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G May 26. 2022

주부들의 점심 혼밥 메뉴, 이만한 게 없습니다.

주부의 점심시간은 참 애매하다. 뭘 차려 먹자니 귀찮고, 대충 먹자니 그것도 아쉽다. 인스턴트는 물리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밥반찬을 먹기는 정말이지 싫다. 특히나 요즘 같이 더위가 겨드랑이를 치근 댈 때, 주부들의 점심 고민은 점심 고문에 가깝다.


그럴 때 떠오르는 메뉴! 바로 상추 참치 초장밥! 이름 안에 재료가 다 담겨 있다. 상추와 참치와 초장. 이 별 거 아닌 세 가지를 넣고 비비기만 할 뿐인데 맛은 가이 환상적이다. 맛의 찐 감동은 미슐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재료의 합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삭하고 상큼하고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 의자 위에 짝 다리를 하고 상추 참치 초장밥을 쓱쓱 비비다 보면 분잡한 아침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빨간 시각적 비주얼은 군침이 돌게 한다. 씹을 때마다 아삭 거리는 채소의 식감은 또 어떻고. 이건 살 안 찔 거라는 단순한 혀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만족스럽다. 이 음식을 개발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을 정도다.

내가 상추 참치 초장밥을 처음 먹은 것은 스무 살, 여름방학이었다. 젊음을 입혀놨는데도 '뽀대(멋있다, 폼난다라는 뜻)'가 나지 않던 시절. 그때 나의 가장 큰 일과는 미팅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나이트를 가는 것도 아니었고, 동네 슈퍼에 가는 것이었다.


그곳은 친구 혜진이네가 하는 슈퍼였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선경이까지 합세해 우린 셋이서 매일 슈퍼를 지켰다. 사실 말이 슈퍼를 본다는 것이지, 우리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스무 살 젊은 처자들이 하릴없는 할머니들처럼 가게에 앉아 오는 손님들을 맞고, 담배 심부름을 하고, 항시 켜져 있는 TV를 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이 틀어놓은 수돗물처럼 젊음을 콸콸콸 낭비하고 있었다.  


점심 때가 되면 혜진이 엄마의 호출이 왔다. 그러면 슈퍼집 딸, 혜진이가 2층에 위치한 가정집으로 올라가 큰 스테인리스 쟁반에 우리의 점심 끼니를 담아 가지고 내려왔다. 그때 그 쟁반 위, 큰 대접 안에 담겨 있던 음식이 바로 상추 참치 초장밥이었다.


손님이 드문드문 오던 슈퍼에 앉아 양푼 채 가득 담긴 상추 참치 초장밥을 쓱쓱 비벼서 숟가락 세 개를 꽂아 서로 나눠서 먹었다. 지금이야 침 묻은 숟가락이 닿아서 싫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런 새침함도 없었다.


손님이 오면 먹는 것을 멈추었다가 계산을 마치고 오면 다시 숟가락을 들고 셋이 같은 속도로 먹었다. 땅따먹기 하듯 한 입, 서로 양보하며 한 입, 참치를 누가 더 먹을까 눈치 보며 한입, 그렇게 하나의 음식을 셋이서 나눠 먹으며 우리는 평생 친구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식탁에 앉아 혼점으로 상추 참치 초장밥을 먹고 있으면 그 시절 슈퍼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 같다.  


"초장 너무 덜 들어간 거 아니가? 더 넣어 팍팍 넣어!"

"참치 덩어리는 내 거! 건들지 마라."  


외로운 밥상이 시끄러워진다. 나의 옛 시절이, 나의 옛 친구가 그리워진다. 별 거 아닌 재료들이 모여 만들어낸 맛의 감동처럼, 별 거 아닌 우리들이 모여 만들어 낸 감동의 시간들. 흘러간 세월에 마음은 씁쓸한데, 입 안에 퍼지는 초장밥의 향은 고소하고 매콤하기만 하다.


엄마가 되고 나면, 친구들의 존재가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여자들의 우정이 얄팍하다고 비웃던 누군가의 말에 발끈했던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정을 등한시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과 친구만이 전부가 아닌 이 시절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두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할 수 없고, 시댁 행사를 두고 친구를 먼저 찾을 수 없으며 남편이 회사 일로 바쁘면 잡았던 약속도 깰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친구 만나고 올게"라고 한 말에 며칠간 샐쭉해 있었던 것은 친구와의 작은 약속도 내 의지대로 잡을 수 없는 나의 상황과 너무 대조돼 보였기 때문이다.


큰 대접에 시들한 상추와 참치를 넣고 초장에 비벼 먹어도 좋을 친구. 고춧가루 낀 이빨을 드러내고 웃어도 민망하지 않을 친구. 이해타산 없이 맘 편히 만날 수 있는 친구. 내게도 그런 친구 있는데... 이제 우리 셋이 다 같이 만나려면 각자의 가족 스케줄을 빼고 더하고 나누고 곱해서 나온 날 중에서도 겨우 한 날을 정할 수 있을까 말까다.


아, 다시 생각해도 슬프네. 슬플 땐 좀 더 매워줘야 하니까  초장을 더 넣어야겠다. 그렇게 상추 참치 초장밥을 우걱우걱 씹으며 스피커 폰으로 "야! 우리 그때 그랬었잖아.... 하하하하" 하고 떠들면 그것대로 또 즐겁다.    


그런데 문득, 혜진이 엄마는 우리의 끼니까지 꼬박 꼬박 챙기느라 얼마나 귀찮았을까? 혹시 그녀도 우릴 보며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진 않았을까? 나도 너희같은 친구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남은 상추 참치 초장밥을 쓸쓸히 혼밥 했을지도 모르일이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 최은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