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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n 01. 2021

워킹맘은 있지만 워킹파파는 없다?!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그때를 기억한다.


"요즘 남자들... 좀 불쌍한 것 같아"라고 말했던 날.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했던 걸까? 무심결에 내뱉은 그 말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비난의 파장 말이다


"남자만 힘든 거 아니거든. 여자들은 그 곱절로 사회생활과 육아를 해나가고 있어"


워킹맘들이 있는 자리였다. 마치 내가 곪은 상처에 고춧가루라도 뿌린 양 쓰라려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넌, 전업이니까 모르겠지'라는 눈빛도 함께...  


맞다.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워킹맘들의 어려움과 현실... 막연히 티브이나 영화에서만 봐왔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지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맞벌이 부부는 갑자기 애가 아프면 어쩌나... 하는 식의 걱정만 간혹 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돈을 버니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네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가졌다 힘들게 가진 아이인 만큼 내 일을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쭉 아이를 돌보는 데 내 노동력을 썼다 생각보다 적성에 맞지 않았고 꽤 많이 힘들었다 워킹맘이 사회 관념과 싸우는 동안 전업 맘인 나는 내 안의 무력감과 오랫동안 전투를 벌였다

 

워킹맘과의 가장 큰 괴리감을 느낀 건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영화 첫 씬에서부터 내리 2시간 을 울고 나온 나완 달리 워킹맘들의 반응은 시니컬했다 남편이 저렇게까지 도와주고 다정한데 심지어 외모가 공유인데 우울감이라니, 멋모르고 배부른 소리다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김지영에게 백번 공감한 나 역시

배부른 우울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한편으론 김지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워킹맘을 나 역시 뼈속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자신의 일을 지키고 있는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얼마나 치열하고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일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살폈다 그녀들의 아픔을 들여다보았다 미처 몰라서 상처 준 부분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책장을 모두 덮고 나서야 그녀들이 사수해 온 '자신의 일'에 대한 상처와 어려움을 면밀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외환위기에 남성의 노동력이 줄어든 것과는 달리 이번 코로나 19 위기에서는 여성 종사자 비중에 높은 업종의 노동수요가 감소했다는 통계를 보았다 보육시설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여성에게 쏟아진 ‘돌봄 압박’ 때문이었다 통계청 ‘2019년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맞벌이 가구에서도 아내가 가사노동에 3시간 7분, 남편은 54분을 투입해 여성이 더 큰 가사·돌봄 압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가 시사하고 있는 점이 바로 워킹맘의 고충과 맞닿아있는 부분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워킹맘이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워킹 파파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당연성에 빚대어 나온 사회적 언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고 돌아와서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하라는 말로 들리는 이 단어 안에는 워킹맘의 애환도 함께 서려있을것이다.  


남편과 나, 둘 중에 내가 육아를 택한 건 단연 돈 때문이었다 남편의 페이가 더 많았고, 진급도 순조로우니 경제적 우위에 있는 남편이 경제생활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왜 남편의 페이가 더 많고 왜 진급이 더 순조로운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 구조상 여성이 돈을 더 많이 벌기도 진급도 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만 봐왔던 것이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는 여성들의 힘겨움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워킹맘, 전업맘, 이 둘의 무게를 저울질하고 싶진 않다 다만 우리 사회가 '엄마'라는 모성에 모든 의무와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일이 '지켜야 하는 것' 이 됐단 말인가 뺏기고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됐단 말인가 더군다나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히 말이다.


{나이가 차면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유리 천장이 느껴지는데 유리천장을 뚫기에는 제가 가진 학벌, 사내 정치, 엄마 혹은 여자라는 정체성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좋지 않았어요 이직을 하려면 아예 작은 회사에 가야 하는데 제가 거의 외벌이이니까 연봉을 낮추는 건 안됐고요 판교 쪽 벤처 회사에 갈까 했는데 헤드헌터가 그러더라고요 판교는 30대가 마지노선이라고.}  이혜선 '한 직장 20년, '존버'의 비결 중에서

 

존버를 해가면서 까지 지켜야 하는 여성들의 '일'! 남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여성들은 그  안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이념과 싸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도 우리 엄마는 어떤 어떤 일을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하는 엄마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결국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박성혜 '일, 육아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중에서


이같은 엄마들의 서사를 수집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결집 속에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책속에 한 인터뷰이는 말했다.


{저도 일만 한 워킹맘 선례가 되고 싶지 앟아요 육아도 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선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을 나눴으면 좋겠어요...(중략) 서로 이해하니까 얘기하면서 많이 위안받고 털어버리고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커뮤니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엄마들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만 잘 돼 있어도 경력 단절이 줄어들 것 같더라고요}


'여자들이 일에서 성공하는 법!' 같은 자기개발서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일하는 여성들이 겪고있는 리얼리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제야 내 눈에 그녀들의 삶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새벽 녁, 잠이 덜 깨 눈을 비비는 아이의 두 손을 꼭 쥐고 달려가는 그녀를, 키즈카페에서 시끄러운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노트북을 켜고 사무를 해나가던 그녀를, 주말이면 우는 아이를 친정 혹은 시댁에 맡기고 냉정하게 뒤돌아 서야만 했던 그녀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남몰래 울고 있을 그녀를.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좀 더 진실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또다른 측면의 전업 여성들 이야기에도 귀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을 지킬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에도 분명 또 다른 아픔과 상처가 존재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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