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를 찾아줘! (3)

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by 이장작


자주빛 천막은 밤의 먹색에 물들어갔다. 제법 칼찬 바람에 천막은 흐늘거렸으나, 하늘을 향해 천막을 드높인 기둥은 굳건했다. 소연은 200년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신성한 경기 중 여자에게 작업을 건 이 남자에게 엉뚱한 면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껏 세 자리 숫자의 남자와 연을 맺었지만, 서커스에서 만나자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이런 데이트 신청이라면 서커스가 별종들의 취미가 아니던 시대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행동이었다.


피터가 추천해준 애니메이션에서 서커스가 대략 어떤 건지 보긴 했었다. 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몸을 혹사하며 쌓은 기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 돈을 버는 행위. 하나, 실제로 서커스의 빅탑 입구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라 기분이 생경했다. 외부와 차단된 듯한 공기에서는 묘한 열기가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한 산업의 상징의 서글픔도 흐르고 있었다.


전자매체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으며, 특이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명한 단체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호황을 누렸다고 피터가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진정한 별종들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세이디 탄생 이후 모든 인프라는 세이디가 자원을 배분해서 보수하고 건설했다. 세이디는 자연과의 공존을 중요시했기에 모든 신규 공사는 필요성이 인정되는 한에서 이뤄졌다. 그렇기에 세이디가 장려하는 산업인 스포츠는 어느 거주지에서나 연습과 경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기반시설이 건설 되었다. 그러나, 서커스는 세이디에게 있어서 완벽한 자원낭비로 보였나 보다.


세이디는 서커스를 위한 시설에 자원을 배분하지 않았다. 즉, 이 서커스 장은 서커스를 하고 싶다는 별종들이 모여서 직접 지은 것이다. 한정된 자원인 인간의 수명을 이런 생산성 없는 짓거리에 쓴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사람 한 명의 일생을 갖다 바쳐도 다 볼 수 없을 만큼의 콘텐츠를 세이디가 매해마다 찍어내는 상황에서 이런 낡은 볼거리를 찾아온 콜이라는 남자도 이해가 안되긴 했다. 물론 남자를 만나는데 취미가 같을 필요는 없었지만.



“여기에요!”



공연 시작 전의 적막함을 콜의 목소리가 갈랐다. 대부분 빈 좌석 사이를 듬성듬성 채우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나와 콜에게 모였으나, 이내 그들은 자신들의 AI가 보여주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생각보다 많네요.”

“뭐가요?”

“사람이요. 이런 옛날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하하, 제법 뼈가 있는 말이네요.”

“아뇨,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놀란 거예요.”



콜은 싱긋 웃더니, 내게 팝콘을 건넸다. 입에 넣은 팝콘은 이미 식어 있어서 기름 냄새가 풍겼다. 간도 싱거워서 로봇이 만든 게 아닌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서둘러 입을 헹구고 싶어 그의 좌석에 꽂혀 있던 콜라를 뺏어 마셨다.



“당연코, 제 인생 최악의 팝콘이네요.”

“사람이 직접 만들었거든요. 멋지지 않아요? 관객들을 배려해서 팝콘도 준비하고.”

“콜라만 주는 게 더 만족할 거 같군요.”

“너그럽게 한 번 즐겨보세요. 저는 좋아하거든요. 이따금씩 별식을 먹는 것도.”



나를 보는 그의 눈이 뱀처럼 번뜩였다.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함을 짐작했다. 곧바로 그와 키스를 할 수도 있는 거리에서 나는 재빨리 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이리라. 시선을 붙잡는 콧대, 본래 백색이었겠으나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 남성성이 돋보이는 턱은 내 수집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공연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연의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배가 동그란 검은 줄무늬 바지를 입은 광대가 링에 올라와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쇼가 시작되었다. 피터가 알려준 공연의 이름은 ‘볼타’였다. 볼타의 주인공은 와즈라는 남자 발레댄서였다. 기술을 갈고 닦은 그는 성공을 위해 TV쇼에 출연했으나, 공연 중 가발이 벗겨진다.


가발 밑에는 와즈의 특징이던 파란색 모히칸 머리였다. 진행자와 관객들은 와즈의 머리를 비웃고, 와즈는 수치심에 방황한다. 자신을 미워하던 와즈에게 운명의 여자 엘라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나타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와즈는 자기혐오를 멈추고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란 막대를 들고 빅탑과 맞닿을 높이에서 외줄타기를 시도하는 곡예사를 보던 중 대각선 앞의 남자가 눈에 밟혔다. 내가 남자를 눈여겨 보는 건, 성적 매력을 느꼈을 때 뿐이지만 이번은 예외상황이었다. 아마 두번째였다. 남자가 우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남자의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막이 진행될수록 남자의 눈물은 많아지는 것 같았다. 저 눈물은 공연에 대한 감동이겠지? 아마 맞을 것이다. 곡예사가 저글링을 하거나, 죽마를 탄 채 티터보드를 밟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묘기를 보일 때마다 이 극장에서 유일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까. 무미건조하던 서커스에 저 남자가 생기를 불어 넣는 것 같았다.


공연에 집중하는 남자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공연에 무관심하던 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링 위에 집중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세이디도 척추가 부러진 사람은 못 고치니, 곡예사들의 묘기는 처음 접할 때만 하더라도 그저 위험천만한 자살행위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게 공연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가슴에서 생경한 감정이 지펴졌다. 이따금씩 위대하다고 불리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 곡예사들의 육체가 내 마음에 그런 감정을 그리고 있었다.



“서커스는 처음봤는데, 생각보다 재밌네요.”

“그래요? 곡예사들이 매력적이긴 하죠.”

“네, 여기로 불러줘서 고마워요.”

“뭘요, 저야 말로 한번에 소연 씨도 알아가고 동시에 곡예사도 보니 고맙죠.”



공통된 취미는 남자를 만날 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는데, 공통된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건 즐거운 행위였다. 불필요한 과정을 지겨워하던 내가 콜이라는 남자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소연 씨도 별식을 좋아하는 취향인가 보네요.”

“네?”



이런…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와 나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나 보다. 먹색이 점으로 박힌 탁한 우유빛 타이즈를 입은 곡예사들이 나와 아크로바틱한 묘기를 선보이자 콜의 뱀처럼 번뜩이는 눈이 링을 향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달라붙는 천으로 조각된 곡예사의 엉덩이 라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저는 이따금씩 곡예사가 생각나요. 그녀들의 유연한 몸은 다른 여자들에게선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해주거든요. 전 그걸 아주 좋아하죠.”



그의 선명한 미소에서 다시금 새하얀 치아가 돋보였다. 그래 이게 현 시대에 정상적으로 적응한 사람의 사고방식이다. 이 시대에서 사람은 본인의 육체를 가꾸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인의 우월성을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자신이 뛰어난 유전자라고 자위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안심할 수 있으니까. 사람은 남보다 낫다는 걸 확인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생물이다.


세이디도 인간의 타고난 질병을 알기에 우리들에게 가장 간단한 경쟁의 장소를 만들어 준 것이리라. 남자에게는 새로운 여자에게 자신의 씨앗을 뿌리는 것도 남자로서의 우월성과 자아를 안심받는 행위일 것이다. 콜은 지극히 인간다운 남자였다.


반면, 저 서커스 단은 어떠한가? 목숨을 걸고 신체를 단련하지만, 그것은 현 시대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까. 경쟁에서 벗어난 저들은 완전히 시간낭비를 한 것이고 이 시대에 선택받지 못한 개성인 것이다. 이런 비생산적인 쇼에 인생을 건 곡예사들도, 이런 쇼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몰입하는 저 남자도. 지금의 시대엔 콜의 유전자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리라. 그리고 지금 이 빅탑을 나가는 것도. 빠른 것이 좋으니까.



“이제 그만 호텔로 가죠. 콘돔 챙기고.”



콜의 입가에서 어느 때보다 크게 치아가 드러났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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