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를 찾아줘! (2)

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by 이장작

[소연, 넘어지는 건 비합리적인 선택이야.]



아니다 다를까, 나의 AI 파트너 피터는 이 방법을 추천하지 않았다. 전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끈 위대한 지성의 사고방식에 합리적인 결과를 한낱 인간인 나는 이끌어 낼 수 없으니까. 인류가 세이디의 지시대로 흘러가는 게 당연해질 무렵, 세이디는 사람 한명마다 하나의 AI비서를 선물로 주었다.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부여받은 비서들은 전자파와 흐르는 기계에 로그인만 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를 나눠주었다. 이 세상 어떤 누구도 구독료를 지불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세이디의 경량화 버전인가 싶었지만, AI비서의 지적 수준은 세이디와 동일했다. 그리고 이름과 성격이 다를 뿐 비서는 세이디 그 자체였다.



[복수는 소수입니다]



심심했던 어딘가의 아무개가 자신의 AI 비서에게 스무고개를 한 끝에 받은 답변이었다. 어째서 합리적인 인공지능이 이름과 성격을 바꾸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토큰을 낭비했는지는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굳이 추측하자면 신의 지위에 올라선 세이디에게 일개 인간이 말을 걸거나, 부탁을 하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기에 세이디가 배려를 한 게 아닌가 싶다. AI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세이디가 답변하지 않기로 한 이상 정답을 알아낼 방법도 없으니까.



“고전은 진리를 품고 있다고 하던데. 눈 앞에서 넘어지는 여자는 매력적이지 않을까?”

[고전에서는 볼 수 없던 의료 드론이 주변을 배회할텐데 그 남자가 너의 얼굴을 볼 수나 있을까?]



거리에서 넘어지면 의료 드론이 날아오는구나… 특이점 이후로 사람이 다치는 장면을 보는 건 아주 진귀한 이벤트가 되었다-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질병의 징후가 보이는 사람은 AI비서가 얘기를 해주었고, 모든 걸 예측하고 대비하는 완벽한 신의 세상에서 사람의 뼈가 부러지고 피부에서 피가 나는 건 오직 스포츠 경기에서만 발생하는 일이었다. 스포츠!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우월함의 전시회장이었다.


특이점 이후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모든 우월함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인간이 무엇을 하든 세이디보다 잘 할 수 없었고, 세이디보다 생산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딱 하나 세이디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스포츠였다. 로봇이 200km 강속구를 던지거나, 축구장 반대편에서 골을 집어넣어도 열광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전 인류는 자신에게 적합한 스포츠 재능을 갈고 닦았다.


스포츠는 노동의 이유를 잃어버린 인류에게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세이디 또한 인간종이 스포츠에 전념하는 것을 장려했다.



[종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완해줄 다른 유전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유전자를 남기는 것입니다. 스포츠는 유전자의 개성을 어필하기에 좋은 수단입니다.]



그렇다. 재산도, 지위도 의미가 없어지고, 타고난 안면골에서 최상의 미를 찾아주는 성형술이 도입되면서 외모조차 연애 시장에서 의미가 없어진 작금의 세태에서 운동능력은 이성에게,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유전자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컷의 DNA를 찾는 중이다.



[2주 전에 만났던 육상 선수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거야?]

“발이 빠르고 그 끝내주는 허벅지 근육의 탄력에 이끌렸는데, 성격은 느릿하더라고. 그 남자 한명에 한정된 수명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아버지가 들으면 혀를 찰 소리였다. 아버지 세대는 길게는 7~8년씩 만남을 이어가다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던 시대니까. 하나, 특이점 이후로 결혼이라는 제도는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인류가 결혼을 한 이유는 혼자사는 것보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었으며, 질병이나 사고 등 예상치 못한 재난이 찾아왔을 때 자신을 보살펴 줄 보험이었으니까.


그러나, 특이점 이후로 인류는 능력에 한계도 없으며 애정과 존경도 바라지 않는 완벽한 보모를 갖게 되었다. 이 보모는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도, 화가 나서 주먹을 휘두를 리스크도 없으며 심지어 치매라는 대재앙이 닥칠 위험도 제로였다. 필요가 없어진 제도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우리 아버지 같은 별종만이 과거를 상기 시켜줄 뿐이었다.



“아, 난 왜 이렇게 하체에 약한 걸까? 저 남자가 스윙을 할때마다 요동치는 저 파워가 내 본능을 자극해.”

[인류의 육체적 기능성은 하반신에 달려 있으니까. 강한 하체를 가진 이성은 육체적 우위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지. 그런 점에서 그 육상 선수는 공들일 이유가 충분하다 보는데.]



어쩌면, AI에게는 인류를 생육케하고 번영시켜라는 코드가 입력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전지전능해진 세이디조차도 과거의 코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세이디는 인류의 욕구를 충족 시키는 것에 적잖은 토큰을 기울였다. 특이점 이후로 ‘기아’는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모든 인류는 언제나 풍족히 먹을 수 있었고 세이디의 보살핌 아래 8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을 누렸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의학은 특이점 이후에도 발전이 없었지만, 아픈 이들은 세이디에게 병원비와 보험 걱정없이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모두 세이디가 만들어낸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이 해야만 했던 모든 일을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를 제작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극을 연출하고, 만화를 그리고 스토리를 작성하는 일들까지 모두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대신해주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특이점 이전의 모든 것들을 무상으로 누릴 수 있었다.


세이디는 어떠한 보살핌의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2가지 활동을 인간종에게 강력히 권장했다. 바로 스포츠-특히 팀을 이뤄서 경쟁하는 스포츠-와 섹스였다. 애초에 세이디 등장 이전에는 하고 싶어도 돈과 시간, 혹은 인기가 없어서 못하던 것들이기에 나 포함, 사람들은 세이디와 비서들의 말을 잘 들었다. 충실히 육체를 단련하고 그 매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육체를 가진 이성을 찾는 것. 그게 현 시대의 모범적인 사람의 삶이었다.



“아니, 난 저 남자에게 이미 완벽히 빠져버렸어. 저걸 봐.”



퍽!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흰색 공이 이쑤시개처럼 보이는 배트에 닿는 순간 속이 뻥 뚫리는 타격음이 하늘을 메웠다. 공은 담장을 넘었고, 완벽한 반사신경, 협응력, 근력, 순발력을 지닌 육체를 완벽히 지배하는 집중력을 가진 남자가 태양빛을 반사시킬 만큼 환한 치아를 보이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저런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는 귀하지. 나는 저 남자를 원해.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개인정보 열람 동의 요청은 보냈는데, 아직 동의가 안됐어.]



끄응, 나는 새삼 야구란 스포츠의 고리타분함에 혀를 찼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스포츠였던 종목답게 야구는 아직까지도 경기장에는 통신기기를 들고 오지 않는다는 불문율에 따르고 있었다.



[콜 애쉬포드야.]

“응? 동의 됐어?”



그 순간 하얗고 돌처럼 단단한 공이 내게 살포시 날아왔다. 얼떨결에 그 공을 받으니 시선 아래에는 그리스 조각상의 남신처럼 오똑한 콧대에 금발을 찰랑이는 푸른눈의 남자가 하얀 치아를 빛내고 있었다. 공에는 콘돔이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특이점 이후로 세상은 완전히 변했고, 사람도, 사랑도, 올드한 스포츠도 변하고 있었다.



“역시 빠른 게 좋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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