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by Lohengrin

아침 기온과 날씨 상태가 옷차림을 결정한다.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데 반팔 차림으로 나설 수 없으며 비가 내리면 장화를 신어야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온도는 영상 4도 정도이고 태양도 산너머 고개를 내민 지 30여분 되는지라 상쾌한 선선함을 느낄 수 있지만, 강원도 어느 산밑에 사는 친구는 "뭔 소리야! 여기는 아직도 영하 6도로 겨울의 끝자락을 못 벗어나고 있어!"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동일한 지구 표층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도, 각자가 위치한 위도와 경도라는 좌표값에 따라 서로 다른 자연조건을 경험하며 그에 적응해 살아간다. 이는 단순히 어디에서 보느냐 하는 '물리적 시각'의 차이를 넘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적 시각'과 맞물려 존재의 상태를 결정짓는다. 결국 조건이 바뀌면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의 상태 또한 변하게 된다.


상태가 바뀌면 그 겉모습 또한 변하기 마련인데, 이를 과학적으로는 '상 전이(phase transition)'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물이다. 물은 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지면 단단한 '얼음'이 되고, 0도를 넘어서면 유연한 액체가 되며, 100도를 넘기면 자유로운 기체로 흩어진다. 주변의 에너지 상태에 따라 그 형체는 판이하게 달라지지만,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한 물의 본질(H₂O)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오직 드러나는 모습의 양식만 바뀔 뿐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물질을 이용하고 에너지를 교환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관계'라고 정의한다. 물질의 세계에서 본질적인 물리량은 대개 더하고 빼는 산술적 관계로 설명된다. 질량이나 부피 같은 외연적 성질은 합치면 두 배가 되지만, 합쳐도 단순 합산이 되지 않는 물리량들이 존재한다. 바로 온도와 압력이다.


예를 들어, 10도씨의 물 1kg과 20도씨의 물 1kg을 합친다고 해서 30도씨의 물이 되지는 않는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열역학적 평형에 따라 두 물은 열을 주고받으며 그 중간 지점인 15도씨로 수렴하게 된다. 공기의 무게가 만드는 압력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거대한 대기의 바닥층에 몸을 의지하고 살기에 평소에는 대기압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높은 산에 오르거나 스킨스쿠버가 되어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할 때 비로소 압력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열과 압력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주변으로 끊임없이 스며든다. 이 흐름이 멈추어 에너지가 균일하게 분포된 상태를 '열역학적 평형'이라 하고, 평균값이라 한다.


하지만 생명은 이 평형의 원리를 거스르는 '비평형 상태'의 존재다. 물리적 물질이 단순히 평균값으로 수렴한다면, 생명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엔트로피를 배출하며 자신만의 정교한 질서를 유지한다. 비평형 시스템인 생명은 단순히 더해진 양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 존재가 지나온 과정과 맺어온 관계를 모두 추적해야만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있지만, 무한대에 가까운 복합도 때문에 그것을 완벽히 계산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생명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타자와의 끊임없는 상관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

결국 인간이란 약 100년이라는 찰나의 시간 동안 외부에너지를 몸 안에 가두고 활용하는 '작은 용광로'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태양 에너지를 직접 생존 에너지로 전환할 광합성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고,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다세포 생명'의 운명을 숙명처럼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이토록 유한하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인 인간이 시기와 질투, 험담과 힘의 과시로 상대를 제압하려 드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타인을 굴복시켜 얻는 짧은 승리감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 앞에서 하찮은 욕심에 불과하다. 칼 세이건이 1990년, 태양계 밖으로 나아가던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돌려 찍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보며 남긴 문장들이 오늘날 더욱 뜨겁게 가슴을 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모든 종교,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도덕 선생님들이, 모든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인기 연예인들이,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일부분을 지배하려 한 탓에 흘렀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증오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 지구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좋든 싫든,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 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 사진은 우리가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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