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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포니아상도동 Aug 20. 2022

근황 질문. 나를 질문하다.

근황 질문 하나에 나를 들여다본다

코로나 탓에 사람들과 대면으로 만나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가계부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술자리 모임은 가족 외식과 별도로 기록해오고 있는데, 코로나 이전까지 한 달 평균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까지도 지출하였다. 코로나로 술자리 횟수가 줄어들었으니, 이렇게 된 거 더 비싼 술을 마셔보자는 호기가 '위스키'라는 취미를 만들었다.  평소 마시던 초록병 소주보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몇 십배 더 비싼 들인데... 그 맛이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는 못했다. 어쩌면 영영 깨닫지 못하는 편이 좋을지도........


그러다 어쩌다 오래간만에 술자리가 생겼다. 회사 사람 몇몇 이서 가벼운 근황 토크 나누는 캐주얼한 자리였다. 그간 화상회의로만 만나던 이들과 함께 앉으니 술자리가 흥겨웠고, 술은 달았다. 안주가 무엇인지 관계없다. 역시 술맛은 사람이다.


회사 이야기, 사회 이야기, 경제 이야기, 투자 이야기... 이런저런 화가 섞였다 엉켰다를 반복한다.

고기는 다 구었고, 껍데기가 파다닥 소리 내며 익어가던 즈음이다.


"갑자기 너에게 현금 5억이 생겼다고 치자.

단 투자 목적으로는 안되고, 꼭 물질적인 것을 사야만 해.  너 자신을 위해서.  

자, 너는 뭘 살래?"


"저는 고민 없이 바로 시계 살 겁니다. 요새 시계값이 장난 없어요. 롤렉스 같은 브랜드는 재테크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고, 패션 아이템으로도 그만이에요.  정말 놀랍게도 지금 같은 때에는 몇 억이 있다고 해도 살 수도 없어요. 예약주문도 받지 않고 물량은 한정적이라 프리미엄이 배로 뜁니다."  A 씨, 30대 남성


"부동산이죠!   아. 투자 수단은 안 된다고요?  아파트도 안 되겠네요?  전... 그럼... 자동차 살래요.  지난주 모임을 갔더니 전 직장 언니가 포르쉐 끌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 모델보다 조금 더 비싼 모델로 하나 사죠 뭐 하하하"  B 씨, 20대 여성


"비행기? 5억 원이면 비행기 살 수 있나? 비행기 타고 어딘가로 훌훌 떠나버리고 싶네."  C 씨, 40대 남성


"저는 이 분들이 말한 거 다 하나씩 살래요 하하하하.  그리고 남는 돈으로 에르메스 백이랑 샤넬 백을 살래요."   D 씨,  30대 여성


행복한 상상이 펼쳐지는 질문이다. 적어도 질문을 받았던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화려한 명품과 고급 스포츠 자동차를 타고 다닐 것만 같았다. 현금 5억 원.  매달 500만 원씩 꼬박 저금한다 쳐도 8년 하고도 4개월이라는 시간이 모여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큰돈이다. 현금 5억 원이 갑자기 생겼는데, 그것도 나 자신을 위해 전액 소비할 수 있다니...

다른 이들이 행복한 상상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 나눌 때, 난 자기 고민에 빠졌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웃자고 던진 질문인데 웃기지가 않다.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한 번 더 되묻는다.


'넌, 갖고 싶은 거 없어?'


.....


"자. 너는?  너는 뭐 살래?"

"흠...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는 잘 모르겠에요.  가지고 싶은 게 없는 거 같아요."

"엥? 정말? 말도 안 돼!  왜?"


아. 한 가지는 확실히 해두겠다. 필자가 저러한 것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월급쟁이 아빠다.


"글쎄요. 안 떠오르는데.... 마침 생각해보니... 무언가 꼭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 게  꽤 오래된 거 같아요. 예전에 진짜 가지고 싶었던 게 아이폰4였는데. 광화문 kt까지 찾아가서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 폰은 꼭 가지고 싶었죠. 그 이후 그만치 내가 뭘 갖고 싶다고 느껴본 게... 잘 모르겠어요."

"대박. 완전 아재예요. 아이폰4. 그게 언제 적이에요. 10년도 넘은 거 아닌가요?  10년 동안 쇼핑을 한 번도 안 한 건 아니죠? 하하하"  안 그래도 평소에 나를 잘 놀리던 B 씨가 핀잔을 준다.


"그러게. 5억이면......... 어어?? 껍데기 탄다."



나의 소비가치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무소유 주의자는 아니다.

필자는 물질이 주는 편리함을 환영하고 이쁘고 멋진 것을 좋아한다. 눈으로 전달되는 즐거움이 다른 감각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데 동의하며 심지어 달리기, 헬스와 같은 신체활동을 하더라도 '예쁜 옷'을 입으면 더 잘하게 될 것 같은... 미신도 믿는다. 위스키도 리델잔에 따라 마시고, 등산복은 파타고니아를 즐겨입니다. 옷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이쁘면 더 마음이 간다. 그렇다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나에게 이쁜 옷을 입는 것 vs. 이쁜 옷을 소유하는 것. 이 두 개는 서로 관련은 되어 있지만 다른 개념이고, 다른 욕구에 기반한다고 본다.  소유욕보다 체험욕이 더 강하다고 해야 될까?  심플하게 보자면, 무엇인가를 가져보는 것도 하나의 '체험' 일 것 같은데, 이러한 '체험'은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그 물질을 내 자산으로 소유하는 행위로는 의미를 덜 가지는 것 같다.  결국 나에게 소비라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가져보는 경험"이며, 그 경험의 종결이 반드시 "소유"로 귀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패션 명품들을 구겅할 때도 디자인적 요소로의 즐거움은 취하지만 그 특정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것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백화점에서 새로운 스타일 옷들을 피팅해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실제 구매하는 경우는 적다. 피팅하는 것이 재미인 것이지 그 옷을 구매하여 내 옷장에 넣어두는 것은 재미로 발휘되지 않더라.  



"소유"라는 "체험"을 결정짓는 의사결정모델

나만의 "지출의사결정모델"이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 같다.


IF 행복감(happiness) = 효용가치(return value) > 지불가치(expend value), then "Buy"


나의 '효옹가치'는 아마도... 이런 구조를 가질 것 같다.


H = V = ( f.v + d.v)

행복감 = 효용가치 = ( 기능성 또는 정량적 만족도 + 디자인적 또는 정성적 만족도)


흠.... 뭔가 부족하다. 기능적 편리함도 즐기고, 다자인적 세련됨도 좋은데... '지속성' '연속성'이라는 부분도 고려해야 될 것 같다.  1회성 즐거움은 별로니까.   


H = V = ( f.v + d.v) * t

행복감 = 효용가치 = ( 기능성/정량적 만족도 + 디자인적/정성적 만족도) * 만족 지속도


아하! 뭔가 더 설명되는 것 같다. 만족 지속도가 포함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체험할 수 있는지는 기능적/디자인적 요소만큼이나 중요하다. 물론, 만족 지속도를 더 길게, 아니 영속화하기 위해서는 '소유'라는 행위가 필요하다.  이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효용가치의 자연적 감소다. 효용가치, 나의 경우 기능적 그리고 디자인적 만족도는 영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소유를 통해 지속도를 아무리 오래 연장시킨다 하더라도 효용가치가 비례적으로 증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유로 인해 기대되는 효용가치는 지속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진정한 나를 위한 소비는...?  '경험'

"5억의 현금을 나를 위해서만 써야 된다. 무엇을 살래?"

가능하다면 나는 경험을 사고 싶다.  물질에 종속되지 말고 언제 즘에는 그 효용가치가 없어질 것을 상기하며 '소유'를 목적으로 두지 말고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싶다.  

손목 위에 빛나는 명품 시계도, 도로 위를 달리는 근사한 스포츠카도, 비행기도, 그 무엇도...  '경험'이 주는 가치를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소비 역시 하나의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이제 시즌오프 세일 품목 검색을 위해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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