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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ug 18. 2020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요?

오늘도 요령 없는 가게로 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의 계절이 왔다. 그러나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다. 남편은 육식파, 아이들은 콩 질색파, "누가 나랑 콩국수 먹으러 같이 가주지 않겠니?"무심한 가족들을 향해 외쳤다. 응답은 남편에게서 왔다.


“오늘 저녁은 하지 마, 콩국수 먹으러 가자”

“그럼 다른 식구들은?”

“우린 칼국수 먹으면 되지. 근처에 콩국수 집 찾아놨어.”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나만 즐거운 외식’을 하러 나섰다. 남편이 간신히 찾았다는 콩국수집은 주상복합상가 2층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었다. 전통과 맛 부심을 부리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 딱 봐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상 가게였다.  자고로 콩국수 집은 오랜 가옥에 수십 년 전통 이런 플래카드 하나쯤 딱 붙어있어 줘야 제격인데, 이 집은 너무 요즘 구색에 맞춰진 곳이었다.      


‘딱 봐도 중국산 콩이겠구먼’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애써 신경 써준 남편에게 할 말은 아니다 싶어 그 말은 삼켰다. 저녁 안 하는 게 어디냐며 애써 얼굴을 펴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너 테이블이 전부인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손님이라곤 옆 테이블에 앉은 가족 한 팀이 전부. 한창 바쁠 저녁 타임에 손님이 이 정도라면.... 불길함의 파도가 화악 밀려왔다. 하지만 심플한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불길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파주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만듭니다'


'오우~ 국내산!' 외할아버지가 농사지은 콩으로 허튼짓이야 하겠느냐 싶어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기쁜 마음에 빨리 메뉴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주문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여기요, 계세요?”를 연발하자 그제야 주방 뒤에서 젊은 사장님이 땀을 삐질 흘리며 나타났다.      


“여기, 칼국수 세 개랑 콩국수 하나 주세요”      


주인장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네... 시간이 좀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흔쾌히 ‘네’라고 답하자 다시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갔다. 남편은 전반적인 가게 분위기를 보고 작게 속삭였다.      


“여기 찐, 콩국수 집인 것 같아”

“어떻게 알아?”

“원래 저렇게 요령 없는 사람이 하는 가게들이 맛이 괜찮거든. 눈속임할 줄 몰라서 재료도 좋은 거 쓰고.”     


무슨 맛집 개똥철학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요령 없는 건 맞다 싶었다. 물과 기본 반찬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도 안 해주고 남편이 물어보자 주방 저 멀리서 ‘셀프입니다’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한 참 뒤 젊은 사장님이 낑낑대며 음식을 내왔다. 알바생도 없이 혼자 일을 하려니 동분서주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진 음식 한 상!       


“우와~ 장난 아니다”      


남편 얼굴보다 큰 대접 안에 노란빛이 감도는 걸쭉한 콩 국물... 때깔도 좋았지만, 젓가락으로 그 릇 안을  휘젓자 매끈한 면발이 집혔다. 콩물 속에서 잠수하던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자 가게에서 직접 뽑은 듯 굵기가 일정치 않은 면 자락이 매끈한 자태를 선보였다. 비주얼만으로도 합격!


맛은 물어무엇하리~! 어디서 이런 숨은 맛집을 찾았느냐며 남편을 연신 칭찬했다. 남편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들에게 “너희 엄마 또, 여기 단골 하겠네” 라며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남편이 호탕하게 사장님에게 맛있다고 말해도 젊은 사장님은 수줍은 미소만 짓지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그저 쑥스러운 표정으로 ‘제가 더 감사하죠’라고만 할 뿐.     


남편이 말한 요령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이색적인 재료와 요란스런 홍보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것. 재료와 맛 하나만으로 진심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요즘 시대엔 이런 사람들이 으레 요령 없단 말을 듣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방송에 나온 맛집이라고 줄 서서 먹은 곳 중에 진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가게 벽면이 자기 자랑으로 도배돼 기대감이 들고, 화려한 플레이팅에 시선을 빼앗기긴 했지만 먹고 나서 또 가고 싶다 한 곳은 거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바로 ‘진심’이라는 재료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요령은 없지만 '진심' 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집은 끌리는 뭔가가 있다.(하지만 요령도 없고 진심도 없는 집도 있으니 주의해야 함 ) 떠올려 보니 나의 단골집 사장님들은 죄다 요령이 없다.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말하고 나면 알겠다고 한 뒤 끝날때까지 말이 없는 과묵한 미용실 사장님, 안 어울리는 옷은 사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하며 다음에 오라고 하는 옷가게 사장님,  기분 내키는 대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커피집 사장님      


‘이렇게 장사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집들은 오픈 발로 이슈를 끄는 집들 보다  더 진득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욕심도 요령도 없는 사장님들의 유일한 개인기랄까? 손님이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진심’이라는 장사 철학으로 그저 묵묵히 제 할일을 할 뿐이다.


나는 요령 없는 사장님이 요령 피우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단골가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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