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적인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종착지다. 이는 새삼스러운 명제도 아니며, 복잡한 사고 체계를 진화시킨 다세포 생물이 생존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획득한 유전적 형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기작에 따라, 인간 삶의 방향은 천차만별의 형태로 전개되곤 한다.
최근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노화를 극복 가능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늙지 않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화의 정의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조금씩 늘어날지언정 생물학적 최대 수명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늙으면 죽는다'는 대자연의 섭리를 완전히 초월하기란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은 수많은 창작물의 소재가 되었고, 인간의 유한함을 극복하려는 욕망은 궁극적으로 신의 영역에 닿으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닥친 노화의 그늘은 멀리 있는 철학적 담론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피부의 주름과 꺼칠함으로, 가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억력의 감퇴로, 그리고 삐~~ 하고 귓가를 울리는 날카로운 이명으로, 넓어져 가는 이마 위에 선명히 드리워져 있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겉모습이야 현대 과학의 힘으로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뇌세포 사이를 파고들며 인지 기능을 갉아먹는 아밀로이드의 확산만큼은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오늘 새벽도 "내가 늙었음"을 확인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요 며칠은 아침 5시 근방으로 눈이 떠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평생을 5시 반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는데 요즘은 그때보다도 더 일찍 눈이 떠져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것이다. 이틀 전 골프약속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보통 오전 라운딩이 잡히면, 이상하게 전날 저녁에 일찍 잔다고 해도 밤에 두세 번은 눈이 떠져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괜히 늦으면 다른 동행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드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가게 되는 골프장을 소풍 가듯이 가기에, 국민학교시절 소풍전야의 설렘이 남아있어서 그런 듯하기도 하다. 지난밤도 평소대로 11시 반에 누웠고, 다들 그렇지만 휴대폰 동영상을 몇 개 넘기다가 '이러면 안 되지'싶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그 시간이 12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땅에 머리만 대면 잠들고,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 간다고 깨지는 않고 아침시간까지 쭉 잔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밤에 한두 번 깨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는데 아직 그 수준은 아닌듯하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5시 정도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쳐다보고 더 잘까 생각도 들었지만 뒹굴거려 봐야 잡생각만 들 테고 해서, 일어나 응가하고 양치하고 면도하고 샤워하고 평시의 루틴을 그대로 수행한다. 그렇게 30분을 화장실에서 쓰고 나와 랩탑 컴퓨터 부팅을 하고 오늘 아침은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머리를 굴려본다.
그러다 무심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는 순간, 내 눈에는 시곗바늘이 7시를 가리키고 있다. "앗! 벌써 7시네" 7시면 와이프가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야 할 시간인데, 출근할 생각을 안 하고 일어나지를 않고 있네. 오늘 재택근무인가? 재택근무면 집에서 일한다고 어제저녁 말을 했을 텐데 그런 말도 없었고, 깨워야겠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안방문을 열고 "오늘 출근 안 해?"라고 와이프 잠을 깨웠다.
"6시 45분 맞춰놓은 알람이 안 울렸는데 몇 시야?"
"7시야"
"이런 큰일 났네 세수만 하고 출근해야겠는데. 왜 알람이 안 울렸지" 와이프가 투덜투덜 대며 일어나 부랴부랴 침구 정리를 한다.
그런데 와이프를 깨우고 나오면서 다시 건너다본 시계의 분침은 7시가 아니고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시계를 다시 보는 순간, 허걱! 나는 왜 6시를 7시로 보고 있었을까? 벽에 걸린 시계가 고장 난 것일까? 휴대폰에 찍힌 시계 숫자를 다시 확인한다. 분명 6시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일단은 와이프의 잠을 한 시간여 일찍 깨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미안 미안 ㅠㅠ 7시가 아니고 6시네. 더 자"라고 전해준다. "아니 뭐야 잠 다 깨워놓고! 집에서 노니까 시간관념이 아예 없어진 거 아냐??" 짜증 섞인 반응이 확 돌아온다. 시간을 잘못 보고 잠을 깨웠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밖으로 나와 "내가 왜 그랬을까?" 한참을 생각한다.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으면 담배라도 한대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짧은 순간 내 눈에는 시간이 한 시간이 뒤인 7시로 착각을 했을까? 노안으로 침침해진 시력의 장난일까? 아니면 정보를 왜곡해 받아들인 뇌의 오류일까?
최근에 이렇게 시간을 착각하거나 일의 순서를 헷갈렸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꼭 시간은 아니더라도 깜박깜박하고 일의 앞뒤가 헷갈리는 일들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나이 예순을 넘겼으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치부하고 자위하기에는 슬쩍 걱정이 되는 노후의 징후와 현상들을 마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New Grey'니 '시니어'니 '신중년'이라는 용어로 늙음을 겉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님이 일상에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늙는 게 맞고 늙은 게 맞다.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라고 우겨봐야 소용없다. 몸이 말하고 기억이 말하고 생각이 말하고 있다. "당신 늙은 거 맞아"라고 말이다.
다만 늙음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오늘 발악하듯이 살뿐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산다'는 것과 '나이 든다'는 것의 정의를 새삼 들여다보는 아침이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왜 이렇게 살지?라고 자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면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늙어가는 거다. 받아들이고 나면 늙음도 죽음도 친구이고 같이 가는 동료다. 같은 길을 갈 때는 즐겁게 같이 가면 된다.
이런 제길, 그래도 정신줄만큼은 끝까지 맑게 붙들고 가야 할 텐데, 은근 걱정이 되긴 한다. 시계를 다시 본다. 지금은 7시 5분이다. 덕분에 아침글을 1시간여 일찍 보낸다. 이것이 예기치 않은 착각이 가져다준 여유, Sweet Serendipit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