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ny Kim Jun 13. 2018

여덟 자리 숫자.

고교자퇴, 창업, 그리고 월 천 이백.

배탈이 난 일이라고는 손에 꼽는 내가 이틀째 헛구역질을 한다. 꼬일 수 있는 모든 일이 겹치고 꼬이더니, 속도 같이 꼬여버린 것 같다. 오늘, 주말 새 꼬였던 모든 일이 다 수습되기는 했지만, 꼬인 속은 아직 그대로다. 지난 금요일부터, 화요일인 오늘까지, 하루를 일주일처럼 살아야만 했다. 잠도 얼마 못 잤다. 진행하던 일들이 데드라인에 턱끝까지 닿도록 지연된 것에 내 책임은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래. 난,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책임을 다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결정과, 숨도 못 쉬는 타이트한 일정과, 평정을 잃게 만드는 화나는 일이 수없이 생길 거다. 이슈는 어디에서나 터져나올 것이고,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은 늘 답답할 것이며, 입금은 항상 늦겠지. 사업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이 아니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도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이다. 맨몸으로 서프보드에 올라 큰 파도를 타는 것처럼. 끊이지 않는 긴장감과 불안함과 의문들을 즐겨야 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로 의미를 만들어내야하는, 그런 길이다. 존경하는 멘토님의 말이다. 어쨌든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이다. 


올해 초, 바람이 매서웠던 날에 참 존경하는 선배 디자이너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 그 선배는 1인기업가로 일하며 배운 것들을 정리한 시리즈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었다. 내용도 풍성하고, 덕분에 배운 것도 참 많았지만, 사실 “월 1천만원”이라는 키워드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그 글을 보며, 2년 안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생겼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내게 큰 프로젝트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심, 2년 안엔 안 될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꿈은 크게 꿔야지 하면서도, 안 될거라 믿었다. 패배감에 뒤덮여 있었다. 참 웃기게도, 지난 달에 천이백만원 어치 계약을 따 냈다. 2년도 모자랄 거라고 생각했던 목표를, 반년만에 이뤄 냈다. 이뤄 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들 내가 이뤄낸 일이라 얘기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저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손끝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오롯이 내 공은 아닐 테니까. 



스물 셋, 월 천이백



아직 돈이 다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 돈이 다 내것도 아니고, 이 실적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치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드디어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한 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니, 그간 고생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먹먹했고, 복잡한 마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열여덟의 여름부터, 스물 셋의 여름까지. 꽉 채운 5년이 걸렸다. 그래, 그저 고생했다 격려해야지. 그간의 일들을 달리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 보여지는 이야기보다 나만 아는 이야기가 더 많다. 안 되는 일정에 끼워맞춰 모든 것을 성공시켜야했던 뒷이야기 말이다. 컨펌이 늦어지는 클라이언트, 겹치는 일정, 점점 늘어나는 upfront cost, 생각지 못했던 이슈들, 미숙해서 일어난 실수들, 두 번의 제주도 출장. 매일 걸고 받는 수십 통의 전화와, 쌓여가는 이메일과, 회계처리와, 서류작업과, 끊임없는 수정사항. 스멀스멀 올라오는 몸살을 찍어누르며, 서너 시간찍 끊어 자며, 밥을 걸렀다는 사실조차 생각해야 떠올랐던 날들. 


그래 참. 고 몇 달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이리도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사실, 설정했던 목표에 다다르고 보니, 성과에 대한 만족보다, 앞으로 계속 잘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걱정한다고 나아질 건 없지만, 부족한 부분과 더 나아져야 할 부분에 시선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겪어보니 그렇다. 자신있게, 호기롭게 덤빈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았으니까. 젊다못해 어린 것이 사업한다고 뛰어댕기는 게 여간 고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쌍욕을 후련하게 뱉고, 맥주를 들이키고, 다시 일을 잡으면 그만이다.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무언가를 찍고, 만들고,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나 좋은 일이 남 좋은 일이기도 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사업을 시작하며, 나는 단지 누군가의 매출을 올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내가 꿈꾸던 목표를 결국 이루어낸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가 꿈꾸는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 품에 안겨줄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난, 그래서 이 일을 한다. 어쨌든 손에 큰 돈을 쥐어보니, 별 것 없다. 정말 별 것 없다. 한 번 버는게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큰 돈을 버는 방법이야 다양하지만, 멋지게 버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넓게 보고, 더 높게 생각하고싶다. 큰 성공보다, 한 사람의 꿈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항상 되물어야 할 말인 것 같다. 



날이 덥다. 대만에서의 추억이 생각나는 날씨다. 

프로젝트 끝나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할까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래시장이 사라지는 진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