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니워커 Apr 12. 2023

N잡러로 살게 되었습니다

9.굼뱅이도 잘 구르는 재주로 먹고살 수 있나요


J는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들으면 이게 무슨 재수 없는 소리인가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다재다능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잘 치고 발야구도 잘하고 미술에도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며, 왜 자기에겐 저런 재능이 없을까, 이게 다 유복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이야 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 재주가 없다 보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쓰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J는 공부에는 재주를 보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습관 덕분인지 학교에서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도 나름 재밌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똑똑하다든가 공부를 잘한다는 걸 일찍 깨닫진 못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공부를 훨씬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갑자기 친구들과의 성적 격차가 벌어지며 얼렁뚱땅 전교 1등을 하게 되었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제일 놀란 건 J 본인이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급격한 성적 향상 때문에 따로 그녀를 불러 상담을 할 정도였다.


할 줄 아는 게 공부뿐이던 J는 그 후 평범하게 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가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 그녀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지난 13년 간 다른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회사일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회사는 그녀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회사는 오래 다녀봐야 10년 정도일 텐데... 그 후 난 뭐 하고 살지?'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일수록, 아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갔지만, 당장 마땅한 대안이 없다 보니 불안감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이 온 순간은 이혼이었다. J 부부는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라 노후의 안정적인 수입에 대한 불안이 있는 건 똑같았지만, 그래도 둘이니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혼을 하게 될 줄이야. 그녀는 이혼 후 과연 자신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많은 시간 동안 고민했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말자고 마음먹고 J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었다.


J는 이제 싱글로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회사에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때마침 MZ세대에서 N잡이 떠오르고 있었다.


'N잡? 부업이랑은 다른 건가?'


J는 호칭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부업이라고 하면 머릿속에는 피자박스 접기, 인형 눈 붙이기 같은 일이 떠올랐는데, N잡은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물론 N잡러 중에 그 두 가지 일도 병행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N잡은 대체로 미래의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일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파워블로거, 공간대여업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N잡러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떻게 하면 그런 걸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상과 교육이 쏟아져 나왔다.


J는 하필이면 요령이 없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겁부터 내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유튜브를 한다든가, 파티룸 창업을 한다는 건 너무 위험이 큰일이 아닌가 싶어 시도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가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 글을 쓰는 거니까, 일단 글부터 써볼까?'


J는 결혼 전 네이버 블로그로 글을 꾸준히 쓴 적이 있었다. 알고리즘의 수혜를 잘 입었는지 갑자기 일일 방문자 수 천명이 생기기도 하며 광고 수입으로 몇 십만 원 정도 소소하게 벌기도 했었다. 심심하면 네이버 가입 카페에 글을 써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편이었다. 댓글로 사람들이 '필력이 좋으세요.', '글이 너무 재밌어요'와 같이 칭찬해 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서 더 신나게 글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한 뒤, 그녀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자신의 이혼 경험은 생생하게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남편이 바람피운 걸 알게 된 바로 다음 날, 사무실에서 울면서 그날의 일을 글로 써놓은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새삼 J는 자신이 왜 그랬었는지 생각해 봤다. 보통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힘들 만큼 충격을 받을만한 사건이었으니까. 아마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제3자의 입장처럼 바라보고, 어떻게든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고 한 게 아닐까 싶었다. J는 글로 그때의 지옥 같은 마음을 뱉어냄으로써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마음속 고통과 괴로움이 해소됨을 느꼈다.


J의 이혼 글은 예상과 달리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첫 글을 올리고 한 달 정도는 하루 조회수 100건도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다음 메인화면에 걸린 이후 구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글을 올린 지 1개월이 되었을 때 구독자가 100명이었는데, 글이 완결된 2개월 시점에는 구독자 2500명을 돌파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브런치북프로젝트 수상과 책 출간 제의, 기고글 제의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던 그녀는 이제 다른 의미로 급변하는 자신의 상황에 가슴 조이는 상황이 된 거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잘 풀린다는 건, 그 길이 본인에게 맞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J는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그녀의 계획과 달리 갑자기 글 쓰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건, 이게 자신에게 맞는 길이기 때문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타고나길 겁쟁이인 그녀는 여전히 선뜻 더 깊숙이 발을 내딛는 게 두렵다. 물론 회사생활을 계속하며 작가 일을 병행하는 삶을 한동안 이어가겠지만, 작가 하나만 믿고 다른 N잡은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그녀에게 어울릴 지경이다.


다행히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J는 이내 딴생각을 접고 회사일과 작가일, 두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요령 없고 우직한 성격이라 문어발식 N잡은 하라고 해도 못할게 뻔하다. 완벽주의자 성격 때문에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 하니까.


'그래, 일단 가보자. 내 재주가 떨어질 때까지는 어디 한 번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지 뭐.‘


이혼과 마찬가지로 가보지 않은 길. 그러나 이혼하고 나서도 자신을 믿고 살아온 경험치를 이미 획득한 J는 이전보다 두려움이 적다. 이 경험이 또 그녀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인생은 역시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조니워커 매장이 오픈한다니, 꼭 가볼 생각이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회 연재 예정입니다.

*구독 설정을 해두시면 알람이 갈 거예요. :)

*좋아요 & 댓글을 주시면 글 쓸 의욕이 생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자가 먹고 싶어서 부산에 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