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니워커 Feb 27. 2023

집 값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7.영끌족에게도 희망은 있나


J가 이혼 후 집을 매매할 당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며 금리가 꿈틀대던 시기였다. J는 분명 앞으로 최소 2년은 꾸준히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고, 고정금리 대출을 알아봤었다.


다행히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고정금리 상품인 적격대출이라는 상품이 있었고, 그 당시 변동금리보다는 약간 높았지만 충분히 저렴한 고정금리를 제공하는 데다가 최대 40년까지 상환기간을 늘릴 수 있어서 평범한 월급쟁이인 그녀에게는 맞춤형 상품이었다.


어렵지 않게 대출을 받은 이후, 바로 다음 달부터 계속해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고, 그녀가 받았던 고정금리에서 1.5% 이상 금리가 뛰는 걸 보며 J는

‘와.. 그때 받아두길 정말 잘했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고 했던가.


금리는 고정이니 안정적이었지만, 문제는 집값이었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상투를 잡은 격이었다.

집을 산 이후 몇 개월은 집 값이 계속 올랐지만, 해가 바뀌며 상황은 급변했다.


지금 집을 사면 바보라며, 영끌족들 비명이 들린다며, 미디어는 앞다퉈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집을 사지 않고 존버한 자가 승리했다며, 영끌족을 가엾이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영끌한 사람도 이 뉴스 본다고요!”

라고 속으로 외쳐도 어차피 그들은 그 따위 감정은 알 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더 신나게 J의 아픔을 기사화할 수도 있으리라.

 



집 매매는 참 이상한 소비라고 J는 생각했다.

말도 안 되게 막대한 돈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려는 상품을 딱 1번만, 그것도 대충 3~5분 정도 눈으로 훑은 다음 집을 살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집 값이 오르면 양도차익에 대한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집 값이 자신이 살 때보다 떨어져도 양도손실에 대한 위로금을 주지는 않는다.


그녀가 이 집을 살 때도 겨우 1번 방문해서 느낌이 나쁘지 않았기에 계약금을 넣었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좋은 점도 물론 많았지만 살기 불편한 점도 많았다. 이런 점을 살기 전에 미리 알기란 사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영혼과 대출을 모두 끌어모아 집에 올인한 그녀는 이번 쇼핑은 75점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금리인상이 될 걸 알면서도, 부동산 하락기가 올 걸 알면서도 집을 샀던 건 J에게 집은 남다른 의미였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는 소상공인의 자녀로 유년기를 보낸 그녀는 반지하, 식당의 골방, 단칸방을 전전하며 자기 집이 없어서 끝없이 이사 다닌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며 처음 자기 집을 갖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안정감은 J에게 큰 힘이 되었고, 이혼 후 모든 게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단 하나라도 안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집이었다.


‘난 지금 모든 게 다 휘청이고 있지만, 그래도 집 하나는 있잖아. 내 집 하나 있으면 그래도 최악은 아니잖아.’

J는 그렇게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며, 흔들리는 마음과 현실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두 발로 서서 버텨보려고 애를 썼었다.




어느덧 집값은 J가 매매할 당시보다 1억 가까이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도권의 모든 아파트가 그랬고, 오히려 J가 사는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적은 폭으로 감소했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 되었다. (사실 그녀의 정신승리에 가까웠다.)

 

‘그래, 어차피 떨어진 집 값. 위기는 기회라고 했으니까, 이 집 실거주 기간을 채우면 다른 더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갈까? 더 좋은 지역의 급매가 나오면 그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갈아타는 거야! 그 참에 대출을 줄이고, 남는 돈으로 다른 투자를 하는 게 어떨까?’

 

이사 갈 생각을 하니 J의 마음이 또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녀서 이제 진짜 당분간 이사 가지 말아야지 해놓고선,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하다.

이사할 때마다 내는 취득세, 이사비용, 복비 등등은 일단 모르는 척하며 그녀는 요즘 수시로 이사를 간다면 어디가 좋을지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영끌족에게도 봄은 올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J는 오늘도 묵묵히 집값을 벌러 출근길 지하철을 타서 부동산 앱을 열어본다.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달리기 좋은 큰 공원이 슬세권 내에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 물론 집값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조니워커의 우아하고 찌질한 혼삶>은 주 1회 연재 예정입니다.

*구독 설정을 해두시면 알람이 갈 거예요. :)

*좋아요 & 댓글을 주시면 글 쓸 의욕이 생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엔 층간소음을 낼 아이가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