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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Apr 29. 2022

동심이 살아있는 남자와 산다는 것

서로를 웃겨주는 존재, 부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있었던 짤막한 일화다.


아이를 학교 (프리스쿨)에 데려다 주고, 차에 타기 전에 주차장에서 작은 강아지 장난감을 발견했다. 아마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렸나 싶어, 손으로 주워서 바로 놀이터 담장 안으로 장난감을 휙 던져놓았다.

"뭐야?"

남편이 물었다.

"아, 장난감이 떨어져 있어가지고. 다시 놀이터로 던져놨어."

나의 말에 남편은 웃으며,

"아니 기껏 탈출했더니 다시 갖다놓으면 어떡해."


픽사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장난감들이 프리스쿨인가 데이케어인가 어느 보육기관에서 기를 쓰고 탈출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유인즉슨 어린 아이들이라 장난감을 다루는게 서툴러서 장난감들이 꽤나 고생을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웃겨서 바쁜 출근길 차안에서 한참을 서로 하찮은 드립을 던지며 키득댔다.



고... 공포영화는 아닙니다





남편의 동심을 발견한건 신혼 초였다. 신혼 초에 감사하게도 둘만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남편은 종종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를 흥얼거리거나 옛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을 온라인으로 뒤적거렸다. 추억이나 동심같은 주제보단 현재를 살아가기에 급급한 현대여성 타입인 나에게 남편의 이런 모습은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론 또 진부하게도 느껴졌다. 어쩌다 내가 모르는 게 나오면, 남편은 장난스럽게 이것도 모르냐며 날 깔봤다. 그럴 때면 난 남편을 옛날사람이라고 빈정댔다.


아이를 낳고 또 가정을 꾸려가는 일이 신혼처럼만 달콤하지는 않다는 걸 깨닫고, 삶의 팍팍함에 마음이 지쳐가는 시기를 겪기도 하는 시간들이 흘렀다. 남편이 서른 중반의 나이에 동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꽤나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모라는 무거운 책임, 아니 삶에 대한 무게를 벗어놓고 가끔 아이들처럼 둘이 하찮은 농담과 상상에 키득댈 수 있는것. 90년대 만화 주제가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옛날 얘기를 하는것, 누가누가 더 고인물인가 지식을 자랑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네가 더 옛날 사람이라며 야유하는것, 같이 만화 주제가를 따라부르다가, 아, 그때가 좋았지- 로 마무리하게되는 사소한 대화. 왜 그럴까. 어릴 적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듯한 여유가 느껴지는것은. 인생의 무게도 가끔 어릴적만 생각하면 가벼워지는듯한 착각도 하게된다.


동심이 살아있어서 그런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신기하게도 아이처럼 순수한 면이 많은 사람이다.


일례로, 남편은 '답정너' 식으로 절대로 넘겨짚지 않는다. 아이들은 앞서서 계산하거나 상대를 미리 판단하고 대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능력을 갖추게되는 나이 이전의 아이들을 말하는것이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소통하고, 앞과 뒤가 똑같다. 좋으면 좋다, 힘들면 힘들다, 화나면 화난다,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무해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으레 어른들의 방식처럼,


'너를 위해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인내를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는거야? 왜 알아주지 않는거야?'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나는 이렇게 행동하겠어.'

'네가 날 상처줄까봐, 내가 먼저 선수칠거야.'

같은 류의 소통방식을 하지 않는다.


난 생각이 복잡한 여자였는데, 아이같은 남편의 이런 면이 날 단순하고 행복한 여자로 변화시키고 있다. 남편은 나보다 두살이 많다. 심지어 남편은 80년대 태어났는데 난 90년대 사람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빠같은 모습도 많다. 그러나 때론 소년같은 남편의 모습이 튀어나올 때마다 난 이사람이 정말 사랑스러운 것이다.


육아로 정신이 없던 시간들이 지나고 아이가 점점 사람구실을 하게 되면서, 부쩍 요즘들어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부부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가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로맨틱하고 이벤트 천지인 그런 부부들도 있다지만, 사실 부부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매일매일 공유한다. 그 일상이 숨이 막히고, 같이 있어도 외로워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인생은 독고다이, 뭐 공감하는 부분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는 이런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서로를 웃겨주는 존재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 힘을 자양분으로 부부의 사랑이 깊어진다. 웃을 일 없는 일상일지라도 부부만큼은 서로를 웃게 해줘야한다. 어린 시절이 없었던 어른은 없다. 같은 하늘 아래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동심,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웃을 수 있는 좋은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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