 때, J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렇게 좋을 수 없어요. 진작 해볼 걸, 왜 이제야 했는지 후회될 정도예요.”
“하긴, J님처럼 살 수 있다면 나도 혼자 살고 싶어요. 젊은 나이에 자기 집 있고, 예쁘게 꾸미고 살고, 능력도 있고. 너무 이상적이에요. 요즘 이런 단어 안 쓸 것 같은데.. 골드미스? 그런 단어가 딱 맞아요.”
“크크. 골드미스라니. 갑자기 나이 확 든 것 같은 기분인데. 골드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사는 거 추천이에요 나는.”
좋기만 할 리가 없는 혼삶임에도, J는 다음에 또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망설임 없이 또 한 번 혼자 사는 길을 택하리라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오롯이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취향과 성향을 발견해 가는 것.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때로 실망하더라도, 결국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
J에게 혼삶은 가끔은 찌질해도 대체로 우아하고 멋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여행길이다.
그 길에 때로는 동행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만, 긴 인생길을 결국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건 자기 자신뿐이니까. 그 길에 가끔은 폭우가 쏟아지고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잠시 기다리면 결국 맑개 갠 하늘이 기다려줄 테니까.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즐겁게 걸어가 보기로 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응원해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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