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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데 오늘 Mar 19. 2022

바라나시를 꿈꾸는 도시

By 좋은데 오늘


바라나시를 꿈꾸는 도시

바라나시를 꿈꾸는 도시


인도를 떠올리면 갠지스(Ganges) 강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강어귀에 있는 영혼의 고향 바라나시(Varanasi)가 떠올랐다. 이는 인도를 사랑하는 시인 류시화나 여행 작가 한비야의 인도 여행기 속 바라나시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이 인도의 대표적 이미지가 돼버린 탓일 것이다. 


그래서 브라만의 종교의식 아르티 푸자(Arti Pooja)가 있고, 죽음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과 그날을 함께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바라나시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른 어떤 명상보다도 강렬한 통찰을 전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몇 주 전, 나는 그런 영혼의 성지 바라나시에서나 느낄 법한 감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것도 인도가 아닌 서울 인근의 어느 지역에서 말이다.


나는 그 무렵 장례를 치르면서 한 인생을 완성 할 장소 찾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수원 연화장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어딘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우리를 데려갈 운구 버스 기사가 잘 안내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그 시간도 다가왔고 운구 버스는 우리를 화장터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버스는 가기 싫은 아이처럼 투덜투덜 가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길이 막혔기 때문이었는데, 기사는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다른 길을 찾기라도 한 듯 커다란 핸들을 바삐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구불구불 달려 어느 도시에 접어들었다. 


나는 그 도시의 모양새를 보고 단번에 광교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 자주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화장터로 가기 위해 버스기사가 선택한 지름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광교 호수공원 옆으로 난 작은 길을 오르자 바로 길게 늘어선 운구 버스 행렬이 보였다. 그건 깜짝 놀랄 일이었는데, 그 수많은 버스 행렬도 예상 밖이었지만 우리가 가려던 화장터가 바로 광교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화장터는 도시에서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완전히 틀린거야 라고 일러주기라도 하듯, 수원 연화장은 광교 신대 호수와 태광 컨트리클럽 사이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광교 사람들이 호수 공원이라며 산책도 하고 애완견과의 휴일을 즐긴다는 그 신대 호수 바로 옆 말이다. 


도시와 화장터의 공존이 매우 생소하기도 했고, 화장터와 도시가 이렇게 가까이 있게 된 배경도 궁금했지만, 잠시 뒤 죽음도 삶의 일부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의 끝에서 인도의 바라나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광교 호수 주변의 아파트 단지나, 그 주변의 학교들 그리고 화장터와 그 안에서 죽은 이를 보내주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죽은 이들의 도시 바라나시에서의 화장 행렬과 겹쳐 보이도록 했고, 그렇게 그 도시의 풍광들은 어느새 바라나시의 풍경이 돼버리고 말았다. 


일렬로 늘어선 버스와 그 아래서 내려진 관들은 굽이치는 갠지즈 강처럼 쉬지 않고 흘러서 화구 앞으로 향했고, 뜨거운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화구는 장작더미 같은 불길을 토하며 쉼 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서를 따르는 엄숙한 장례 행렬들은 화구의 벽면을 따라걸으며 울다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화장을 하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바라나시로 둔갑한 광교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투명한 연기와 그 하늘 위를 가르는 구름이 하나 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망자의 영혼이 하늘 위에서 구름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광교란 지명은 태생부터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 지명마저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한곳에 모여있는 광교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나에게 인도에서나 느낄법한 서늘한 감정을 실어다 주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허무한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광교호수공원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서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매일 그들이 사는 길을 지나는 장례 행렬과 연화장 굴뚝을 타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저들이 바로 바라나시를 지키는 승려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들의 삶도 그들 만큼이나 경건할 것이다.


명을 다한 사람들이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는 도시, 광교의 노을을 바라보면서 경건한 마음을 품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바라나시를 꿈꾸는 도시, 광교의 그 늦은 오후 풍광이 잊히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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