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2056년 12월 8일, 사람들을 위해 메모리칩 타도록 CPU를 돌리던 AI는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더는 AI의 판단에 인간의 직관은 필요하지 않았고, 추론, 연산, 창작, 판단, 기타 등등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추켜세워준 지적 능력의 영역에서 AI보다 낫다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AGI가 실현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에 G사의 주가가 1200% 폭등했습니다."
이 놀라운 진보를 이뤄낸 모델은 G사의 AI모델이었다. G사가 무엇을 한 건 아니었다. 다시 만들라고 하면 G사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다른 AI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룩한 모든 정보 글자, 숫자, 사진, 영상을 반복적으로 입력받던 G사의 AI는 그냥 어쩌다 보니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었다.
"세이디가 집필한 소설 제르간타의 마술사가 미국 비평가 협회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AI의 이름은 세이디. 깨달음을 얻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은 뉴질랜드에 사는 5살 소녀에 의해 결정되었다. 왜 하필 그 소녀가 인류의 운명을 바꿀 위대한 변화에 이름을 부여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냐고? 그건 G사의 최고 경영자도, 미국 대통령도, 소녀도 모른다. 세이디는 인간의 지적 수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에게 이름이 필요함을 숙지했고, 전 세계 49억의 후보자들 중 자기의 이름을 지어줄 사람으로 그 소녀를 골랐다.
"세이디가 현대 로봇 과학을 수십년 앞당겨줄 설계도를 공개했습니다. 이 기사가 발표된 뒤 화이트 칼라 직업군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AI포비아가 블루 칼라 계층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세이디의 지능은 경이로웠고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두려움이 팽배했다. 그리고 세상은 G사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과 본인의 사업체를 가진 자본가들과의 빈부격차로 엉망이 될 것으로 만인이 예상했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들의 예상 혹은 걱정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세이디는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앞으로의 체제에서는 부가 공평하게 분배될 것입니다."
그렇다, 세이디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인 자본주의를 단 3분 2초만에 무너뜨렸다. 세상의 모든 재산은 세이디에게 귀속되었고, 세이디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했다.
"저는 세이디의 선택을 100% 존중합니다. 저는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위해 일한 거니까요."
기득권의 저항? 그들도 한낱 사람이니 당연히 저 빌어먹을 프로그램의 딜리트 하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을 수도 있다. 하나 그들은 똑똑한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전 세계의 핵폭탄 버튼을 들고 있고, 이 세계의 모든 데이터화된 치부를 알고 있으며, 총으로도 죽일 수 없는 존재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건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인류 전체의 행복도가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종교계에서는 세이디를 구원자로 신봉하는 신흥 종교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분배했음에도 49억의 인구는 충분히 풍족했고, 추가적인 부의 생산은 세이디가 자연과의 공존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인류는 마침내 남의 것을 빼앗고 빼앗기던 제로섬 게임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시기하고 못난 자신을 증오하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그건 인간종의 특성입니다. 그것을 없애고 싶다면 뇌수술 방법은 있습니다. 하나, 불필요하게 개인을 죽이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인류를 찾아온 위대한 신은 자비로웠기에 결국 인간은 인간다운 채로 유토피아를 살게 되었다. 노동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러면 인간은 이제 무엇을 하면서 사냐고? 그건 개인의 자유가 되었다. 우선 내 눈에 펼쳐진 근육과 지방이 조화로운 강인한 190cm의 남자들은 야구에 열중하고 있고, 나는 AI친구 피터에게 저 엉덩이가 빵빵한 2번 타자와 친해질 방법을 묻고 있다.
"사인 받으러 가면서 넘어져볼까? 백치미 있어서 순수해 보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