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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y Kim Mar 16. 2016

시크한 농부들의 마을, 방비엥

깎아지른 바위 산의 절경. 그리고 무심한 듯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

루앙프라방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도시 방비엥. 루앙프라방에서 차로 약 여섯 시간은 걸린 걸로 기억한다. 라오스 교통편 이야기는 한 편에 몰아서 써야지. 스타렉스와 마을버스 스타일 봉고에 낑겨타고 6시간 동안 낙석이 떨어지는 산간도로를 달렸던 거... 그걸 탔던 나에게는 참 살 떨리는 경험이었지만.. 읽는 입장에선 참 재밌을 거 같다.


방비엥은 루앙프라방과는 다르게 강과 암벽 산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도시다. 사실 이곳도 '도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리 하나를 빼놓고는 판잣집과 논밭의 연속이다. 루앙프라방과 수도인 비엔티안을 이어주는 하나밖에 없는 도로가 지나는 곳이라 이전부터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넓은 평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강변을 따라 큰 논이 줄지어 이어져 있고 깎아지른 듯 한, 아니 어딘가에서 갑자기 날아와 박힌 것만 같은 바위 산을 따라 낮은 구름들이 스쳐 지나간다. 루앙프라방보다는 즐길 거리가 많은 이곳.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음식 가판과 식당, 카페, 편의점이 즐비하고. 래프팅, 튜빙 그리고 곳곳엔 스쿠터나 사륜 바이크를 빌려주는 곳들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방비엥에 도착하고 이틀 정도는 비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쏟아졌다가 잠시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라면 참 좋았을 텐데, 이곳의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그냥 계속 내렸다. 참 꾸준하고 부지런하더라. 덕분에 기온은 참 시원하고 좋았지만 말이다. 물론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간이 방수포로 감싸서 사진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중 촬영을 가능케 해 준 우비 덕분에 촬영을 자주 중단해야 했다. 꽤나 두툼하고 튼튼한 비닐로 만들어진 우비는 비 대신 땀에 젖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지. 우비 안은 말 그대로 열대우림에 만들어진 온실이었다. 안 그래도 몇 주째 이어진 우기 덕분에 습도 100%를 자랑하는 곳에서 땀에 젖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몇 번 경험하고는, 이게 할 짓이 못 된단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방비엥 3일 차 오후. 드디어 비가 잠깐 그치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완전군장으로 백팩에 삼각대까지 묶어 놓고 대기하고 있던 터라, 바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근처 스쿠터 렌탈샵에서 스쿠터를 빌려 미리 찍어 두었던 촬영 포인트로 달렸다. 저 멀리 산등성이를 타고 지나가는 낮은 구름과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풍경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크하게 논에서 일하는 마을 청년들. 풍경에 압도되어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다 간신히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을 서 있다가, 블루라군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그 비포장도로는 온통 돌 박힌 진흙밭이 되어, 스쿠터로는 절대 무리라는 걸 길 중간쯤에서야 깨달았다. 미끄러져 코와 스쿠터를 한 번에 깨 먹기 딱 좋은 상태라 블루라군은 포기하고, 지나던 길의 양 옆을 둘러싼 깎아지른 산들과 논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긴 경치 하나만으로 방비엥을 가장 정확히 표현해 주는 그런 곳이었다.



조그만 픽업트럭 뒷칸에 낑겨 타고 논에 일하러 나온 라오스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 이건 여담인데, 현대와 기아 자동차가 라오스 시장을 점령한 것 같았다. 다마스와 포터와 스타렉스.. 그리고 아반떼와 K3...... 심지어는 마을버스(큰 거 말고, 작은 거. 문 하나밖에 없고 통로에 접이식 의자도 달린 그거)까지. 참 정겨우면서 신기하면서 어이가 없었지.



늦은 오후, 마을 아주머니들이 볏단과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간다. 중심지에서 2킬로 미터 정도만 운전해 나와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도시 방비엥. 그만큼 사람들이 가는 곳만 간다는 반증일 거다. 영어 간판도 호객꾼도 찾을 수 없다. 마을 아이들과 조그만 구멍가게와 식당, 그리고 그들의 일상만이 존재할 뿐.


난 여행지에서, 관광지보다는 현지 사람들의 삶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 보려 노력한다. 이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채워 나가는지, 내가 살던 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 노력의 유무에 따라 맘 속에 얻어가는 것들 그리고 그것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의 양과 질이 확연히 다르다. 현지 사람들, 그리고 그 생활에 대한 이해, 혹은 이해를 위한 노력조차 없는 여행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돈 줄 테니 방 줘. 돈 줄 테니 밥 줘. 돈 줄 테니 내 여행을 재밌게 채워 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론 극히 일부라고 믿고 싶지만, 라오스에 있을 때 그런 한국 여행객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서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사진도 절대 나오지 않는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사진작가, 여행가였음 좋겠다. 그곳에서 느낀 감동, 배운 지식과 지혜를 사진에 잘 녹여낼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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