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임신 이야기
황금기가 될 줄만 알았던 임신 19주에 완전 전치태반을 진단받고 간단한 운동조차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임신부가 된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임신 20주의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어깨와 허리가 아파오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거의 하루 종일 티비를 틀어두고 소파에 누워있곤 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을 결심하고 첫 진료를 21주에 잡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길고 가을이 늦게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취소해야만 했던 단풍 여행에 대해서도 잊기가 조금은 쉬웠던 것 같다.
상급종합병원 진료를 보러 가기 전까지 나와 남편은 검색창에 '전치태반'을 얼마나 검색해봤는지 모른다. 그게 뭔지 몰라서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은 경과가 어땠는지 읽어보면 위로가 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다양한 후기들이 존재했는데, 누워 지내려고 노력해도 출혈이 생겨서 입원을 반복했던 사람도 있고 임신 후기가 되자 태반 위치가 변해서 자연분만을 했다는 후기도 있었다. 전치태반이 있는 임신부는 자연분만을 권하지 않는다. 아기가 나오기도 전에 감당할 수 없는 출혈이 생기면서 아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에는 그렇게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수술을 검색하면서 어떤 것이 나에게 나은 선택일지를 고민했는데, 막상 나에게 선택의 여지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분만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진통과 출산이 끝나고 나면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에 비해 제왕절개 수술은 여러 상황에 대처가 빠르고 날짜를 잘 잡으면 진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모든 고통을 후불제로 나누어 갚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아무 문제없는 상태에서 선택하라고 해도 제왕절개를 선택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태반 위치가 변한다고 해도 안전을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남편은 주장했지만, 어쨌든 내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21주가 다가왔고,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첫 진료 날이 되었다. 나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일을 했던 간호사였기 때문에 정해진 진료시간보다 일찍 가기 위해 애썼는데도, 병원 입구부터 주차장까지는 온갖 마을버스와 택시, 환자를 태운 일반 차량들로 북새통이었다. 나는 첫 진료였기 때문에 안 그래도 수속이 필요한 상황이라 급하게 먼저 내려서 정신없는 로비로 들어갔다. 보통 2차 병원 이상의 큰 병원들은 수납이나 수속 등을 맡는 원무과 창구가 하나 이상 있다. 내가 간 병원도 2개 건물로 나뉘어 있었으며 건물마다 수속 창구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외래가 가장 많은 메인 건물의 1층 수납이 사람이 가장 많고, 별관으로 붙은 동의 수납이 좀 더 작은 대신 찾는 사람도 더 적을 확률이 높다. 대부분 여러 개의 수납 창구를 가진 병원은 각 수납 창구의 대기인 수도 표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기표를 뽑기 전에 해당 전광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시간도 없지만 걸음도 최소화해야 하는 산모였기 때문에 별관의 2층 수속 창구로 가서 대기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이전 병원에서 가져온 진료의뢰서를 내고 환자카드를 받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본관에 있는 산부인과 외래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당연히 예약한 진료 시간은 큰 의미가 없었다. 환자 수가 적고 응급 상황이나 수술이 적은 병원의 경우 외래 진료 시간의 10분, 20분 단위가 단축될 수도 있고 지연되더라도 30분 이상을 기다리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상급종합병원은 진료를 보는 교수님들의 환자가 늘 병동에 누워있고, 그들이 언제 응급 상황이 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환자들이기 때문에 진료 지연이 매우 흔한 일이다. 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원래 진료를 예약한 시간에서 1시간 이내로 진료를 보면 매우 성공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소변검사와 산전 상담을 받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도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나 보호자, 대기 시간과 순번을 몇 번씩 물어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느긋함은 예측할 수 있는 진료 대기 시간까지였다. 내 이름이 불리고 처음으로 상급종합병원의 교수님을 마주하는 순간이 되자, 준비했던 질문들과 생각들은 사라지고 어리숙하게 지난 진료기록을 내밀었다. 나 같은 환자들을 많이 봐오셨을 교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그 진료 기록을 보자마자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무슨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내가 관계된 병원의 간호사 출신이라는 것을 차트를 통해 공유받으셨는지 아시는 상황이라 마냥 모른척하고 설명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우선 정밀 초음파를 봐야 하는 주수였기 때문에 온 김에 좀 기다려서라도 정밀 초음파를 보고, 그때 태반의 위치를 보자고 하셨다. 정밀초음파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긴 하지만 1명당 최소 30-40분의 시간을 들여서 모든 신체와 장기에 눈에 보이는 이상이 있는지를 보는 검사이기 때문에 작은 병원에서라도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예약들 사이에 틈이 나거나 예정된 검사가 일찍 끝나야 볼 수 있는 순번으로 당일 초음파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 또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첫 진료에 정밀초음파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자 생각보다 금방 시간이 가는 것 같았고, 정밀 초음파를 보면서 신나게 움직이는 아기를 보자 또 주책없이 웃음만 나왔다. 오똑한 콧날을 자랑하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번갈아 빨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귀엽고 웃기다는 생각만 들었고, 건강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보니 나도 같이 희망이 차는 기분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병원과는 달리 영상이나 예쁜 입체사진을 받아볼 수는 없었지만, 남편과 손을 잡고 차분히 설명을 들으며 아기를 보는 시간 자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검사가 끝나갈 때쯤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태반 위치를 자세히 보면서 확인하면서 검사를 마쳤다.
우선 다행히도 아기는 평균적인 크기로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초음파로 전반적인 검진을 한 결과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역시 태반의 위치였다. 자궁 입구를 완전히 막은 완전 전치태반이 맞고, 위치가 영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치가 바뀔 확률이 0이라고 볼 수는 없고, 간혹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생활하는 부분에 있어서 완전히 누워서 지낼 필요까지는 없지만, 장을 보는 것처럼 오래 걸어야 하거나 무거운 것을 드는 행동은 금지이며 하루에 10분 이내의 산책까지만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질초음파를 자주 보면서 태반 위치를 자주 확인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으니, 출혈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 한 28주쯤이 되었을 때 태반 위치는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워낙 나보다 좋지 못한 케이스를 많이 보신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지금 상황에 대해서 가감 없이 말씀하시되,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셔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첫 진료를 마치고 나니 오전이 지나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완전 전치태반 소견을 듣고 나자 이제는 더 돌이킬 수도 없이 고위험 임신부가 되었음을 인정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다음번 진료 때까지 태반 위치가 조금이라도 변하길 바라며, 그리고 만삭이 되는 시점까지 출혈이나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음 진료까지는 4주의 간격이 생겼다. 그래도 병원에 자주 올 정도로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병원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서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구경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알 수 없어서, 정상적인 임부가 훨씬 많은 병원에 다닐 때는 내가 전치태반이라는 것이 큰일이라도 난 것 같았는데 나처럼 고위험 임부가 많은 병원에서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을 보니 내 문제가 별로 크지 않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 문제를 대하는 교수님의 표정이나 주변 스텝들의 반응이 덤덤해서 좀 더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찍 휴직해서 집에 누워만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과,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이 많지 않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무렵 우리 부부에게는 큰 변화가 다시 한번 찾아오게 되었는데, 예정보다 일찍 집을 옮기게 된 것이었다. 살던 집과 살고 있는 집이 맞물려서 계약기간보다 일찍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치태반을 완전히 확인하기 전에 집을 봐 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움직임이 제한된 상황에서 새로 이사 갈 집의 벽지나 아기방을 꾸밀 조명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여러 일정을 조율하고 이사를 준비하는 것이 신경 쓸 것도 많았지만, 일을 하는 중이었거나 출산 후에 급하게 준비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새 출발을 준비했다. 차분히 앉아서 집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어 나가는 것 같았다. 아기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할 새로운 삶을 생각하면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23주가 될 때까지 신경 써야 했던 것은, 태동이 점점 강해지면서 존재감을 뽐내는 아기였다. 이제는 뱃속에서 움직이면 배가 보일 정도로 톡톡, 하고 움직였다. 특히 남편이 퇴근하고 배에 귀를 대고 가만히 말을 걸면 그 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신기했다. 그 설렘을 자꾸 느끼고 싶어서 태교 동화책을 두권 주문해서 남편과 각자 한 권씩을 매일 읽어주었다. 엄마 목소리는 매일 들어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아빠 목소리에는 특히 반응이 좋았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 진동이 양수를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 좀 더 강렬한 것이었는지, 남편이 귀를 대고 말하는 자리를 꼭 제대로 건드렸다. 그리고 내가 자려고 누우면 자궁이 좀 더 넓어지는지, 꼭 신나서 발로 차는 게 느껴졌다. 이전처럼 꼬물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배가 통통거려서 잠이 들려다가도 웃음이 날 정도였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나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동이 꽤나 활발한 편이었다고 한다. 차분한 남편의 성격을 닮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성격이 날 닮았나 싶었다. 이제는 뱃속의 아기가 꽤 잘 듣는 것 같아서 말도 조심하고, TV도 너무 크게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평온하고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변화는, 몸무게가 많이 늘고 이제 누가 봐도 임신부의 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한 채로 누워 지내니 임신 전에 열심히 붙여두었던 근육의 형태가 제일 먼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가던 곳도 한정되어 있었지만 동네에서 장을 보는 일도 힘들어지니 답답했다. 배는 점점 나오고, 아기가 움직이는 자궁은 점점 높아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집 밖에 나가면 무조건 마스크를 해야 하는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밖에 나가서 차를 한 잔 사마시는 일도 부담이 되었다. 매일 집을 환기하느라 창문을 열고 바깥을 멍하니 보곤 했는데, 점점 공기의 온도와 냄새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아직은 임신성 당뇨 검사를 하기 전이라, 몸무게가 갑자기 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이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너무 단 것 위주로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을이라 그런지 그렇게 빵이 맛있게 느껴졌다. 이제껏 입덧으로 고생했으니 스스로를 위한 보상으로 고기도 자주 먹고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심리도 있었다. 다행히도 급격하게 체중이 불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금 컨디션이 좋으면 요리를 하기도 하고 사람이 없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외식을 즐기기도 했다. 병원을 옮기고 여러 가지로 제한이 생겼지만, 할 수 있는 한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임신 중기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