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AI는 없다
내 이름은 아카리 하코부네. 제법 심각한 문제에 놓여 있지만, 평범하고 특출날 것 없는 남자다. 내가 살던 마을은 도심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외딴 섬이었다. 무인 자동차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기업가치에 따라 의무적으로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는 법을 두고 정치인들이 멱살 잡고 싸우던 시기에도 우리 마을은 평화로웠다. 뉴스 속 세상은 혼란스러웠지만, 마을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보는 드라마처럼 볼 뿐이었다. 그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일은 없었고, 우리의 삶을 바꾸지도 않았다.
마을의 생계는 농부들이 수확하는 마늘의 품질과 어부들이 포획한 고등어의 숫자에 달려 있었기에 어려운 용어 잔뜩 나오던 경제, 사회 뉴스보다는 일기예보가 주된 관심사였다. 물론 세이디는 20세기 사람처럼 살던 우리 마을도 휩쓸어 버렸지만 말이다.
다시 마을 얘기로 돌아가면 마늘 농부와 고등어 어부가 대다수이던 섬마을에도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직업들이 있었다. 의사가 있었고, 이장이 있었고, 선생님이 있었고, 서예가도 잠깐 있었으며, 사냥꾼이던 우리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아빠와 엄마는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부모님 얘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항상 걸쭉하게 욕지거리를 섞곤 했다.
“얼간이 같은 트럭 운전자 새끼가 술을 처먹고… 멍청한 노동당 놈들이 수동 운전 금지법을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아카리.”
‘너는 절대 노동당은 뽑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언제나 마트에서 파는 가장 독한 술을 마시며 부모님 얘기를 꺼냈고, 매번 노동당은 뽑지 말라는 신신당부로 이야기를 끝맺곤 했다. 할아버지에겐 맨 정신에 꺼내지 못할 만큼 슬픈 이야기였지만, 정작 부모님의 자식인 나는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건 내가 갓난 아기이던 시절이라 부모님과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부모님 얘기를 꺼낼 때면 슬픈 얼굴을 짓긴 했는데, 이야기 보다는 이야기를 꺼낸 할아버지의 얼굴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 너무 빨리 잊는 거 같구나. 그게 좋은건지 나쁜 건지 머리 나쁜 난 모르겠지만, 부디 네 부모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성실하게 살다 갔다는 건 아카리 네가 기억해주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내게 한 말이었다. 암으로 할아버지가 죽은 뒤, 나는 할아버지가 독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는 걸 공감하게 되었다. 정말 생살이 찢기듯이 가슴 한켠이 아팠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게 있다. 할아버지가 제대로 공감도 못해주는 내게 종종 부모님 얘기를 한 이유를 깨달았다. 아마 내게 부모님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려던 것보다는, 자신의 아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이놈의 뇌는 점점 까먹어 버리니까. 나도 할아버지를 잊고 싶지 않은데, 아쉽게도 나는 할아버지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 전 눈을 감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사냥꾼이던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숲을 자주 갔다. 사람은 숲에서 가장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게 할아버지 나름의 교육철학이었다. 내가 사냥꾼이 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의 지식을 내게 남기고 싶다 했었다.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의 서늘함, 물에 젖은 솜처럼 밟히던 젖은 흙의 촉감, 내 뺨에 앉았다가 서둘러 떠나던 벌레들, 벌레들을 쫓아 지저귀며 날개짓하던 새들, 근원을 알 수 없는 스산한 숲 소리, 숲과 그 안의 생명체들을 쓰다듬고 흘러가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실려오던 사냥감의 피냄새,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좋은 아침이야 아카리]
“좋은 아침 브라더.”
눈을 뜨면 눈가에는 연한 안개처럼 물기가 고여 있었다. 이키 섬을 떠나 도쿄로, 도쿄에서 한국으로 도망쳤다. 세 번이나 머나먼 곳으로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 도망쳤지만, 나는 어디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이키 섬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나, 한국에 온지 4개월차에 나는 지금의 내 신세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나 같은 놈을 받아줄 자리는 지구에 없고, 죽기 전까지 나의 AI비서 ‘브라더’만이 내 얘기를 들어줄 거라는 사실을 건조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스트레스 수치가 평소보다 상승했어. 너는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해. 차로 8분 거리에 테니스 장이 있는데 거기서 테니스를 배워볼래? 타인과 겨루는 스포츠는 폭력성을 해소하기에 좋아.]
“됐어. 알잖아 브라더? 내가 테니스 장에 도착하면 리턴 해줄 상대는 벽 밖에 없어.”
간단히 양치질을 하고 모자를 눌러썼다. 브라더의 제안은 거절했지만, 내가 스트레스 수치를 잘 관리해야 하는 건 필수였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스포츠는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하는 운동도 충분히 많긴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닫힌 공간은 껄끄러워서 내가 하는 운동은 고정되어 있었다.
12월의 새벽 하늘은 기묘하게 어두운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이키 섬에서 자라던 시절에는 겨울의 찬공기가 질색이었지만, 지금은 폐를 수축시키는 공기에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나는 두어번 심호흡을 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새벽은 사람들이 적어서 좋다.
“남산 북측 순환로로 가자.”
택시 안은 히터가 있었지만, 나는 브라더에게 부탁해 히터를 껐다. 어느 순간부터 따뜻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몸이 긴장할 정도로 춥고 조금씩 불편한 상태가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었다. 내가 매일 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몸이 괴로운 상태에서는 감정을 지울 수 있다. 내게 겪은 과거도, 비루한 현재도, 감당해야 할 미래도 고통 속에서는 잊을 수 있다.
[오늘도 기록은 측정은 필요 없어?]
“응, 심박수가 위험하다 싶으면 얘기해줘.”
나의 달리기 방식은 야만적이었다. 애초에 더 잘 달리고 싶다거나, 마라톤 대회를 준비한다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목적을 찾자면 24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사람 없는 시간대에 산 고양이가 종종 보이는 거리에서 계속해서 숨이 차오르는 상태를 유지했다. 길의 끝과 끝을 반복하다 보면 브라더가 내 한계를 알려준다. 그때가 되면 아쉬움을 느끼며 숨을 고르고 돌아가는 게 나의 일과였다. 오늘도 반복되는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일과에서 오늘은 변수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말고 이 시간대에 뛰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내가 할 말을 대신한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황금빛 보릿대를 연상케 하는 갈색 머리에 건강한 녹색 눈을 가진 여자였다. 특이점 이후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승패가 나뉘는 스포츠를 선호해서 러닝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여자는 비슷한 취미를 가진 내게 호감이 생긴 걸로 보였다.
“러닝 좋아하시나 봐요?”
여자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내가 달리는 걸 좋아하는 게 맞나? 솔직히 좋아해서 보다는 남은 선택지가 이것 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안되는 유전자니까.
[이 남자 아카리 하코부네는 91%의 확률로 연쇄 살인범이 될 수 있습니다.]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물리도록 들었던 경고 메시지가 다시금 울렸다. 밝게 웃던 여자의 얼굴에 경멸과 공포가 그려졌다. 저 동그란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여자도 내 정체를 알게 된 게 분명하다. 세이디가 세계의 관리자로 등극한 이후 전 인류 대상의 유전자 조사가 진행되었다. 개인의 유전자를 조사해 발병 확률이 높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지만, 부수적인 기능도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서 살인 충동을 느낄 확률이 높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발견해서 선량한 유전자에게 경고하는 것. 덕분에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시행착오없이 싸한 사람을 확실히 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같은 위험 인물은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원천 차단 되어서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
“만나서 즐거웠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여자는 좋은 관상만큼이나 친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대다수의 사람은 경고 메시지를 받는 순간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피했는데, 저 여자는 작별 인사까지 해줬으니까. 그만큼 좋은 사람이어서인지 내가 겪는 좌절감은 더욱 컸다. 앞으로도 평생 사람들에게 벌레처럼 기피 대상으로 남겠지. 거절과 굴욕은 식사와 배변처럼 지리하게 함께 할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는 삶에 의미가 있을까? 여자쪽 방향에서 서린 바람이 불어왔다. 여자의 샴푸와 여자의 살 냄새가 섞인 듯한 보드라운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그 포근한 향 속에 비릿한 피냄새가 묻혀 있었다. 여자의 목덜미에 초점이 맺히고 내 주머니에는 어째서인지 과도가 있었다. 이후에는 나를 지배하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짐승처럼 달려들어 깨끗한 살색의 목을 베었다. 검붉은 피가 솟구치고 여자의 목이 현실감 없게 덜렁거렸다. 위태롭게 덜렁거리던 목 주변으로 시야에 노이즈가 낀 듯 점멸했다.
“커어어억!”
고글을 벗고 침대 바닥에 헛구역질을 했다. 연거푸 타액과 더운 공기를 뱉어낸 뒤 침과 눈물을 닦은 나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아카리 하코부네 소시오패스 성향자 4분기 테스트 결과 여전히 고위험군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보호감찰 교육 및 경고 메시지는 다음 분기 테스트까지 유지됩니다.]
나는 테스트가 이뤄지는 가상현실 고글을 거울에 집어 던졌다. 세이디의 관리 덕에 현실에서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테스트에서는 여지없이 더러운 욕망을 분출한 것이다. 19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는 더러운 피에 지고 말았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꿈에도 없다. 이런 더러운 피를 후대에 남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고독은 적응이 안되었다. 고위험군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불가능했지만, 가상현실 테스트를 통과해 저위험군이 되면 소시오패스 성향 저위험군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번에도 기회를 놓쳤다. 나는 3개월 뒤의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자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