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불러온 '스마트폰 좀비'

by Lohengrin

사용자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매년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며 업그레이드된다. 하물며 실물이 없는 AI 플랫폼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수시로 기능이 개선되고 확장된다. 지난주 업그레이드를 발표한 ChatGPT 5 만 봐도 그렇다. 변화 주기가 워낙 짧다 보니, 이미 AI 플랫폼들의 기능은 인간 개개인의 능력을 여러 측면에서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AI가 인간의 개인 능력을 앞서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경고해 온 AI 윤리와 도덕에 관한 국제적 기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와 규범의 빈틈은 곧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지점은,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의 모든 판단을 AI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다. 물어보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이 기계의 계산 결과에 기반한다면, 인간 고유의 사유 능력은 어디로 가게 될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근간은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기억을 반도체 칩에 외주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머릿속에 직접 저장하지 않아도, 외부의 클라우드나 기기 속에 있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필요한 정보를 불러와 재편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지식을 기억하고 있느냐보다,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빨리 검색하고 조합하느냐가 지적 능력의 척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 저장이 아니다. 기억은 뇌의 복잡한 네트워크이며, 그 기본 단위는 단어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할 때 기존 기억 옆에 관련 단어를 붙이는 방식으로 연결망을 확장한다. 생소한 단어나 전문 용어를 한 번 듣고 잊어버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억의 연결고리가 없기에 저장되지 않는 것이다. 기억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말하고, 듣고, 써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외부 저장소에 의존하는 습관이 이러한 반복 훈련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나 AI 플랫폼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고, 정확한 근거를 즉시 제시해 준다. 우리는 이를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대가로 감각과 사고의 근육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결국 머릿속이 비어 가는, 말 그대로 ‘기억의 좀비’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인간의 학습은 본질적으로 반복과 시행착오를 전제로 한다. 헷갈리고, 고민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감정이 개입되고, 그때 비로소 기억은 단단해진다. 단행본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경우와 줄거리 요약만 본 경우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깊이 이해하는지는 자명하다.


결국, 내가 직접 부딪혀 얻은 지식만이 진짜 나의 기억이 된다. AI가 제공하는 ‘요약된 정보’는 편리하지만,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타인의 기억’ 일뿐이다. 외부에 있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의 깊이와 폭은, 기억을 연결하고, 유추하며,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이 과정은 의도적인 집중과 훈련 없이는 결코 쌓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브레인의 정밀한 지도는 얼마나 많은 핵심 단어와 개념을 내 기억 속에 축적했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사람의 품격과 인격은 그가 어떤 말과 글을 사용하는지에서 드러난다. 결국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기억이자 존재의 증거다. 기억이 부실하면 말과 글도 빈약해진다. 이는 단순히 의사소통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와 인간다운 존엄의 문제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식 시세를 확인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국회의원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보에 휘둘리고, 숏폼 영상에 빠져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 신호등이 바뀐 것도 모르고 스마트폰 화면에 들어가 있는 ‘스마트폰 좀비’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기억을 외부 장치에 의탁하는 습관이 낳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억의 외주화라는 편리함에 안주하며 사고력을 퇴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반복 학습과 자기 훈련을 통해 기억의 주권을 되찾을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불편하더라도 생각하는 시간, 고민하는 과정, 직접 부딪히는 경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AI와 스마트폰은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기억과 판단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결국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은, 기술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두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화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산다'는 것은 불확실을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