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킬러 (3)

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by 이장작

[2061년 8월 23일 세상은 더욱 안전하고 건강해질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피 한방울이면 어떤 질병에 걸릴 것인지 알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그날은 지구상 모두의 휴대폰과 이어폰에서 평온하고 신뢰되는 목소리가 선언했다. 인류는 한 방울의 피를 바치면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오가 되고 택배원 유니폼을 입은 로봇들이 집집마다 방문해 사각형의 연두색 판을 건넸다. 판 위에는 은색의 원이 있었고 거기에 손가락을 올리면 바늘이 올라와 혈액을 채취해갔다. 그리고 1분 뒤 유전자를 분석한 정보가 알림 메시지로 왔다.


이 정보는 기대 수명, 예상되는 질병,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유명인, 성격, 취미, 성향 등등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던 정보를 간략하게 요약한 정보였다. 개인정보이기에 본인만 열람이 가능했지만 예외가 있었다. 유전자 분석은 누군가가 범죄자가 될 확률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런 정보는 공익을 위해 개인 동의 없이도 다른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었고 나는 연쇄 살인자가 될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 소시오패스였다.


읽는데 3분이면 충분한 내 유전자 포트폴리오에는 내가 과거의 범죄자들이 가진 잔혹 성향 유전자를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가지고 있고 어릴 적 사냥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유전자가 발현될 확률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혹시라도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이를 놓칠까봐 나와 대화를 나누는 모든 이에게 친절한 경고 메시지도 갔다. 당연히 누구도 나와 교류하는 걸 원치 않았다.


초기에는 나름 노력이라는 걸 한 것 같다. 노골적인 불편함을 마주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 어리석음은 놀라운 수준이다. 세상 어떤 사람이 갑자기 눈이 돌아서 당신을 칼로 찌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경고를 받고도 그와 말을 섞고 싶겠는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한달을 낭비하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1년 정도 칩거했다.


칩거 생활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아도 식욕을 채우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일생을 모두 사용해도 다보지 못할 방대한 콘텐츠가 즐비했다. 특이점 이전에는 만인의 로망인 생활을 직접 누리는 것이니 감지덕지였다. 앞으로 대략 70년간 이렇게 살다보면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1년이 지나자 나는 위스키 반병을 들이킨 후 목을 매달았다.



“우웁, 컥, 커어어억, 하아하아…”



쿵! 내가 죽지 못한 건 순전히 나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커튼을 묶을 때 쓰는 부드러운 천으로 매듭을 지었는데 제대로 묶지 않아서 풀려버린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사냥을 배우면서 십수번씩 썼던 방법인데 이걸 똑바로 못 묶은 것이다. 평소라면 브라더에게 방법을 물어보고 정확히 했을 터인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게 화근이었다. 죽음의 공포는 용기를 주었던 알코올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또렷해진 정신은 목을 조이던 천의 끔찍한 촉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두번 다시 내 집에 타이백은 없으리라. 얼굴을 뒤덮던 눈물과 콧물이 마르고 내 가랑이 사이의 축축함이 느껴질 무렵 어느 소설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자살에 실패한 사람은 강렬한 삶의 욕구를 경험하게 된다는 문장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책의 내용이 맞았음을 인정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브라더”

[안녕 아카리! 뭘 도와줄까?]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 좋은데 있을끼?”

[아카리 너는 해외 경험이 없으니 한국 어때? 같은 동북아시아권 국가라서 적응이 편할거야.”



한국을 오며서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다. 환경을 바꾸면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비이성적인 희망이었다. 하나, 한국으로 왔다가 바뀌는 건 없었다. 이제 지구상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번역된 대화를 나눴고 동일한 생활양식을 지녔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나라가 되었고 개발되지 않고 공동화된 도심지의 일부만이 과거 이 나라의 정체성을 간직할 뿐이었다. 한국으로 도망치면서 얻게 된 유일한 변화는 집이 위치한 고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다였다. 당연히 나를 반기는 사람은 이 나라에도 없었다.


환경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긴 나는 스스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는 운동을 바꾸고 취미를 바꿨다. 이전에는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운동과 취미에 몰입했으나 한국에 와서는 사회에서 별나게 여겨지는 것들을 즐겼었다. 클래식 공연, 전시회, 미식회, 서커스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사회의 불순물이 된 내 처지에 동질감을 느꼈던 게 이유같다. 물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광대들은 나와 비교도 안되게 행복하겠지만 말이다.


나름 위안을 얻기 위해 사회의 비주류들을 찾아가봤지만 내 비참한 처지를 실감할 뿐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바뀌기 위한 발악을 하다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사회부적응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높아 갱생 프로그램이 배포된다는 소식이었다. 부적응자들은 가상현실에서 유전적 결함이 발현되기 쉬운 상황에 놓이고 그 테스트를 통과하면 준위험군으로 인정된다.


본래 사회에 높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 부적응 유전자들이 집회 및 모임을 가지는 건 금지되었지만, 준위험군으로 인정받으면 준위험군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망을 느꼈으나 다시금 절벽에서 떨어지는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나는 여자의 목을 내려쳤고 낭떠러지에서 낙하했다. 그리고 마침내 3개월만에 다시 테스트를 받은 나는 이번에도 나를 배신했다. 이제 나와 약속한대로 죽어야겠다.


VR고글을 내려놓은 나는 패딩을 걸치고 과도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생각은 명료했다. 그리운 숲으로 가자. 손목을 긋고 내 더러운 피 냄새를 덮어주는 숲의 향을 맡고 있으면 자연스레 모든 게 끝날 것이다. 설령 내가 다시금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더라도 내게서 새어나오는 피가 맹수를 불러줄 것이다. 나는 간만에 느끼는 상쾌함을 품고 거리를 걸었다.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쇼가 될 거예요.”



크라운 분장을 한 여자가 전단지를 내게 건넸다. 이내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곧 죽을 예정이지만 저 표정 변화는 내게 잔인한 풍경이었다.



“이번에는 다같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후회되지 않을 경험을 선사할거니 꼭 와보세요.”



분명 이어폰에서 주의를 들은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내가 공연에 와주길 원했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불러야 할 정도로 간절한 것일까? 표값도 받지 않는데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짝이는 여자의 눈동자에는 열기가 가득해서 내 마음도 동하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고객 끄덕였고, 여자는 환한 미소로 다시 전단지를 돌리러 갔다. 이제 누구도 종이에 쓰고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데 이들은 어떻게 전단지를 만들걸까? 곧 죽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기심이 잠시 생겼었다.


해가 질 무렵 죽기 전 마지막 여흥의 서커스가 시작됐다. 몇 차례 서커스를 봤지만 화려한 곡예가 신기하다는 게 내 감상평의 전부였다. 그런데 죽음 직전의 상황이 원인일까? 정말 열심히 준비한 서커스 사람들의 노력 덕분일까? 내 마음은 완벽히 공연에 휩싸여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와즈라고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했고 그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겨서 사람들이 비웃는 남자. 하지만 그가 얼마나 우승꽝스럽게 생겼든 그의 주위에는 친구가, 연인이 있었다. 더는 희망이 없어 죽으려고 했는데 내가 얼마나 사람과의 교류에 목말라 있는지 깨달았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죽어도 좋다. 대신 죽기 전에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었다. 마음을 터놓고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브라더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부적응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인터넷에서 모임을 주최할 수 없다. 그러면 인터넷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폐업한 종이 공장을 찾아갔다. 더는 인간이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았고 누구도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공장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


나는 조심스럽게 공장을 돌아다녔다. 절반쯤 돌 무렵 창고로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원래 잠금 장치로 엄중하게 보관 되었겠지만 내게는 운이 좋게도 이제 종이는 사회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이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종이가 들어있는 박스들이 가득했다. 박스 하나를 챙겨 공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방치 되어 있었지만 컴퓨터의 코드를 꽂으니 전원이 커졌고 프린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서툰 솜씨로 글을 적고 나름 머리를 써서 읽기 편하게 편집을 했다. 내 생각을 적는 건 정말 오랜 만이어서 무척이나 생경했다.


프린터 된 용지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를 간략하게 적었다. 섬 마을 출신이고 사냥을 배웠으며 사회에 부적합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걸 적었다. 그리고 위스키와 영화, 미식축구를 좋아한다는 내용도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친구를 찾는 다는 마음을 적었다. 아마 이 벽보를 본 사람 열에 아홉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 도태 되어야 하는 유전자의 추한 발악으로 여기겠지. 그래도 좋다. 백명 중 한명, 천명 중 한명이라도 이런 내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만족한다. 나는 다 큰 어른이 부끄러워 해야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관심을 원하니까.


이윽고 나는 브라더가 지정해준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 허용된 장소에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수백장 가까이 붙였지만 연락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작업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토록 강하게 원하는 걸 하고 죽고 싶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머리를 민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남자가 집 문을 두드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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