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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Sep 07. 2022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투모로우'와 뉴욕 공립 도서관

태풍 힌남노가 지나갔다. 종전에 보지 못했던 역대급 태풍은 우리 국민들이 잘 대비해 무사히 넘기는가 싶었더니, 포항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인재의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우선 피해자와 유가족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올해 여름은 정말 비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다. 지난 강남역 침수 사건이나 이번 태풍 힌남노 모두 지구 온난화에 따른 전 지구적인 이상 기후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재난 재해, 특히나 이상 기후로 인한 재난의 실질적 피해에서 살짝 빗겨있는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 재난 재해를 예방하거나 대비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나 정부 정책 및 제도, 대비하는 설비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부족한 부분이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다.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이 NGO와 기업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했던 나도 ESG가 화두가 되기 몇 년 전까지는 환경 문제를 우선순위가 높고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었다. 비극적이지만 사람은 자기 눈앞에서 실제 일이 닥쳐야만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은 부분이 있기에, 이번에라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환경 파괴와 이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 파괴로 인한 재난 재해를 다루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해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해보고자 한다. 흔히들 실감 나는 재난 재해 영화들이 인기가 있는 이유로 영화를 보는 나는 안전한 공간과 안전한 상황에 위치해있는 것과 반대로 긴박한 영화 속 재난 상황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그 괴리에서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물론 영화 속 상황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그 영화 속 재난이 실제로 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니 실제로 닥치고 있는 재난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이상 기후로 인한 재난 재해는 올여름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실제 우리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재난 재해를 실감 나게 다뤄 사람들의 경각심을 높인 재난 재해 영화의 교과서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재난 영화의 거장 롤랜드 에머리히의 '투모로우(2004)'다. 이 영화가 개봉해 처음 내가 영화를 봤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4년이었는데, 나는 이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직전 해인 2003년에 그 유명한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에 정말 많은 피해를 입혔었고, 또 그 바로 전해인 2002년에 루사라는 초강력 태풍이 많은 피해를 줬기 때문에, 재난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교육 차원에서 지구과학 선생님이 영화를 보라고 적극 추천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예방이나 대비, 그리고 사후 처리에 있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투모로우' 스틸 컷


기상학자인 주인공 잭(데니스 퀘이드)은 남극 빙하 탐사를 통해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보고하지만 상부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의견을 묵살당한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온난화로 녹게 되고, 녹은 빙하로 인해 전체 바다의 기온이 급격히 하락하여 해류가 바뀌고 궁극적으로 지구에 새로운 빙하기가 오게 된다는 그의 주장은 서서히 사실이 된다. 뉴욕이 거대한 해일에 잠기고, 도쿄에 볼링공만 한 우박이 떨어지는 등 전 지구가 심각한 이상기후 재난 상황을 맞게 된다. 잭은 정부 관료들과 의견을 다투며 남쪽으로 모든 인류가 대피해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거꾸로 자신은 슈퍼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북쪽의 뉴욕으로 자신의 아들 샘(제이크 질렌할)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영화에서 이미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는 뉴욕의 생존자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최후의 지식의 보고가 되는 곳이 바로 뉴욕 공립 도서관이다. 영화 속에서 샘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데, 이때 다양한 군상극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캐릭터와 성경 한 권을 자신이 죽더라도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보여주는 사서 캐릭터가 대조되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더는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를 세금 책들을 땔감으로 쓰는 것과 동시에 아픈 여자 친구를 위해 의학 서적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종말 상황에서 클리셰적인 장면들이지만, 이게 영화적 설정과 뉴욕 공립 도서관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만나 실감 나는 개연성을 제공한다.


실제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바로 옆에 위치한 뉴욕 공립도서관은 콘크리트 빌딩 숲 사이에서 대리석 건축물이 돋보이는 웅장한 랜드마크이다. 커다란 정문 출입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런 곳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인류가 저항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1911년 개관하여 100년도 넘은 이 도서관 건물이 재난 재해 상황에서 최근 지어진 우리나라의 여러 건축물들보다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뉴욕 공립 도서관 정문


영어 원서를 잘 읽지 못하거나 책을 볼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뉴욕 공립도서관은 맨해튼 방문 시 꼭 한번 들러볼 만한 장소다. 투모로우 외에도 뉴욕 공립 도서관의 외향과 상징적인 의미 덕분에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존윅3: 파라벨룸(2019)' 시리즈에서 존 윅이 암살자와 격투하는 장면이 생각나고, 지구 종말 이후의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인류의 생존 공간으로 '오블리비언(2013)'에서 그려졌던 뉴욕 공립 도서관도 생각이 난다.(그 장면은 뉴욕 공립도서관을 종말 이후 느낌에 맞게 전체를 제작한 세트 공간이라고 함) 그 외에도 정말 많은 TV시리즈나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니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로케이션으로 뉴욕 공립 도서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투모로우' 스틸 컷


다시 돌아와 나는 뉴욕 공립도서관에 방문했을 때, '투모로우'의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만약 이 공간에서 최후의 날까지 생존을 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먼저 태워야 할 것인가를 상상해보았었다. 예를 들어 최후의 최후의 순간이 와서 생존에 필수적인 서바이벌 가이드 책과 셰익스피어의 원고가 있다면 무엇을 먼저 태워야 할 것인가라던가. 그때는 그냥 재밌게 보았던 영화를 영감으로 한 즐거운 상상에 불과했으나,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지고 지금의 지구 온난화 현실을 대입하니 섬뜩해진다. 잘 만들어진 실감 나는 재난 영화를 보고 영화 속 마지막 생존 공간이었던 실제 도서관에서 나와 인류의 생존을 상상하다 보면, 지구 온난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사람도 다시 한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적 상상이 아직도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은 '파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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