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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조조 Apr 02. 2023

삼계탕, 피보다 진한 닭고기 국물, 각각의 가족이야기

한일미식이야기

<한일미식달력>이라는 한국과 일본의 음식그림을 넣은 일력을 만들고 있을 때 즘,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봤다.  학생 때 감독의 전작 <디어평양>을 보고 펑펑 울 정도로 감동했던 기억이 일상에 쫓기고 있던 와중에도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감독은 신랑감은 기본 조선사람이어야하고 최소한 한국사람, 일본사람과 미국사람은 안된다던 본가에 일본인 파트너를 데리고 온다. 조총련의 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도와 같이 열심히 활동하던 어머니는 이제 딸이 데려온 일본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삼계탕을 정성스레 대접한다.  

그 부분도 인상깊었지만 둘이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되자 이번에는 어머니와 사위가 같이 재료를 사고 다듬어 같이 삼계탕을 만들어 나눠먹는 장면에서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사상이고 역사적배경이고 다 뭐냐, 어떤 갈등이 있더라도 같이 따듯한 수프를 끓여 나눠먹는 게 가족이지라는 영화의 타이틀 그대로의 주제가 그대로 다가왔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에세이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에서도 삼계탕 이야기가 나온다. 


요코하마의 아파트단지에서 살던 작가의 가족은 애완목적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먹기 위해서’ 닭을 키웠다고 한다. 소음과 분뇨냄새에 항의하는 이웃주민들에게 “먹기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담담히 응하고는 매월 닭을 잡아 뽀얀 국물의 삼계탕을 끓여 나눠먹었다. 어그러지고 서로 소통할 수 없는 가족의 형태를 작품으로 써내려낸 작가도 가족과 식탁 앞에 앉아 삼계탕을 나눠 먹었다.

나도 삼계탕에 얽힌 가족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외가에서 나를 자주 돌봐주곤 했는데 외할머니와 같이 여름에 손잡고 장에 갔다. 생 닭이며 이것저것 사온 할머니는 삼계탕을 끓이려 닭을 손질하고 배를 갈라 찹쌀, 대추같은 것들을 넣고 실과 바늘로 꿰맸다. 

“실이랑 바늘도 요리할 때 쓰는 거에요? 그래도 돼요?”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웃으셨던 것 같다.


가족은 한자로 집 가(家)에 겨례 족(族)을 쓴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 이리라. 

이제 나는 가족은 같이 따듯한 수프를 나눠먹는 사람들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미워도, 소통이 불가능하더라도, 미워하더라도, 결국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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