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래."
그럼 그렇지. 망할 놈의 시골 의사. 두 달 전에 대학병원 교수가 건강하다고 했는데, 갑자기 웬 간암. 나라에서 하는 건강검진이라고 대충 하나 봐. 육 센티나 되는 게 갑자기 생길라구. 아이고, 엄마. 맘고생 많았어요. 다행이야.
"암이라고. 니 아빠."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사무실을 나가다 그 자리에 멈췄다.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어머니가 잘못 말한 걸까. 아니면 의사였을까. 가슴 언저리에서 큰 파도가 뒤늦게 일렁였다. 사무실은 거북하게 일그러졌고, 저는 낯설어진 공기를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의 간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던 것.
두 달 전, 교수는 말했다. "아주 잘 관리하고 계십니다. 마라톤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날따라 안하던 너스레까지 떨었다. 아버지는 진료실의 동그란 의자에 앉아 안도했다. 하지만 그 때도 암은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조용히, 아주 음흉하게, 웃으며 병원을 나서는 아버지를 비웃으며. 그리고 나라에서 공짜로 해주는, 시골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은 발견되었다.
전화를 끊고 옥상에 올라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여름 햇볕이 기세를 세우며 맹렬히 건물로 돌진해왔다. 도시는 이글거리며 뜨거움을 견뎠다. 햇볕이 아무리 세다한 들, 끄떡도 없겠지. 언젠가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올 것이고, 또 견디면 포근한 봄 바람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도시가 다 불타 버리면 어쩌나.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발을 딯고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