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세이디의 등장은 새로운 세상의 시발점이었다. AI에 문외한 사람일지라도 뉴스에서 세이디의 소개 영상을 보면 우리가 살던 세상이 바뀔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향간에는 부정적 반응도 있었지만, 내 기억상으로 세상은 분명 들떠 있었다. 과학 교과서나 SF영화에서 보던 편리하고 찬란한 미래의 혜택을 누릴 선택받은 세대라는 고양감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물론 특이점으로 인해 바뀔 세상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할아버지가 대표적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뭔가를 얻는다면 반드시 뭔가를 주게 되어 있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했지만, 그 말에는 반대도 동의도 하지 않았다. 대꾸를 안해서 대화 자체를 피했다. 분명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정력적이고 총기가 넘쳤다. 그러나 지혜로운 노인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AI의 음성에 비교했을 때 너무 초라해 보였다. 세이디는 노동을 없애줬고, 전쟁도 없애줬고, 빈부격차를 없애줬다. 그야말로 이야기 속 유토피아였지만, 어디서나 사회의 부적응자는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불행히도 나와 할아버지가 유토피아의 불순물이었다.
[의식주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환경에서 사냥은 죄악입니다.]
세이디는 배양육 기술을 혁신적으로 끌어 올렸고, 더는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동물을 사육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사냥도 마찬가지였다. 세이디는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자연을 훼손해야 함을 강조했다. 환경문제로 수십년간 두려움을 겪었던 인류는 당연히 AI의 가르침에 복종했다. 겨울철마다 할아버지가 사냥한 사슴 고기를 나눠먹던 섬 사람들은 은연 중 할아버지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총을 놓았고, 급속도로 늙어갔다.
등이 굽어지고 눈빛은 탁해져갔다. 하는 일 없이 집에 앉아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나 말고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게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세이디의 말처럼 이제 고기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였고, 바뀌어가는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시대를 거부했다. 아직 AI비서가 도입되기 전이었기에 할아버지는 각혈 후에야 병원을 갔다.
[암입니다. 이미 수술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항암 치료를 통해 2년 정도 수명을 연장하거나, 6개월 정도 진통제를 복용하며 살거나, 원하는 시기에 안락사를 하는 옵션 중 선택하시면 됩니다.]
할아버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당시의 나는 그 선택을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게 좋으세요?’ 나는 그렇게 질문했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때를 상기할 때면 역시 내게 소시오패스 유전자가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도 내 반응에 대해 변명을 해보자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안락사는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을 견디는 이유는 치료될 희망이 0.1%라도 있다면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이디 등장 후에도 의학은 별 다른 진보가 없었다. 장애와 불치병은 세이디도 치료할 수 없었다. 세이디가 할 수 없다면 누군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니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졌다. 사람들은 불가능해진 일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길 거부했고, 세이디도 안락사는 논리적으로 현명하다고 말해줬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당연한 선택지가 되었고, 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냥이라는 업을 잃은 할아버지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사냥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기억은 해다오.”
안락사용 캡슐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할아버지가 캡슐에 들어가고 3분 후 세이디가 의학적으로 완벽한 죽음을 선고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간편하고 빠르게 이뤄졌다. 그제서야 나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선택이었고 고통없는 편안한 죽음이었지만 나는 반대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결국 안락사를 선택했더라도 유일한 가족이던 나는 죽음을 부정해야 했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온다.
화장이 끝난 후 나는 섬을 떠났다.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지만 가장 또렷한 기억은 모두 ‘사냥’을 잃은 후의 할아버지와 그걸 외면하던 내 모습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죄책감에서 도망치고 싶던 나는 도쿄로 갔다.
떠나면서 마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홀로 맞이한 도쿄생활에 도움을 줄 지인은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개월 뒤, 세이디가 개인마다 전용 AI비서를 보급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네 생활패턴을 분석해서 가장 알맞은 집을 배정했어.]
브라더는 나카노에 위치한 빌라를 소개해줬다. 4층에 위치한 방과 부엌에 사이에 중문까지 있는 깔끔한 집이었다. 침대와 옷장을 두면 꽉차는 사이즈였지만 혼자사는 게 낯설어서 집은 좁은 게 좋았다. 그 집이 특히 좋았던 건 도보 15분 거리에 미식축구장이 있어서였다. 세이디가 만든 로봇들이 모든 노동을 대체하면서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게 필수가 되었다. 누구나 스포츠 클럽 하나 정도는 가입했고, 5~6개를 가입한 사람도 흔했다.
낮에는 직접 경기를 뛰고 이성을 만나 관심있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섹스를 하는 게 도쿄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양식이었다. 누구나 이런 생활을 원했기에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 도시는 사람없는 유령도시가 되어갔다. 이키 섬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내가 떠나기 전부터 적잖은 사람들이 터전을 옮기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 남지 않았을까 싶다. 도쿄에서 생활하면서 문득 이키 섬이 무인도가 된다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는 중요한 일은 없었지만,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서 바빴고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Set, Hut!"
도쿄에서 나는 미식축구에 빠져 있었다. 별도로 자주 바뀌는 클러도 2~3개 있었으나 미식축구만큼 열중하지는 않았었다. 내 포지션은 러닝백으로 공을 잡으면 최대한 앞으로 달리는 역할이었다. 나를 붙잡으려는 수비수를 전력으로 피하다가 마침내 누구의 손길도 닿지 못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나는 형용하기 힘든 해방감을 느꼈었다. 좋아하는 만큼 제법 잘했었다. 내가 속한 팀은 강했기에 시 대회 4강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게다가,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날이면 경기를 본 여자들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그러면 나는 SNS 프로필에서 취미를 확인했다. 나는 도쿄에서 미식축구 만큼이나 영화와 위스키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밤 모텔에 가기 전 영화와 위스키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상대인지가 매우 중요했다. SNS상에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여자만 있을 때는 살짝은 간곡한 뉘앙스로 여자에게 요청했다. 내 요청 전략은 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이용하는 거였다. 그 루틴을 수행해야 밤에 정상적으로 기능이 작동한다는 말을 완곡히 표현하면 대부분의 여자는 응해준 것이다.
나는 특히 세이디가 만든 명배우 이든 베일의 영화를 좋아했다. 세이디는 이든 베일이라는 캐릭터를 사용해 주로 서스펜스 영화를 제작했다. 누명을 쓰거나 기이한 상황에 놓인 이든 베일이 몇 번의 아찔한 상황을 피해 마침내 도망에 성공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도쿄에서는 대략 그렇게 살았었다. 1년 동안 거의 매일을 클럽에 참가하고 여자를 만났지만 이름이나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은 없었다.
클럽 활동 쿼터 타임에는 모든 언어를 번역해주는 이어폰을 통해서 작전 공유가 이뤄졌고, 모든 섹스는 하룻밤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극적이면서 무료한 일상이 기계적으로 반복되었다. 자극과 반복에 사고가 마비되어 갈때쯤 큰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