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를 찾아줘! (4)

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by 이장작

그 건물은 전 세계 어디서나 눈에 띄는 분홍빛 조명으로 반짝였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히 빛나는 조명에는 옅게 적색 계열의 빛이 섞여 있어 은근한 야릇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세이디가 전 세계를 경영하면서 스포츠 시설만큼이나 많이 지은 것이 모텔이었다. 낮에는 경기장에서 근육을 반짝이며 성적 매력을 어필하던 사람들은, 밤에는 호기심이 생긴 이성과 모텔로 향했다.


다만, 위대한 AI가 권장하는 일이라도,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건 대다수에게 버거운 일인지라, 전용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섹스가 유전적 교배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과거에는 서로의 집으로 가 섹스를 하는 것도 일상이었던 걸로 보인다. 과거의 영화에서는 그런 과정이 로맨틱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섹스가 감정적 교류의 연장선이 아닌 단조로운 의미를 지닌 행위가 된 지금은, 낯선 타인을 섹스 상대라는 이유로 본인의 은밀한 거주 공간을 공개하는 건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이걸 예상했던 세이디는 전 세계에 부담없이 유전자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해준 것이다.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문이 갈라지고 안으로 들어서면 원통형의 키오스크의 일렬 횡대가 남녀를 맞이해준다. 나와 콜은 그 중 하나를 골랐다.



[2인, 3인, 4인, 기타 중 방을 이용하실 인원수를 골라주세요.]



콜은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고 나는 무미건조하게 검지로 인원수를 체크했다.



[회전형, 워터형, 유리형, 컨셉형 등 다양한 옵션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옵션을 선택해주세요.]



방의 옵션, 대여를 희망하는 도구, 필요한 보충제 등 키오스크는 질문이 많았다. 세심한 세이디가 개개인의 성적 욕구를 배려해주었기 때문인데, 내게는 번거로운 배려였다. 지금껏 백 단위의 유전자를 채취한 만큼 이 과정에서 남성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빈번했다. 빠른 걸 좋아하는 나는 항상 기본형에 도구없이 진행하고 싶었으나, 적잖은 남자들이 필수품처럼 특정 옵션을 선택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섹스의 선택권은 여자에게 있었기에 잠깐의 소요 후 남자들은 내 취향에 맞추는 쪽으로 타협을 시도했다. 다만, 몇몇 남자들은 옵션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서,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던 나는 원치 않게 다양한 취향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콜은 내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느긋하게 서있기만 한 걸로 보아 까다로운 취향을 지니지않은 것 같다.



[저를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끝내니 2m남짓한 로봇이 우리를 안내했다. 짙은 그레이 색 로봇은 얼굴이 위치한 부분에 표정이 없어서 거리감이 있었다. 저 로봇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또한 피터처럼 세이디의 일부분인데 기묘한 일이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문 앞에 도착한 로봇이 유유히 사라졌고 나와 콜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황빛 조명이 방안을 불투명하게 밝혔다. 나는 어깨에 맨 가방을 바닥에 떨구고 콜의 허리를 안았다. 콜은 살짝 당황한 듯 했으나 마음에 드는 듯 내 허리보다 조금 아래 부분에 손을 얹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고 싶었으나, 남자는 그것을 하기 위해선 절차가 필요했기에 콜의 입술을 핥았다.


콜의 두툼한 입술이 열리고 내 혀가 치아를 긁었다. 타액이 교환되고 콜의 숨결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그의 몸으로부터 온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가 내 골반쯤에 도착했다. 내 손이 그의 셔츠 안을 파고 드니, 콜이 생긋 웃었다.



“씻지도 않고 바로 하는 걸 좋아하나요?”

“빨리 하고 싶어서요. 대신…”

“대신?”

“콘돔은 껴야죠.”



나는 콜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은박색 비닐을 꺼냈다. 콜의 뺨에 입맞춤을 한 다음 나는 그의 바지를 내리고 비닐을 찢어서 준비된 그에게 콘돔을 끼웠다. 숙련된 기술을 선보이는 듯한 내 손길에 콜은 어이없다는 듯 턱을 살짝 흔들었다. 물론, 거절의 표현은 아니었다.


그의 동의까지 확인한 나는 그의 몸에서 잠깐 떨어져 나왔다. 아쉬움의 빛이 옅게 보이는 눈동자를 외면한 나는 준비된 침대 옆에 서 속옷을 내리고 엎드렸다. 내 손으로 치마까지 걷어 올렸으니,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콜도 잘 알 것이다. 사회적으로 섹스를 하기 전 해야 하는 모든 절차를 생략한 나로 인해 콜이 당황했다는 게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당혹케 했다는 점에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으나,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걸 싫어했고, 경험상 이 자세가 가장 효율이 좋았다. 그리고 어떤 남자든 낯설다고 해서 침대 위에 놓인 여자를 거절하는 경우는 없었다.


킥,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콜의 살덩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맞닿은 부위를 중심으로 배 안까지 통증을 담은 감각과 뜨거운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콜의 거대한 몸이 밀고 들어오는 힘은 내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의도가 담긴 것처럼 거칠게 내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내 가는 팔은 기묘할 만치 안정적이라서 그의 살덩이가 수축할 때까지 우리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뜨거워진 그의 손이 내 등 위에 얹어지고 콜의 상반신이 내게 살짝 기댔다. 그의 가쁜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에서 나는 그가 빨리 내 뒤에서 비켜주길 바랐다. 그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으나, 나는 침묵했고 그는 건조하게 내게서 물러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나는 옛날 이야기 속 수금업자처럼 그의 몸에서 콘돔을 회수하고 끝을 묶었다.



“어땠어?”



어째서 남자는 세상 무엇보다 섹스를 원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막상 섹스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많은 여자와 매력적인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남성으로서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걸까? 나와 섹스했던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로부터 자신의 섹스가 훌륭했음을 확인받고 싶어했다. 그 간절함에 매너를 지키는 건 참 쉬운 일임에도 나는 빈번히 솔직하기를 선택했다.



“빨라서 좋았어요.”



콜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190cm의 체격에 시에서 인정받는 재능있는 야구 선수. 우월함을 매일 확인받기에 여유가 떠날 일 없는 그가 이 짧은 한 마디에 흔들리는 건 신기했다. 남자에게 있어서 크기와 오래감은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인 것 같다. 크면 아프고 오래가면 시간이 낭비될 뿐인데, 나로서는 이해가 어렵다.


나 같은 왜소한 여자 따위는 단숨에 목을 꺾어버릴 수 있는 본인이 분노를 표시함에도 무미건조한 내 반응이 다시금 콜의 심기를 자극했나 보다. 표정이 험악해지지던 그는 기발한 복수법을 생각한 것처럼 코웃음 쳤다.



“창부보다 재미없는 여자일 줄이야. 오늘밤이 아까워서 창부라도 불려야겠어.”

“창부도 당신을 좋아할 거예요. 빨리 끝내주니까.”



이 미친년이! 콜이 소리지르면서 내 목에 손을 감았다. 무서워해야 마땅한 상황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서움을 느낄 수 없는 세상이다.



[그 손을 당장 놓으시길 바랍니다. 명령에 불응할시 무력으로 당신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나와 콜의 손목 시계에서 경고가 울렸다. 경고가 끝나자마자 우리를 안내해준 로봇이 문을 열고 들어와 콜의 뒤에 섰다. 비서 없이는 무엇도 할 줄 모르는 우리는 항상 디바이스를 몸에 두르고 있다. 휴대폰이, 시계가, 이어폰이, 렌즈가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세이디의 보호를 받는다.


콜은 나를 던지듯이 손을 뗐다. 곧바로 바지를 챙긴 그는 방을 나갔고, 로봇도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닫힌 문을 응시하다가 할 일을 떠올리곤 콘돔을 집었다. 침대 옆 협탁의 서랍을 열면 작은 박스에 포장된 유리 시험관 세트가 구비되어 있다.



“피터, 데스크에 검사기 주문해줘.”



나는 시험관과 같이 밀봉된 소형 가위로 콘돔을 매듭을 자르고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시험관으로 옮겼다. 그 과정을 마치고 나니, 타이밍 좋게 로봇이 벨을 울렸다.



“들어와도 된다고 말해줘.”



문이 열리고 매너있게 오른손을 뒷짐진 로봇의 왼손에는 위아래로 나눠진 두개의 원판 형태의 기계가 놓여 있었다. 몇 걸음 다가온 로봇은 양손으로 기계를 받치고 정중히 내 앞에 그것을 내밀었다. 기계의 윗쪽 원판에는 사선으로 기울여진 구멍이 3개가 나있었다. 나는 그 구멍에 시험관을 놓고 아래쪽의 검은 버튼을 누르면 기계는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2분쯤 가만히 돌던 기계가 멈추고 내 휴대폰에 결과가 도착했다.



[87%의 유전자 적합성을 보이고 있어. 장애와 불치병이 생길 확률은 3%미만, 소시오패스 및 사이코패스 확률도 평균치보다 낮으나,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폭력성으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9%야.]

“아, 이번에도 실패네.”



나는 100%를 찾고 있다. 그저 씨만 뿌리면 되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수정을 하게 되면 10개월 간 세이디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불편과 통증을 경험해야 하니까. 나와 100%일치하는 완벽한 유전자가 아니라면 임신할 마음이 없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불안했다.



[그래도 지난번 경륜 선수보다 4% 높아. 너무 우울해 하지마 소연.]



피터의 심심한 위로에 애써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세 자리 수의 남자로부터 유전자를 채취했다. 내 유전자에 적합한 완벽한 정자를 찾기 위해서. 그 덕분에 91%까지 일치하는 정액도 찾았었다. 91% 이하의 유전자는 무의미했기에 사실상 오늘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거였다.



“내 나이가 몇살이지 피터?”

[27살이야.]



세이디가 알려준 최적의 임신 연령은 25세에서 32세 사이였다. 출산까지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니 31살까지는 100%의 유전자를 찾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뭐,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이것도 은행에 보관해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봇은 기계와 콜의 정자가 들어간 시험관을 들고 나갔다. 이제 저 시험관은 정자은행에 들어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후보가 될 것이다. 세이디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피터 네가 정자은행에서 100%를 찾아주면 내 인생이 편해질텐데.”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그건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야.]



네네, 나는 빈정이 상했다는 태도를 보이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첨단 과학의 상징인 AI는 자연의 법칙을 중요시했다. 교배는 반드시 발품을 팔아서 이성을 찾고 섹스라는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주제로 피터와 얘기할 때면 나는 이따금 AI에게 강력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아직 시간이 많아. 여유를 가져 소연.]



피터의 말처럼 내게 시간은 많다. 내가 할 일이라곤 수영을 하고, 밥을 먹고, 남자를 찾는 것 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듯 초조함이 나를 엄습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섹스로 올라갔던 쾌락 호르몬이 추락할 타이밍일까? 영문 모를 불쾌함과 허무함이 가슴에서부터 목젖까지 번져갔다.


섹스가 끝나면 어김없이 이 순간이 찾아왔고 나는 구역질 직전 같은 이 기분이 머무를 때면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내가 이대로 눈을 감아도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생물로서 다음 세대의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는 의무와 죽음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몸집이 거대한 단세포 생물이었다.



“피터, 멋진 남자를 찾아줘. 100%인 남자를 찾고 싶어.”



갈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난 ‘성공’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은 희미해진 과거에 존재했던 그 감정은 분명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지루한 인생에서 사람을 구원해줄 듯한 그 감각은 멸종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인간이 도전할 것이 없으니까. 사람의 모든 행위는 번식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이제 내가 성공을 느낄 방법은 내게 맞는 완벽한 남자를 찾는 것뿐이다. 나는 방법을 모르니 이번에도 피터에게 물어봤다.



[관악구쪽에 재능이 출중한 클라이밍 선수가 있어. 만나러 갈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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