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도 온기를 품고 산다
아무리 서울 인심이 팍팍하다지만 서울 사람들도 온기를 품고 산다. 너무 좁은 공간 탓에 혹시 공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선뜻 보여주지 못할 뿐. 사람마다 안정된 거리라는 게 있는 법인데 바글바글 모여사는 곳에선 그 거리가 멋대로 깨지기 일쑤고 그러니 자연스레 경계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사람이 사랑하고 배려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가까운만큼 더 살피게 되었을 뿐이다. 서울 사람도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서울의 팍팍함에 서운했던 적이 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인데, 앞으로 이웃이 될 사이니 인사도 드릴 겸 얼굴도장도 찍을 겸 시루떡을 맞춰서 이웃들에게 나눠드리기로 했었다. 옆집, 아랫집, 윗집 부지런히 찾아갔지만 별로 전달은 하지 못했다. 문은 열어주지도 않고 인터폰으로 필요없다며 문전박대하던 집도 있었다. 떡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민망스러워서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웃으며 떡을 받아들고는 인사를 건네주셨던 분은 우리 옆집 이웃이었다. 그 후로도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작년 9월 마지막 날에 안부를 묻는 사이로 발전할 계기가 있었으니, 아내의 임신이었다.
“혹시 임신하셨어요?” 이웃이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내일 모레 출산해요.” 아내가 대답했다.
“어머! 내일 모레요? 배가 별로 안나와서 몰랐어요!”
그 이후로는 “아기는 잘 크고 있어요?”, “아기가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해요.” 같은 딸에 대해 묻는 대화가 늘었다. 관용적인 인사가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담은 안부기에 어쩐지 몇 발자국은 더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저께 서울대공원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주차장에서 이웃을 마주쳤다. 방금 잠에서 깬 딸의 미소를 징검다리삼아 서로 웃음과 친근을 건네고 받았다. “시간되실 때 차 한 잔 하러 놀러오세요.”라는 우리의 말에 선뜻 “그럴까요?”라고 화답하신 걸 보니 친근함을 느낀 것이 우리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갈아입히는데 현관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이웃이 단팥죽이 담긴 종이백을 건넸다. “제가 좋아하는 집인데, 드셔보시라고 두 개 사왔어요.” 잠깐 들어오셨다 가시라 권했지만 이웃은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외출하고 막 들어오셨으니 오늘은 쉬시고 다음에 놀러 올게요.”
종이백에는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었다. 삼청동에 있는 단팥죽으로 유명한 집. 아직 따뜻한 것을 보니 방금 포장해 온 듯 했다. 따뜻한 옹심이가 기분 좋게 입 안에서 풀어질 때, 내 마음에 남은 재작년의 서운함도 함께 풀어졌다. 단팥죽의 달콤함은 아마도 한동안 입가에 맴돌 것 같다. 이 정도로 세상 친근한 이웃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서울서둘째로다정한이웃>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