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사회학이 필요한 이유
올해 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취재를 위해 베이징에서 약 25일을 머물렀다. 오미크론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라 그 어느 때보다 방역 기준이 강화된 시점이었다.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단은 물론이고 각국에서 온 올림픽 관계자와 취재진들 모두 CLS(Closed loof system)를 적용해 사실상 거대한 규모의 코호트 격리 생활을 해야만 했다. 모근 올림픽 경기장과 취재진 및 관계자들이 머무르는 숙소만 셔틀버스나 미리 지정된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정해진 숙소 외에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나 먹거리가 풍성한 중국에서 배달 음식조차 반입이 불가된 상태이니 주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즉석음식을 먹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너무나도 값비싼 맛없는 호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대부분 한 달 이상 장기 출장자들이다 보니 먹는 음식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지만, 중국 당국은 끝내 취재진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았다. 대신 중국은 올림픽 관계자들이 상주하는 IBC(국제방송센터) 내 거대한 식당을 만들었고 상당부문을 로봇이 직접 요리해 제공하는 로봇 요리 시스템을 선보였다. 비대면으로 주문이 요청되면 로봇이 직접 준비된 재료를 볶거나 끊여서 접시에 담고 천장의 레일을 통해 주문자가 앉아 있는 자리까지 음식을 배달해 주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IBC 내에서 사람이 직접 해주는 음식보다 로봇의 음식이 월등히 맛있었다. 맛도 가격도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로봇 음식은 꽤 흥행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작정하고 로봇과 무인시스템을 활용하는 듯했다. 비대면을 이유로 호텔 내부는 배달 로봇이 계속해서 돌아다녔고, 코로나 방역 시스템, 무인결제 시스템 등의 비대면 시스템이 출입구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하고 사람들은 최종 판단을 하거나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재밌는 풍경은 저임금 노동시장이 활성화된 중국에서 저임금 노동 분야인 청소에 로봇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올림픽 조직위는 IBC 내 넓은 로비를 관리하기 위해 3종류의 청소 옵션을 선택했는데 이는 무인 청소 로봇, 사람이 운전하는 청소차, 기존 청소도구만을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이 3가지 옵션이 한 번에 운영되면서 IBC 내에서는 사람과 로봇이 어울려져 청소를 담당하는 진풍경을 펼쳐졌다. 로봇은 주로 고위험, 고정밀, 고비용 분야에 적용되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성능이 좋아져 가는 AI와 센스와 부품 등의 하드웨어적 기술이 저렴해지면서 저비용, 저숙련 서비스 노동 분야에서의 적용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2022년. 현대 사회에서 AI와 로봇은 생각보다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자율주행자, 키오스크, 자연어 처리를 통한 AI 상담, 무인 서비스 로봇 등 이미 익숙해져 가는 AI 기술이 인간 생활에 점점 침투되고 있다. 문제는 상당부문이 저숙련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 기반 기술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목전에 있는 경우 AI를 기반으로 한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인간의 부족한 노동력을 로봇이 대신하게 되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을 인간을 탐욕과 함께 봐야 한다는 여러 학자들의 말을 빗대어 보면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대부분의 AI 알고리즘은 현재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성능을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는데 그 재료인 빅데이터가 갈수록 인간의 탐욕과 편향이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미 AI가 내리는 명령을 인간이 그대로 수행하는 내비게이션, 배달 주문 시스템, 택시 승차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인 판단을 인간에게 전달하고 있고 소위 돈이 안 되는 결정과 소수의 판단은 철저히 배제한다. 숫자를 기반으로 한 AI의 판단은 80%를 살리기 위해 나머지 20%를 죽이는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20%를 살리기 위해 나머지 80%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이는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노동 생태계가 자본의 효용성과 편리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인간사회는 때로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판단과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봇은 ‘인간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시모프의 로봇 원칙은 로봇이 인간의 그 어떤 가치라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는 노동시장에서 로봇이 그 어떤 이유로든 인간의 생활에 해를 입히게 되는 일은 철저히 막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국가는 로봇이 철저히 인간을 보조하고 인간을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함을 기술혁신 단계에서부터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또 싱귤래리티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사회적 시스템의 설계가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는 기술의 편리함에 도취한 나머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게 될 수 있음을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편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현존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학습의 결과는 인간을 결국 기계에 종속시키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러브, 데스+로봇“의 한 에피소드(세 대의 로봇:출구 전략)에서는 인문학적 성찰이 없는 기술 상위시대 인간의 종말을 연구하고 있는 로봇들의 평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후드티를 입고 있는 기술장자(기술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조금만 사회성이 있었다면 다들 살아남을 수 있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