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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쇼핑을 안 하나?

by Lohengrin

9월 중순부터 수요일마다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반포2동 문화센터에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AI 활용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오전 9시 반부터 2시간 하는 강의인지라, 보통 집에서 8시에 출발하여 경의중앙선을 타고 옥수역에서 3호선으로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 문화센터까지 걸어갑니다.


고속터미널 근처는 대형 백화점도 있고 해서 쇼핑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특히 7호선 반포역에서부터 반포대교로 이어지는 사거리까지 1km가 넘는 지하상가 쇼핑센터는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쇼핑거리이기도 합니다.


반포2동 문화센터는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500여 미터 걸어 반포대교에서 오는 사거리 출입구로 올라가 지상으로 200여 미터를 더 가야 하는 동선이라, 1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하면 대략 8시 50분 정도 됩니다. 출근하는 인파로 인하여 어깨를 맞대고 전철에서 내려야 할 정도로 붐빕니다.


지하상가는 아직 손님 맞을 준비조차 안된 시간입니다. 보통 10시가 넘어야 문을 여는 듯합니다. 몇몇 부지런한 상인들이 상점 앞에 배달되어 있는 물건들을 챙기느라 셔터를 올리고 영업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이고 반포대교와 연결되는 상가 끝 식당가에는 아침식사를 파는 몇몇 식당이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기도 합니다만 아직 불 꺼진 상점들의 침묵이 지하상가에 흐릅니다.


500미터가 넘는 상가 통로를 지나갑니다. 단일 통로가 아니고 통로가 양쪽으로 2개인 대형지하상가인지라 입주해 있는 상점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럼에도 비어있는 공간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쇼핑공간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 겁니다.


그런데 어제 11시 반 강의를 마치고 지하상가를 걸어 전철역으로 오면서 불현듯 지하상가 상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달째 이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던 것입니다.

그 많은 상가 중에 남자옷이나 소품을 파는 가게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유심히 상점들을 살피며 전철역까지 걸어봅니다. 그런데 정말 지하상가 끝에서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500여 미터 거리에 남성용 옷이나 물건을 파는 가게는 한 곳도 못 봤습니다.


남자들은 쇼핑을 안 하는 것일까요?


지하상가에 있는 수백 개의 상점 중에 남자 전용 상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옷을 파는 가게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옷을 팔 때 남성용과 여성용을 같이 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남자옷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물론 상가 크기가 특정 품목으로 특화하여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많은 상품을 전시할 수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처도 남자 옷을 파는 매장 하나쯤은 있어도 될법한데 전혀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은 남자들의 쇼핑 행태를 상인들이 간파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하상가에서도 남성용품을 파는 매장이 인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품목을 바꾸었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분명 남자들의 쇼핑 스타일을 간파한 상인들의 혜안이 반영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남자분들! 옷을 살 때 어떻게 고르고 어디서 사시나요? 날씨도 쌀쌀해져 니트웨어나 지난해부터 유행한다는 스웨이드 외투 정도 하나 장만한다고 치면, 어떻게 직접 매장을 찾아가 색상이나 사이즈 등을 고르시나요? 아니면 온라인 쇼핑사이트를 들어가서 주문을 하시나요?


뭐 남자들도 사람마다 옷을 살 때 다양한 쇼핑형태를 보이겠지만, 보편적으로 남자들은 딱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어 백화점을 가더라도 그 매장을 향해 직진합니다. 다른 브랜드의 매장에 디자인도 심플한 신상품도 있을 텐데 거의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시크한 척 곁눈질을 해가며 마네킹에 디스플레이된 옷들을 스캔하긴 합니다. 그러다 "어 괜찮은데"정도로 보여야 다른 브랜드 매장을 들어가 보는 정도입니다.


그나마 이렇게 본인이 직접 매장을 찾아 옷을 입어보고 매장 직원의 추천을 받아 옷을 사는 경우는 다행입니다. 많은 남자들의 옷들은 대부분 생일 때 가족들로부터 선물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옷을 선물할 때 입을 사람의 옷 입는 스타일과 선호하는 칼러를 고려하여 신중하고 고르고 하겠지만 사실 단일 품목으로 선물을 하게 되므로 기존에 입던 옷들과 매칭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물 받은 옷 하나로는 예쁘고 멋있을 수 있는데 다른 옷들과 같이 입으면 옷태를 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물 받은 옷들이 한 계절 지나면 대부분 옷장에서 공간만 차지하는 신세가 됩니다.


남자들도 옷은 잘 입어야 합니다.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체형에 맞고 얼굴과 헤어스타일과 매칭되는 옷을 입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옷 입은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을 대충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외형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따뜻하고 시원하면 됐지" 정도의 실용성과 기능성에 멋을 첨가하는 센스, 바로 스프레차투라(Sprezztura ; 드러내지 않은 우아함)를 겸비해야 진정한 멋쟁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옷을 멋지게 입으려면 체형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인 것은 아시죠? 똥배 나온 체형은 옷태가 최악입니다. 체형이 좋으면 어떤 옷을 입어도 멋져 보입니다. 아니 멋지게 해석을 합니다. 옷 잘 입었다고요. 하지만 옷이 먼저가 아니고 운동을 해서 몸매를 가꾸고 유지하는 게 먼저라는 것은 진리입니다. 어떻게 쇼핑하기 전에 운동부터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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