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볼 때 나는 내 아버지가 된다

단지 손녀를 안고 활짝 웃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뿐이다

by 조성현

딸을 보고 있으면 꼭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아버지가 된다. 상상 속 젊은 아버지는 어린 나를 안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들을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춘다. 어린 나는 아버지를 보며 웃고 때론 운다. 이른 아침, 함께 회사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한다. 아들의 작은 입에 모이 같은 음식을 넣어주기 위해 기꺼이 노동을 견딘다. 스트레스와 야근으로 단단히 뭉친 어깨는 아들의 웃음으로 풀어진다.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키웠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그렇게 키울 것이다.


아버지가 손녀를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아주 대단했을 것이다. 어린 나를 안았던 것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가볍게 손녀를 안았을 것이다. 당신의 나이를 잊고 어린 아들을 키웠던 때로 돌아간 듯이 무리할 것이다. 어머니의 말로는 아버지가 셋째를 낳자고도 했단다.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말이다. 유야무야 넘어가고 두 아들만 키웠다. 그 아들이 커서 손녀를 낳았는데 아버지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손녀도 안아보지 않고 갔다. 아무래도 딸이 그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든다.


하늘에서 손녀를 보고 있을 거라는 유치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세상 만물이 그렇듯 인간도 죽으면 영원히 소멸한다. 아버지 역시 뇌라는 단백질 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신호들이었을 뿐이고, 그 단백질은 사멸하였으므로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손녀를 볼 수 없다. 이렇게 냉소적이고 삭막하게 사실 관계를 짚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단지 손녀를 안고 활짝 웃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뿐이다. 이 마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F31C64F3-571E-4B66-B838-25DA1A62DFC1_1_102_o.jpeg 내가 나를 안고 있을 때, 나는 내 아버지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서울서둘째로다정한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