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젬스 #애덤샌들러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연기 변신'을 밥 먹듯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특정 이미지로 소비되는 배우도 있다. 애덤 샌들러는 후자다. 그는 대부분의 출연작에서 놀기 좋아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유년 시절에 사로잡힌, 덜 자란 어른으로 등장한다. 작품마다 약간의 변주는 있겠지만 애덤 샌들러의 캐릭터는 대부분 이 틀 안에 있었다. 그의 코미디는 이런 캐릭터가 먹히면 돈을 벌고, 먹히지 않으면 그를 라즈베리 시상식으로 데려갔다.
애덤 샌들러의 신작 [언컷 젬스]는 그의 출연작 중 최고로 평가받는 2002년작 [펀치 드렁크 러브]와 여러모로 비교할 만하다. 가볍고 유치한 코미디가 대부분인 커리어에서 정극 연기를 선보인 몇 안 되는 영화이며, 평단이 주목하는 감독([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과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랄 수 있는 이 작품들에서도 애덤 샌들러는 여전히 '그 애덤 샌들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가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연기한 주인공 배리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부끄러워하며, 관계에 서투르고 매사에 소극적인 남성이다. [언컷 젬스]에서는 도박을 통한 인생 한방 역전을 꿈꾸며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답 없는 중년 하워드를 연기한다. 두 캐릭터 모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개선할 방법을 스스로 찾지 못한다는 점, 본인이 의존할 수 있는 심지 굳은 여성 캐릭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덜 자란 어른' 애덤 샌들러 캐릭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펀치 드렁크 러브]의 폴 토마스 앤더슨과 [언컷 젬스]의 샤프디 형제는 애덤 샌들러에게 '연기 변신'을 요구하기보다는, 코미디에서만 유효할 것 같았던 그의 캐릭터를 자신들의 세계로 데려와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흥행 코미디로 명성을 쌓고 있었지만 좋은 배우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애덤 샌들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영화였다. 그러나 이후 애덤 샌들러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더 많이 모습을 비추었고, 몇몇 영화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갈수록 비평과는 거리가 먼 배우가 되었다. [트와일라잇] 시절의 이미지를 벗고자 부단히 노력 중인 로버트 패틴슨을 인상적으로 활용했던 [굿타임]의 감독 샤프디 형제에게, 이렇게 고착된 애덤 샌들러의 캐릭터는 진부함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탄생한 [언컷 젬스]는 어떻냐고? 결국은 따뜻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와는 달리, 불안한 전자음과 네온이 넘실거리는 이 영화는 '덜 자란 애덤 샌들러'를 지금껏 겪지 못한 가혹한 평행 우주에 떨어뜨린다. 그동안 애덤 샌들러 영화들의 세계는 신기할 만큼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여기선 값을 치러야 한다.
202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