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백수 탈출기 1
백수가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퇴사하면서 받은 돈과 실업급여를 합치니 제법 쏠쏠하다. ‘유항산(有恒産) 유항심(有恒心)이라고 하던가. 불어난 잔고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는 이 돈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기로 했다. 딱 150만 원을 제외하고 파킹통장에 고이 접어 넣었다.
더 이상 아침에 출근할 곳이 없다. 출근은 없지만 더 많은 곳으로 '출발'할 수는 있다. 적어도 몇 달간은 돈과 시간 모두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주어진 24시간을 가성비 있게 쓰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의지는 젬병이다. 강제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당장, 학원을 하나 등록했다.
자동차운전면허 학원이다. 면허는 있었다. 장롱에. 7년 만에 면허를 안전하게 꺼내고자 시내연수를 등록했다. 기름값이 올라서인지 노란 연수차는 생각보다 가격이 셌다. 살짝 고민했다. 에잇, 지르자! 이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다.
운전 연습을 충분히 하고 렌터카 정기 구독을 신청했다. 움직이는 발이 2개에서 4개가 되니 용감해진다.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두 번 다녀갔다. 초보운전 딱지를 다닥다닥 붙이고 달리니 운전자들의 배려가 상당하다. 배려인지 도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운전을 할 줄 아니 효도의 질이 달라졌다. 매번 조수석에 앉아 쫑알쫑알, 부모님께 건방진 훈수나 두던 장롱면허 따위가 이제 직접 차를 몬다. 마침 생일 주간이었는데, 엄마를 모시고 호숫가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 코스요리를 주문하고 스테이크도 좀 썰었다. 이 더위에 철없는 딸 낳느라 고생 많으셨을 테다. 비록 30대 백수지만 (오랜만에) 효도를 한 것 같아서 괜히 뿌듯했다.
억척스럽던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백수라는 이름에 쫄지 않기 위해서는 바쁘게 사는 게 상책이다. 운전을 배우고, 운동을 등록하고, 영어 공부도 했다. 조금 열심히 산 것 같다고 그새 보상 심리도 발동한다. 갖고 싶었던 예쁜 원피스도 하나 구매. 1박 2일 간 짧은 힐링 여행도 다녀왔다. 그사이 달력 한 장을 넘겼다.
새로운 달을 바라보니 마음속 긴장이 슬슬 시동을 걸려든다. 솔직히 계획보다 돈을 조금 더 쓴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구직사이트를 매일 접속했다. 눈떠서 누워서 잠들기까지 스크롤을 한참 내렸다.
아뿔싸. 어쩐지 지원할 곳들이 보이질 않는다.
고심 끝에 조심스럽게 한 곳에 서류를 넣었다. 3일 만에 답이 왔다.
“000님의 역량은 충분하나 아쉽게도…"
쳇. 역량이 충분한데 왜 안 뽑냐? 씁쓸했으나 첫 시도였기에 타격감은 적었다. 하지만 앞으로 과정은 생각보다 더 지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멘탈 관리가 필수다. 옆에 놓인 전신거울을 봤다. 나는 나의 살짝 굽은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줬다.
"까짓 껏. 뭐든 긍정적으로 덤비고, 최선을 다해보고 기다리면 그만이다."
나는 다시 스크롤바를 내리며 안경을 치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