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와 함께 어색한 아침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몰려들고, 나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간 안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터미널 근처의 어느 모텔이었다. 벽지에는 누군가 담뱃불을 짓이겨놓은 자국이 남아있었고, 침대 위에는 그녀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있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것인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은색 폴라티와 청바지는 어제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침대 위 그녀는 이불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 있을 그녀를 상상해 보았는데,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어젯밤의 기억은 국밥집 이후로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일까? 우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 증발해 버린 기억을 나는 어떻게 복구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그녀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상체가 보였는데, 그녀 역시 터미널에 내렸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아직 이불 아래에 있는 아랫도리는 어떤 상태일까?
“음……. 아저씨. 거기 있는 물 좀 줘요.”
“응?”
“물…….”
화장대 위에는 작은 생수 두 병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중 새것을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생수 뚜껑을 따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어제 기억 안 나요?”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그러니까, 우리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참나. 어제, 열 시쯤 됐을 땐가? 우리 각자 소주 네 병 정도 먹었을 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가 술 먹다가 왜 그렇게 울어요?”
“내가요? 내가 울었어요?”
“네. 그때까지는 실컷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도 뭐, 엉엉 울지는 않아서 쪽팔리지는 않았지만, 한번 울기 시작하니까 눈물을 멈추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녀는 생수 뚜껑을 닫고 몸을 침대 밖으로 빼냈다. 이불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다리에는 전날처럼 회색 레깅스가 그대로 있었다.
“하도 울길래, 한참 달래다가 여기로 왔어요. 여기 와서도 한 시간은 운 것 같아. 그래서 계속 울게 내버려 뒀다가, 나도 잠들었어요. 어차피 술도 더 먹지 못하겠고…….”
나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찬물에 얼굴을 씻었다. 얼마나 미친놈 같았을까? 얼마나 병신 같았을까? 그나저나 나는 왜 울었을까? 평소에는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녀석인데. 형 장례식 때조차 나는 울지 않았다. 형이 마지막으로 느꼈을 고독을 떠올릴 때면,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맴도는 것처럼 답답해지고는 했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운 거일까? 한심한 내 처지? 아들을 잃고 기력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 아니면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갇힌 채,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죽어간 형?
내가 얼굴을 씻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가방을 싸고 있었다. 화장대에 있던 가글 뚜껑을 열고 그녀는 안에 든 용액을 뚜껑에 따른 다음, 그것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볼을 오물조물 움직이며 가글을 했다. 그리고는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여자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머리를 정리하더니, 방에 널브러져 있는 흰색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방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집어넣었다. 그것을 묶어 구석에 놓고, 바닥에 있던 코트를 집어 손으로 두어 번 턴 다음, 몸에 코트를 걸쳤다.
“난 먼저 서울로 올라갈게요.”
가방까지 멘 여자가 말을 했다.
“어…….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래요?”
“아뇨. 지금은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제만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현관 앞 바닥에 앉아 자신의 워커에 발을 쑤셔 넣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말했다.
“어제, 술을 진탕 먹고 나니까, 뭐랄까, 이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것 같아요. 이게 숙취의 힘일까? 귀소본능이라는 건가? 아무튼, 나는 먼저 올라갈게요. 여기는 대충 정리했으니까, 나머지는 아저씨가 정리해 주세요.”
신발을 다 신은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내가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
“시우 씨.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말로 내뱉고 나니 뭔가 낯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남은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창피함 때문인지, 얼굴에 열기가 올라온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녀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모텔 현관문이 철컥하고 닫혔고 나는 멍하니 자리에 서서, 그녀가 떠난 그 공간을 바라봤다.
나는 방 안을 둘러봤다. 스마트폰은 내가 누워있던 바닥의 베개 옆에 놓여 있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자 화면이 켜지면서 ‘9:12’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숙취처럼 헝클어진 2박 3일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난 뭘 한 것일까? 모처럼의 휴가. 이곳은 갠지스가 아니고 그러기에 번뇌와 치욕을 씻어버릴 강물도 없다. 류시화 시인처럼 ‘하늘 호수’를 향해 갈 수 없었기에 선택한 템플 스테이. 그 끝은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숙취와 갈증, 그리고 부끄러움이었다.
일요일 아침. 몸을 겨우 일으켜 11시 서울행 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어느 휴게소에서 우동을 한 그릇으로 겨우 속을 달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가 죽은 듯 잠을 잤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휴가도 끝이 났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토요일 오전 내내 잠을 잔 후, 12시에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책장 위에 올려두었던 드럼 연습대를 꺼냈다.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회색 고무판 위에는 ‘Real Feal’이란 문구가 하얀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물수건으로 먼지를 잘 닦아낸 후, 어제 퇴근길에 사 온 드럼 스틱으로 천천히 고무판을 두드려보았다.
통통통. 반발력으로 고무판은 경쾌하게 스틱을 튕겨낸다. 처음에는 8분 음표로 천천히, 정확하게 고무판을 때리기 시작한다. 양손을 번갈아가며 고르게 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으로 메트로놈을 켜놓고, 소리에 맞춰 고무판을 때린다. 낮은 속도로 시작해서 메트로놈의 속도를 점점 올린다. 오래 손을 놓았지만 스틱을 다시 쥐니, 예전의 감각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군데군데 녹이 슨 기계처럼 처음에는 덜컥거리지만, 차츰 매끄럽게 고무판을 때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스틱으로 고무판을 때리면서 왼발 뒤꿈치를 박자에 맞춰 올렸다 내렸다 한다. 고스트 노트라고, 드러머들이 박자를 세는 방법이다. 오른발은 베이스 드럼 페달을 밟듯, 박자에 맞춰 앞꿈치를 들었다가 내린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연습이라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박자를 놓치거나, 드럼 스틱이 고무판의 가운데가 아닌, 조금 옆으로 벗어난 위치를 때릴 때도 있다. 고무판을 한 번 내려칠 때, 스틱이 고무판을 두 번 연속으로 때리는 더블 스트로크는 더욱 가관이다. 실력이 정말 맛이 녹슬었구나. 한창 음악을 할 때도 한계를 자주 느끼며 좌절하고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건 좌절보다는,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그저 음악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 미래나 재능 같은 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고무판을 박자에 맞춰 때리는 즐거움.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되면 실제 드럼에 앉아, 내가 즐겨 치던 곡들을 연습할 것이라는 설렘. 이 두 가지만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메트로놈을 보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들어왔다.
‘오빠. 잘 지내요? 전 시우예요. 최시우. 전에 템플 스테이 할 때 만난. 혹시 오늘 시간 되면 같이 술이나 한 잔 할래요?’
나는 얼른 스마트폰을 들어 메신저를 열었다. 메시지 창에는 곧바로 다음 메시지가 들어왔다. 흰색 토끼 같은 캐릭터가 양손으로 ‘따봉’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따봉? 너무 옛날 용어인가?
또다시 연이어 메시지. ‘생각 있으면 연락 줘요. 대신, 저번처럼 너무 울면 안 돼요.’
이럴 때는 잠시 기다렸다가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TV나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1분 정도 있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무려 1분이나 있다가…….
‘좋아요.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오늘은 내가 살게요. 우리 어디서 볼까요?’
메시지를 보낸다고 메트로놈을 꺼놓았는데도, 어쩐지 심장이 메트로놈처럼 쿵쿵, 박자에 맞춰 뛰는 듯했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 먼저 갠지스 강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짧은 삶 속에서 느꼈을 고통과 고독, 수많은 번뇌를 안고 가서, 그곳에서 그 모든 것들을 씻어 강물에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 책을 내게 알려준 것도 그였다. 사실 내가 인도에 가고 싶어 했는가 생각해 보면, 그곳에 정말 가고 싶어 한 것은 나보다는 그였다. 대학에 가면, 군대를 다녀오면, 취업을 하면, 내가 자리를 잡으면, 언젠가는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던 그. 그 방 안에서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기차가 수시로 연착하는 그 나라를 꿈꿨을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 나라를 꿈꾸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곳에 가닿을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그런 날이 올까?
알 수 없다. 그저 여전히 나의 상상 속 갠지스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이들의 꿈과 번뇌, 욕망을 안고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나 역시 그 강물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