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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Mar 27. 2023

피자가 먹고 싶어서 부산에 왔습니다

8.가끔은 충동에 몸을 맡기기, 마음 만은 부르주아처럼


지난겨울, J는 10여 년 만에 부산에 갔었다.


그녀가 10년 전 방문했을 때는 첫 직장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말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놀러 왔던 거라 오래 있진 않았지만 젊은 나이답게 해운대, 광안리, 서면, 태종대까지 겨우 이틀 사이에 열심히 돌아다녔었다. 그것도 대중교통을 타고.


하지만 이번 J의 여행은 10년간 늘어난 경제적 여유와, 그와 반비례해서 줄어든 그녀의 체력에 맞는 매우 정적인 여행이었다. 부산역 바로 앞의 호텔을 잡고 딱 그 근처의 맛집과 카페를 다니고, 피곤하면 중간중간 호텔로 돌아와 낮잠을 자다가 다시 나가는 식의 호캉스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일 만보 이상 걸은 걸 보면 정말 게으른 자의 여행이라기엔 무리였지만, J는 이 정도면 엣티제의 여행 중 정말 계획 없는 휴식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겨울 부산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 중 인상적인 건 이재모 피자라는 부산 유명 피자집이었다.  


“부산에서 피자..? 피자??”


J에게 부산 맛집을 추천해 주는 친구에게 몇 번이고 돼 물으며 다시 확인을 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국밥, 밀면, 회, 곰장어 등등 많은데 피자라니. 피자는 서울에도 수없이 맛집이 많은데, 심지어 사진을 검색해 보니 이탈리아식 화덕피자도 아니고, 흔한 배달 해서 먹는 미국식 피자처럼 생겼었다.


”아무리 맛있어봐야.. 치즈크러스트 피자는 다 거기서 거기 아냐? 맛이야 있겠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 맛? “


”아냐, 진짜 다르다니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어 “


“흠.. 속는 셈 치고 동선이 맞으면 한 번 가볼게.”


추천해 준 친구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J는 딱히 거길 가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중 저녁에 피자집을 갈 만한 타이밍이 생겼고 8시 30분이 라스트 오더라길래 ‘8시에 가면 줄 안 서고 들어가겠지?’ 싶어서 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그런데 J의 예상과는 달리 저녁 8시에도 몇 팀이 줄을 서고 있었고, 심지어 딱 그녀의 뒤에 온 손님에게 직원이 다가서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방 마감이라 여기까지만 받을게요.”


'와.. 조금만 늦었어도 못 먹을 뻔했구나.'


다행히 J는 5분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매장에 들어갔고, 고민 없이 가장 유명하다는 치즈크러스트 피자를 주문했다. 10분 만에 갓 구워져 나온 피자는 그녀의 짐작대로 평범한 외관이었다. 작은 사이즈인데도 치즈가 듬뿍 들어간 게 조금 다르다면 다르달까. 너무 기대하지 않고 한 입을 베어무는 순간,


“!!!!!!!”


J는 머릿속에 ‘美味(아름다울 미 맛 미)’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그 평범해 보이던 피자는 그녀가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 아니, 그녀가 상상했던 피자맛인 건 확실한데 몇 배나 맛있었다.


'아무리 임실치즈를 썼다고 해도 이렇게 치즈맛이 풍부하고 맛있을 수 있나? 치즈 말고 다른 비결이 더 있는 건가?'


너무 놀라운 피자맛에 감동하며 피자 한 판을 싹 비웠고, 그 여행 최고의 맛집으로 선정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후 J는 서울에 비슷한 피자집이 없나 열심히 찾아봤다. 임실 치즈를 쓴다는 피자집을 검색해 봤으나, 부산의 그 피자집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에 냉동 피자나 냉동 퀘사디아에도 치즈를 듬뿍 올려서 치즈 풍미를 추가하여 먹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재모 피자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우연히 부산에 갈 일이 생겼다. 사실 그녀가 꼭 가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J의 머릿속에 순간 이재모 피자가 스쳐지나갔다.


“이 참에 부산 가서 피자 먹고 맛있는 빵집 가서 빵도 사 와?”


그 생각을 한 게 금요일 밤 11시경. 부산에 가야 하는 건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이었다. 급히 고속철도 표를 알아봤으나 좋은 시간대는 모두 매진 상태였다. 보통 때의 그녀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테지만, 그 순간 J는 무조건 부산에 간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비행기로 간다!'


역시나 비행기 표는 있었고, 고속철도 비용에 비해 몇 만 원 비쌌지만 그만큼 더 빨리 도착하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짧은 1박 2일 일정에선 시간을 아끼는 게 돈을 아끼는 것 중 하나라고 J는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즉흥적으로 밤 11시에 비행기 표와 1박 머무를 호텔까지 예약을 완료하고 나니, 그녀는 왠지 이 상황이 우스워졌다.


‘아니 부산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간다고? 돈 펑펑 쓰면서?’


다음 날 아침 J는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제주도가 아닌 국내를 비행기로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기차로 갈 때보다 확실히 금방 도착해서 마음도 몸도 편안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김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아끼려고 택시를 탔다. 어차피 돈을 펑펑 쓰고 있는 여행인데 택시비 정도 추가된다고 큰 일 안 난다고 생각한 거다.


“어디로 가시나요?”


“중앙역 근처 이재모 피자로 가주세요.”


“피자집이요?”


택시 기사님이 잘못 들었나 싶으셨는지 다시 물으신다.


“네, 이재모피자요. 서면점 말고 중앙동 지점이요.”


3개월 만에 다시 방문한 이재모 피자는 과연 그 명성대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후 2시 점심시간 피크 시간대를 지나서 도착했음에도 매장 밖 건물을 따라 30여 명이 줄을 선 상태였다. 하지만 J는 지난번 방문 경험 덕분에 여유가 있었다. 회전율이 좋고 매장이 넓어서 금방 줄이 줄거라 생각했고, 역시나 20분도 안돼서 그녀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치즈크러스트 피자에 치즈토핑을 추가해서 주문했는데, 첫 입을 먹는 순간 이 여행은 옳았음을 직감했다.


“와.. 어떻게 지난번보다 더 맛있지?”


그녀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첫맛부터 마지막 한 조각을 먹을 때까지, 피자는 이번에도 J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피자를 허겁지겁 다 먹고 입을 닦으며 문득 J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피자를 먹자고 부산에 오다니. 크크. 부자가 된 기분이네.’


왕복 교통비도 비싸고 호텔도 저렴하진 않았다. 그녀는 이 짧은 1박 여행을 위해 수 십만 원을 쓰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돈을 쓰는 것보다도 신기했던 건 달라진 그녀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력이었다.

J는 결혼 생활 중에 고려해야 할 게 참 많았다. 남편, 고양이들, 양가 가족들, 가정 경제상황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보면 여행은 큰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충동적으로 1박이나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건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J는 전날 밤 부산에 오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몇 시간 뒤 정말 부산에 와있었다. 그리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 쩔쩔매며 망설였던 걸까.. 이런 경험이 오히려 많은 걸 느끼게 해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J는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생각을 덜 하는 게 더 좋은 결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걸 이번 부르주아(bourgeois) 부산 여행을 통해 느꼈으니까.


3월의 부산은 이미 개나리와 목련이 활짝 피어있었다. 몇몇 벚꽃나무도 만개해서 꽃잎을 흩날리고 있다.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어제의 J는 알지 못했지만, 오늘의 J는 이 아름다운 봄을 한껏 느끼고 있다.


꼭 치즈 추가를 해서 먹는 걸 추천한다. 이재모 피자집 사장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제발 서울에 분점을 내주세요..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회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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