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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Sep 12. 2022

지금 삶에 만족하고 계신가요?

<리플리>의 로마 광장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이번 연휴에는 일이 바빠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회사 일도 있었고, 개인적인 일도 있어 떠들썩한 추석 연휴와는 상관없이 조용히 집에서 할 것들을 하나둘 쳐내며 강아지들만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추석 특집의 느낌으로 내 고향 안동에서 촬영한 영화와 소개할만한 여행지들을 정리해둔 글도 거의 다 썼는데 굳이 올리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위해 충전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이번 연휴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면서는 내 삶에 대해 돌아보기가 힘드니까 이럴 때가 아니면 삶을 사색할 일이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연휴 내내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고, 어제는 해 질 녘 한강에서 강아지들 산책을 시키다가 문득 현재 내 삶과 내가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삶의 거리감을 재보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연휴를 반납해 일을 하며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다들 그렇겠지만 앞으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일 것이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런 꿈이 우리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회사에서도 매년 KPI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삶이 더 나아지기 위한 목표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인 성장, 가족의 행복, 커리어의 성취, 경제적인 성공 등등. 모두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삶의 모습은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온전히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이 삶에서 진정 성취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찾아 더 나은 삶의 목표를 찾아낸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성취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꿈꾸고, 타인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과실의 크기를 비교한다. 나도 여전히 그러하다. 더 많은 연봉을 위해 몇 번의 이직을 하고, 지금도 연휴를 반납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딱히 그것이 선악의 개념으로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꿈꾼 삶과 현재의 삶 사이의 괴리감을 나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지금처럼 가끔 있을 뿐이다.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한 편의 영화와 함께 했던 여행이 생각났다. 바로 '리플리(1999)'다. '리플리'는 현재 자신의 삶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던 청년 톰(맷 데이번)이 우연한 기회에 상류층 인사 디키(쥬드 로)를 만나, 그의 삶을 동경하며 거짓된 삶을 누리다 결국엔 범죄에까지 이르는 비극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워낙 유명한 영화고,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유사과학 용어가 만들어질 만큼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기도 하다. 원작 소설부터 같은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각색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까지 워낙 유명한 영화다 보니 영화에 대한 설명은 길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청년 시절 맷 데이먼과 쥬드 로의 미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영화 배경으로 톰의 현재의 삶과 동경하는 삶을 드라마틱하게 대조해서 보여준다. 영화 시작부에서 톰이 디키를 만나기까지는 뉴욕에서 촬영하였는데, 이때 톰은 뉴욕 그래머시 26번가의 음침한 지하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이를 통해 그가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지 못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반면에 그가 디키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영화는 결말까지 전체가 이탈리아 로케이션으로 촬영되는데, 그가 디키를 따라 떠난 화려한 풍광의 이탈리아 휴양지들은 허름한 뉴욕의 아파트와 대조되어 상류층 삶을 동경하게 되는 톰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사실 올여름에 이 영화 전체 동선을 따라 밟아 이탈리아 남부 특히 나폴리를 여행하려고 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다만 영화에서 나온 주요 시퀀스들의 배경인 로마에서의 영화 로케이션들은 방문한 적이 있다. 


'리플리' 스틸 컷(나보나 광장)


로마에서 리플리 촬영지들 중 가장 상징적인 장소들은 로마의 광장들이다. 스페인 광장, 나보나 광장 등 로마의 유명한 주요 광장들이 모두 영화에서 활용되었는데, 영화의 스토리와 함께 배경으로 활용된 광장들의 모습을 다시 보면 공간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나보나 광장'은 톰과 디키가 또 다른 미국인 상류층 자제인 프레디를 처음 만나는 곳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빨간색 알파 로메오를 타고 온 프레디가 톰을 무시하고, 그런 프레디와 디키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상류층 삶을 동경하는 톰. 이후 영화 후반부에서는 로마의 '마테이 광장'이 등장하는데, 마테이 광장에서는 톰이 디키를 죽였음을 눈치챈 프레디를 톰이 유인하여 살해하는 장소의 배경이 된다. 모두 아름다운 로마의 두 광장이 하나는 동경하던 삶의 공간으로 쓰이고, 또 하나는 범죄의 삶으로 추락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 외에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디키로서 거짓된 삶을 살며 메레디스와 데이트하는 공간은 '스페인 광장'에서 촬영되었다. 


'리플리' 스틸 컷(마테이 광장)


그 외에도 디키 살해 후 디키의 이름으로 예약한 5성급 호텔 '세인트 레지스 로마'와 톰 리플리의 이름으로 예약한 2성급 호텔 '호텔 골든'도 대조되는 공간의 상징으로 영화에서 활용된다. 세인트 레지스 호텔 내부의 경우 실제 호텔이 아닌 '팔라조 타베르나'에서 촬영되었는데, 이곳의 인테리어가 톰의 아파트 인테리어에도 활용된다. 그가 동경했던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내가 로마에 방문했을 때 굉장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인테리어를 지금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대신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 있어 아쉬운 마음에 그곳에서 파스타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프레디의 시신을 유기하는 '로마 수도교 공원'은, 해 질 녘 무렵에 직접 방문해보면 화려했지만 이미 저버린 로마의 모습처럼 자신의 삶과 거짓된 삶 모두가 무너지는 톰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착각이 든다. 


'리플리' 스틸 컷(로마 수도교)


영화에서 톰 리플리의 모습은 극단적인지만, 물질적인 성공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게 비단 그뿐만은 아니기에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큰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성공한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영화와 그를 따라갔던 로마 여행을 떠올리며 '나는 앞으로 어떤 더 나은 삶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 정답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희망하고, 단적으로 오늘 아침에도 외제차로 차를 바꾸기 위해 알아보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으로 더 높은 위치의 상류층이 된다면 어떠할까를 상상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 대한 동경이 상당히 오랜 시간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특별하게 속 시원한 깨달음이나 결론이 없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한 내 심정이 그렇다. 언젠가 내가 더 성숙해지면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의 삶에서 나만의 더 나은 삶에 대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까? 


조금은 서글퍼지는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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