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cekim Jun 24. 2022

초보운전 1주차

성인이 되면 주민등록증보다 예쁜 사진을 넣은 신분증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지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대학교 방학을 이용해 속성으로 면허를 딴 지가 10년이 넘어버렸다.

그동안 운전을 할 이유가 없어서 안 하고, 운전병 출신의 남친이 남편이 되어 더욱 내 면허증은 신분증 이상의 역할을 할 일이 없었더랬다. 그러나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운전의 필요는 차가 없으면 운신이 어려운 신도시로의 이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나는 운전학원에서 꽤 긴 시간 도로연수를 받았고, 노란 차를 끌고 용산과 이태원의 복잡함을 누비며 실력을 키웠다. 면허를 딸 때까지 주차선에 네 바퀴 중 하나도 들어가지 않던 나의 운전실력은 눈에 띄게 나아졌고, 이사를 한 후에도 가끔 사고 싶은 차종을 렌트해서 운전연습 겸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리고 곧 나는 임신을 하고 아기 엄마가 되었다. 미숙한 운전 실력은 그렇게 1년 가까이 휴식기를 맞이했다. 아기와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의외로 병원에 갈 일도 많고 문화센터라도 다니려면 차가 꼭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오래된 면허는 새로운 쓰임의 순간을 맞이했다.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차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중고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속지 않고 중고차를 살 자신이 없어진 나는 부모님의 지인까지 동원하여 중고차를 알아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의 난으로 신차 생산이 더디자 중고차 가격이 신차보다 비싼 기현상이 일어났고 내가 생각한 가격에는 도저히 제대로 된 차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차는 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나와 남편은 마음먹고 신차를 주문했다.


주문은 했지만 차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고, 나는 그동안 동네라도 돌아다닐 차가 필요했다. 이사한 집은 30분 넘게 콜택시를 불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 날도 있고 버스 배차간격은 기본이 30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차가 나올 때까지 아빠 차를 빌려 쓰게 되었다. 막상 진짜 차가 필요하고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조금 떨렸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사고 주차의 달인 게임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무엇보다 아기랑 둘이 나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아기가 다친다는 생각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아빠가 처음 차 가져다주신 날 같이 집 주차장에서 수없이 주차 연습을 하고 문화센터가 있는 백화점까지 운전을 하고 다녀오는데, 그래도 돈 주고 배운 운전이 말짱 도루묵은 아니었는지 곧잘 한다는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안도감과 감사함을 담아 백화점에서 아빠 드시라고 비싼 빵을 신나게 사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차를 받고 다음날 바로 집에 손님이 왔는데, 서울에서 온 뚜벅이라 먼 길을 힘들게 와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은 조금이라도 편한 지점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베테랑인 남편이 데려다주는 것이지만, 남편과는 어색한 사이인 손님둘이 보내기도 미안했다. 그래서 조금 과감하지만 내가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이 지역에서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노래도 안 틀어주고 손님과 함께 덜덜거리며 갔다. 초행길인 데다 옛날 골목길을 돌아다녀야 해서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둘이 신나게 어떻게든 가긴 갔는데, 생각지 못했던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 혼자라는 것이었다. 혼자 차에 타있으려니 엄청 긴장이 되었다. 나는 혼잣말을 엄청나게 하면서 집에 겨우 돌아왔다. 시동 끄고 내리는데 살아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문화센터 첫날이 되었다. 주말이라 가는 길은 남편이 운전을 했고, 아기는 고맙게도 새로운 차와 카시트에 잘 적응해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내가 운전을 했는데, 그래도 한 번 와본 길이라고 자신감이 넘쳐서 내비게이션도 안 켜고 오다가 과속카메라 앞에서 엑셀을 붕 밟으며 오고 말았다. 아마 곧 아빠한테 딱지가 날아가겠지만 그때까진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문화센터 날은 평일이었는데, 운전이 미숙한 나를 위해 엄마가 오셨다. 그렇지만 두 번이나 다녀온 길이라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 내가 오가는 길 운전을 맡았다. 엄마에게 아기랑 다녀도 될 것 같다는 컨펌을 받고 운전이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아기랑 둘이서 나가는 걸 도전하기로 했다. 마침 조리원 동기가 오라고 해서, 그 근처 카페에 가는 걸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기를 먹이고 달래서 둘이 차에 타서 아기 노래를 틀어주고, 후방 거울로 잘 있는지 확인해가면서 가다 보니 왠지 운전이 벌써 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10분 후에 상가 주차장을 마주한 나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겨우 뱅글뱅글 돌면서 내려갔는데 주차 자리도 없고, 매우 좁은 회차 공간에서 수십 번을 오가며 차를 겨우 돌려야 했다. 극적으로 자리가 나서 주차를 하는데, 아파트나 백화점 주차장보다 좁아서 경차인데도 골백번 고쳐 주차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20분을 주차했고, 친구가 좀 오래 기다려서 미안했다.


그렇게 차를 받자마자 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기름이 바닥 나 있었다. 운전 일주일 만에 셀프주유소에 방문했다. 그래도 혼자는 왠지 무서워서 토요일이 되자마자 남편이랑 같이 갔다. 분명히 주유구에 주유건을 넣고 고정하면 된댔는데 하필 고정핀이 부러진 주유건을 잡고 가득 넣느라 긴장한 팔이 아팠다. 그래도 이제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일주일간 필요한 건 다 익힌 것 같아서 기뻤다. 그 기분 그대로 필요한 아이템을 사러 이케아를 찍고 갔는데, 내가 정말 싫어하는 복잡한 로터리를 경유하게 네비가 설정되고 말았다. 그러나 운전 중에 경로를 수정할 수도 없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혼돈의 로터리로 들어갔다.


내가 그 로터리를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는, 차를 렌트해서 거기서 운전을 하다가 거의 사고가 날 뻔했기 때문이다. 규칙은 회전 차량 우선이라는데, 사실 그 로터리는 고속도로 출입구, 이케아와 롯데아울렛 입구, 주거지역으로 가는 도로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언제나 다양한 차종이 얽혀있는 곳이다. 잔뜩 긴장한 나 때문에 뒷좌석의 남편도 열심히 좌우를 살폈다. 이번엔 대신 느긋하게 내가 진짜 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 다시 오고 싶진 않았지만 차 옆까지 붙여둔 초보 딱지의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최대한 늦게까지 붙여야지 싶었다.


일주일간 차를 운전해본 소감은, 생각보다 운전이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 익힌 기술이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초보 중에 초보고, 늘 겸손하게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이 연습하고 다른 소회를 가질 수 있는 날까지 노력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