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재밌는 영화를 봤다. 사실 엔딩의 여운이 꽤 강렬해 마냥 재밌다고만 설명하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특히 당연히 전 지구인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리라는 진부한 예상을 보란 듯이 파괴해 버리는 감독의 돌직구는 마음 한편에 확실히 서늘함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아랫배 볼록 나온 꼰대 교수 디카프리오는 내 머릿속에 그나마 남아있던 타이타닉의 미소년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믿고 보는 배우 메릴스트립은 트럼프가 트위터로 할리우드에서 과평가 된 배우라며 자신을 폄하한 걸 통쾌하게 복수하듯 트럼프의 그럴법한 광기를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아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할리우드의 초신성 티모시 샬라메의 어색한 러브라인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캡틴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의 깜짝 출연과 슈퍼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고컬 콘서트 장면은 마치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를 탄 듯하다. 할리우드 스타 찾기만 해도 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의 탐욕이 세상을 어떻게 멸망시킬 수 있는가를 똑똑히 목도시켜주면서 디카프리오 가족의 마지막 만찬에는 동시대 같은 인류로서의 동질감까지 느끼게 된다.
돈룩업 메인 포스터.
이렇게 시원한 영화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구글 검색은 돈룩업의 출연진만큼이나 감독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내놓았다. 애덤 맥커이. 1968년생. 예능 PD 출신의 영화감독. SNL의 Head Writer로서 2년간 수많은 SNL 스케치 코미디의 각본을 섰다. 역시 돈룩업이 SNL의 풍자와 오버랩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어라? ‘빅쇼트’? 무주택자인 내가 한국의 부동산 상황에 빚대어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을 매우 질타하며 봤던 그 ‘빅쇼트’가 애덤 맥커이 감독의 전작이었다니. 게다가 돈룩업은 기후변화의 경고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현재 인류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만들었다니 블랙코미디의 스타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어려운 이야기를 이렇게 통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 뭐 하나 빠짐없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이렇게도 전달할 수 있다니 그 또한 참 놀라운 표현력이다.
돈 룩업에서 제니퍼 로렌스 역의 대학원생과 그녀의 지도교수인 디카프리오는 어느 날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 오고 있음 발견한다. 남은 기간은 6개월. 언론을 통해 혜성 충돌의 위험성을 전파하지만 모두가 듣고 싶은 정보만 듣고 해석한다. 결과는 인류의 종말. 이 영화적 맥락을 현실에 대입해 보자. 2021년 3월에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서의 최종 결론은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에 의함이 명백(unequivocal)하다.’고 발표했다. 인류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의 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고, 그로 인해 기록적인 무더위, 홍수, 가뭄, 해수면의 상승이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돈룩업이 6개월의 경고였지만 AR6는 수십 년 혹은 그보다 빠를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언론과 세계 각국의 정부들의 대응은 영화와 지독 시리도 닮아 있다. 10월에는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개최한 cop26(기후변화 당사자 회의, 26은 26번째 회의)은 결국 국가 이기주의의 끝을 보여주고 끝났다. 20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COP26을 ‘블라블라블라’만 하다 끝났다고 비난한 것 역시 뚜렷한 대책 없이 모호한 합의만으로 또 시간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체와 구속력이 부족한 넷제로(넷제로와 탄소중립은 다른 의미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전체,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에 대해서만인데 온실가스 농도 중 이산화 탄소의 비율이 너무 높아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에 대한 허무맹랑한 선언들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가장 큰 미국과 중국의 미온적 대응, 새로운 기술로 다음 경제패권을 이어가려는 유럽의 야망 등이 기후변화 위기에 대하는 전형적인 각국의 자세들이다.
전 지구적 온도 변화 시각화. 빨간색 부분이 약 150년 전인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
문제는 혜성이 충돌하고 난 뒤에 후폭풍과 유사한 영향을 미치게 될 기후변화에 따른 엄청난 위력이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과 저소득층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적응력과 과학기술은 전 지구적 온도 상승에 분명히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적응은 시스템 내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시스템 밖의 사람들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자연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기억 남는 장면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 이선균의 가족과 송강호의 가족의 극명한 대비였다. 부유한 가정 즉 시스템 내의 가정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각, 가난한 자들, 시스템 밖의 사람들에게는 온 집안이 더러운 물에 잠겨 한 순간에 이재민이 되고 만다. AR6가 확실히 경고하는 건 이런 기록적인 폭우, 기록적인 무더위, 기록적인 해수면 상승이 예전보다 훨씬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전 지구적 온도 상승 시나리오. 출처 : AR6
영화 듄에서는 60도의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물로서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슈트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로 밤에만 활동한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의 사람들 역시 적응해 살아가겠지만 60도의 더위 속에 지금의 생태계가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만약 지금과 같이 아무런 변화없이 2050년이 될 때 평균4도까지 온도가 상승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생태계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이 도래할 것임을 AR6는 경고하고 있다. 물론 이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돈룩업에서 보아왔듯이 인간의 탐욕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최악을 향해 움직인다.
영화 '듄' 사막용 슈트. 호흡, 대소변, 땀 등 인간이 지닌 모든 수분을 재활용하고 체온 유지를 가능하게 해 섭씨 60도 고온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함.
물론, 지난 친 경계는 쓸데없는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 비용 역시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몫일 수 있다. 극단적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이 금방 지구가 망할 것 같이 말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하지만 AR6는 분명히 경고한다.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다. 돈룩업의 어처구니없음이 현실세계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