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로 가는 길
# Prologue 마쓰야마로 가는 길.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참 곤란한 질문이다. 40대 중반 정도 되면 그럴싸한 취미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딱히 떠오르는 취미라는 게 없다. 그나마 좀 있어 보이려고 스쿠버다이빙을 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1년에 어쩌다 한 두 번 가는 게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반성한다. 그래도 설마 뭐 하는 정도는 즐겨하는 게 있을까? 취미라는 게 뭐가 됐든 즐겨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나의 즐김을 되새기다 보니 그래도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저가 항공권 찾기.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일상의 일탈을 꿈꾸며 항공사 어플을 들어다 보고 있으니 과연 취미라 칭할만하다. 그러다 그분이 강림하시면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날짜에 가는 게 아니라 가장 싼 항공권을 발견할 때 가게 된다. 이렇게 가성비 항공권을 한 번 끊고 나면 다음부터는 제 가격의 항공권에는 도저히 눈이 가질 않는다. 생소한 지명의 일본 마쓰야마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2월의 무료한 오후 어느 날 취미생활 중에 발견한 마쓰야마행 저가 티켓으로.
마쓰야마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 섬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도고 온천 정도만 알려진 곳이지만 여행 잡지 론니플래닛이 2019년 7월 아시아특집으로 다룰 만큼 매력적인 여행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지형적으로 본섬인 혼슈섬이 북쪽과 동쪽을 후쿠오카가 있는 큐슈섬이 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상대적으로 태풍의 영향을 덜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시코쿠 섬 북쪽면에 위치한 마쓰야마는 섬을 관통하는 시코쿠 산맥이 남쪽 가림막 역할을 하기 일본의 혹한 폭풍을 피해 조선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대부분의 배가 마쓰야마 인근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딱히 반가울 것 없는 장소이나 역사적 배경을 알아가는 것 또한 여행의 큰 의미가 아니겠는가? 어찌 됐던 생소한 곳. 그러나 한 번 정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곳이 바로 마쓰야마다.
여러 가지 위시 리스트를 늘 달고 살지만 정작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직장인에게는 어느 하나 쉽지가 않다. 그중 하나가 자전거 투어다. 자전거로 제주도 한 번 돌아보겠다는 게 벌써 10년째다. 보통 뭔가 생각하면 크게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데 귀찮은 일이 하나둘씩 추가되면 하염없이 미루기도 한다. 우선 자전거가 있어야겠고 자전거로 제주섬을 한 바퀴 거뜬히 돌 수 있을 만큼의 체력도 필요하다 보니 자전거 투어는 늘 후순위 위시리스트가 되곤 했다. 사실 마쓰야마로의 급작스런 발권은 마음 깊은 곳의 나만의 부채에 따른 결정이었다. 마냥 항공권이 저렴해서는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시코쿠 카르스트의 장엄한 풍경과 연이은 해안대교를 따라 펼쳐진 시마나미 사이클링에 대한 로망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레 발권 클릭으로 이어져 버렸다. 일어난 일은 늘 옳은 것이라 했던가? 발권완료와 함께 자전거 투어 전문인 동기에게 톡을 넣었다. “형! 마쓰야마라고 들어봤는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3년 넘게 해 오고 혼자 이미 여러 군데 자전거 투어를 다녀온 동기 역시 일상의 무료함을 깨울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마쓰야마라는 지명에 혹한 동기는 앞뒤 크게 따지지 않고 발권에 동참했다. 그러고 보니 같이 갈만한 선배 두 명이 더 생각이 났다. 다들 비슷한 일상들이라 역시 큰 고민 없이 동참했다. 4명의 여행이 좋은 건 어딜 가나 꽤 합리적인 비용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나 낯선 지역의 식당에서는 4명 한 상의 힘이 극도의 위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중국집에서 2명은 기껏해야 짜장면에 탕수육이지만 4명이 한 상에 앉으면 양장피, 팔보채 등 최소 2~3개의 요리를 맛볼 수가 있다. 일본은 주로 1인 1식의 음식이 나오긴 하나 이것저것 같이 맛보려면 아무래도 4인 한 상이 가성비가 좋다. 렌터카 역시 4인이 비용을 셰어 하면 경비가 확 줄어들고 숙박도 마찬가지다. 물론 4명의 여행 성향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효율성 높은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번여행의 멤버들은 한 회사에서 동고동락하면 살아온 지 15년은 훌쩍 넘은 사람들이라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 딱히 걱정할 건 없었다. 다만 운동을 제대로 안 해서 체력이 따라줄지가 관건이었다. 아직 4개월이나 남았으니 그동안 열심히 타기로 굳게 결심하고 단톡방을 만들었다. 단톡방의 제목은 ‘마쓰야마라고 들어봤는가?’. _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