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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데 오늘 Aug 26. 2022

여름이 싸우는 곳을 알고 있어요

By Emily Dickinson (337)


I know a place where Summer strives


by Emily Dickinson (337)


I know a place where Summer strives

With such a practised Frost —

She — each year — leads her Daisies back —

Recording briefly — "Lost" —


But when the South Wind stirs the Pools

And struggles in the lanes —

Her Heart misgives Her, for Her Vow —

And she pours soft Refrains


Into the lap of Adamant —

And spices — and the Dew —

That stiffens quietly to Quartz —

Upon her Amber Shoe —



여름이 싸우는 곳을 알고 있어요


에밀리 디킨슨



여름이 싸우는 곳을 알고 있어요

그 반복되는 서리에 대적해서요 -

여름은 – 해마다 - 데이지를 돌려보내고

짧게 기록합니다 “떠났어요”


그러나 남풍이 연못을 휘저으며

좁은 길 위로 힘겹게 나아갈 때면 -

맹세컨대, 여름은 그녀를 그리워하며 -

아련한 불평들을 쏟아냅니다


금강석처럼 든든한 쉴 곳으로 -

그리고 향신료와 – 이슬이 -

그녀의 호박빛 신발 위에서 -

수정처럼 조용히 굳어 갑니다 -




처서가 지나자마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집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여름의 퇴장을 독촉하고 있군요. 그 뜨겁던 여름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지키려 해도 그 자리를 가을에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 여름의 운명이지요. 에밀리 디킨슨도 그런 여름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나 봅니다.


더군다나 시인은 직접 기른 꽃들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할 정도로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살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여름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여름이 더욱 아쉽기만 했겠지요.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데이지꽃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이 시는 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여름의 입장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시입니다. 계절에 대한 시로써 그 표현력에 감탄이 나옵니다. 여름을 여성으로 의인화하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남풍과 함께 가을에 맞서는 의연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잘 훈련된 가을과의 싸움에 대비해서 그녀가 사랑하는 데이지를 먼저 보내줍니다. 그리고 그녀를 그리워합니다. 마치 적들이 몰려오는 전쟁터에서 아군을 먼저 후퇴시키고 전선을 사수하는 영웅과 같은 모습으로요. 그들도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 사선을 지켰을 것입니다. 여름도 이런 의연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한편 그런 운명에 불평을 쏟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름은 가을에 대항하지만 결국 겨울과도 같은 죽음을 맞게 되지요.


이 시에는 여러 가지 의견의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스탠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는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지게 만드는 시인의 단어 선택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가을을 표현한 것인지, 겨울을 표현한 것인지, 또 밭에서 일하던 시인의 신발이 잡초와 흙덩이에 엉망이 된 모습을 표현한 것인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각자의 상상력에 기초한 의견만 있을 뿐이죠.


이런 이유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녀의 시를 바라봐야 하죠. 이게 에밀리 디킨슨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난해하고 중의적인 표현, 다양한 단어 선택, 수수께끼 같은 문구. 이 짧은 시 속에 수만 가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인의 마법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가을을 맞이하는 여름의 비장함에 푹 빠져보았습니다. 내가 여름의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한다면 이처럼 초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여름의 초연함은 삶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도 반복되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우리가 모르도록 숨겨버린 신의 지혜가 여름에만큼은 통하질 않았군요. 반복되는 운명에 불평을 쏟아내는 여름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어떤 진실은 모르는 게 약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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