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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배신

by 힉엣눙크

렌터카를 운전한 첫날, 도로로 진입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쿵‘하며 차량 바닥에 보도의 경계석이 부딪혔다. 깜짝 놀라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손상을 입지는 않은 듯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였을까 다시 운전대를 잡고 숙소로 향하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 그 충격 때문에 고장이 났나 보다 하는 불안과 걱정이 엄습했다. 연초에 계획하고 예약을 하고 자료를 찾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의 차를 이용하다가 사고를 내다니 그것도 해외에서. 이번 여행은 망쳤구나! 짜증과 걱정이 솟구쳤다. 우려는 곧 확신과 체념으로 바뀌었다. 가까운 렌터카 지사로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설상가상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일본인 직원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통역 앱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손짓발짓 우여곡절이 한참 이어졌을 때였다. 직원이 운전석에 앉더니 우리를 뒷좌석에 타게 하고는 직접 차를 몰았다. 시내를 빙빙 돌며 차량의 소음과 기기의 이상 유무를 세심하게 확인했다. 다시 대리점으로 돌아와 차를 세운 그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이 사고를 냈다며 갑자기 찾아오는 성가신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 직원은 끝까지 불평이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친절하게 응대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차를 몰고 떠날 때 백미러로 힐끗 보니 사무실로 곧장 들어가 버린 줄 알았던 그가 주차장에 가만히 서서 우리 차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 개개인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도, 대규모 네트워크는 허구와 환상에 의존하여 사회 구성원들을 묶고 질서를 유지한다.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그의 저서 <넥서스> 서론에서 한 말이다.


사소한 일에도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을 연발하는 일본인.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자세. 개인들은 과도할 정도로 친절한데 일본 정부는 과거사나 독도에 관해서 만큼은 왜 그토록 뻔뻔하고 불친절한 것일까? 집단에 순응하고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비판하지 않으려는 개인 성향 속에 억눌린 불안과 공포와 불만이 비뚤어진 권력자의 야욕과 농락을 만나면 마치 비를 만난 풀처럼 서슬 퍼런 칼날로 치솟는 것인지도 모른다. 견제와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곳에서 광기와 오만과 거짓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법이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나이 지긋한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문구다. 학창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는 물론이고 각종 매체를 통해 귀에 못이 박이게 들으며 자라났기 때문이다. 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이 생각난다. 제비족으로 크게 한 건 해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려던 시골 청년 홍식 역의 한석규가 입에 달고 있던 대사이기도 했다. 꿈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야망, 남들을 누르고 밟고 넘어뜨려서라도 획득해야 할 숭고하고 거대한 그 무언가를 가슴에 품은 채 오픈런을 하듯 앞만 보며 치열하게 달려야 한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야망을 가지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고서 말이다.


19세기까지 방치돼 있던 땅, 불모지였던 홋카이도를 개간하기 위해 미국인 농업 전문가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를 초빙했던 일본은 1876년 홋카이도 농학교를 설립하고 그를 초대 교두(敎頭)로 임명했다. 임기가 끝나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를 배웅하러 나온 제자들에게 남긴 클라크의 마지막 말이 그 유명한 '보이스, 비 엠비셔스‘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 다수는 이후 일본 메이지 시대 유력 인사와 지도층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까지 그의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문일 것이다.


중년을 맞은 이들에게는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 역의 나카야마 미호가 드넓은 설원 가운데 홀로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먼 산을 향해 외치던 대사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스‘로 기억되는 곳, 남한의 9분의 7에 필적하는 광활한 면적, 쌀 보리 감자 우유 쇠고기 생산량 전국 1위, 수산물 생산량 전국 1위를 차지하는 섬, 하지만 지역경제의 70% 이상을 관광업을 비롯한 3차 산업에 의존하는 땅, 바로 홋카이도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삿포로, 오타루, 하코다테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오직 정원과 자연만 돌아보고 왔다. 애초에 정원을 테마로 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8개의 정원을 묶어서 '가든 가도(garden 街道)‘라 이름 붙여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정원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이를 활용하여 관광산업으로 연계해 내는 그네들의 상업적 기질이 가득 느껴졌다. 그중 '우에노팜‘, '다이세쓰 모리노 가든‘, '바람의 정원‘, '마나베 가든‘, 그리고 '하나후루'가 인상 깊었다. 정원이 위치한 곳이 주로 산지나 도시 외곽이다 보니 일본의 자연 그리고 시골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왔다. 7월의 한여름, 우리나라보다는 덜 습했고 그렇게 무덥지는 않았다. 종일 운전하고 걷고 운전하는 강행군이어서 피곤했지만 그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비에이를 지나다가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 들러 식사를 했다. 한국인들이 많았다. 옆 테이블에는 중년 부부와 이십 대 딸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사회 초년생 딸에게 전해주는 처세술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아부도 능력이야. 윗사람 눈에 띄어야 해. 지극하다 할 정도로 자주 찾아가서 깍듯하게 대해주라고. 편법이면 어때. 승진하면 게임 끝인데. 안 그래? 아까 그 동상 밑에 쓰여 있던 영어 봤지? 보이스 비 엠비셔스. 꿈을 크게 가져.” 듣고 있던 딸이 돈가스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아빠는 뭘 몰라. 빨리 승진하면 골치만 아퍼. 내 인생 모토가 가늘고 길게야.” 그러자 엄마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딸?” 휴대폰 화면을 엄마의 코앞에 들이밀며 딸이 말했다. “이 집 아이스크림은 꼭 먹어줘야 해.” 대장이자 가이드인 딸을 앞세우고 그 가족 일행은 바쁘게 자리를 떴다.


클라크 박사가 이야기했다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의 원문은 홋카이도청 구 청사, 이별 장면이 묘사된 유화 그림 속에 남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야망‘과는 방향이나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은 다음과 같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


일본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낙농업 이외에 도덕도 가르쳤던 클라크는 마지막까지 기독교적 인간관과 도덕률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과거 일본인들의 야욕과 침략, 이로 인한 비극과 고통은 클라크의 '야망‘을 오해하고 왜곡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클라크 박사의 조국,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야망의 배신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삿포로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 우뚝 서 있는 클라크의 동상은 먼 곳을 향해 팔을 뻗어 있건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달은 보지 않고 그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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