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운세도 다 때가 있다

by Lohengrin

지역별로 약간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한반도는 지금 바야흐로 봄꽃의 향연에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지난 주말 꽃놀이라도 다녀오셨나요? 화려한 군무는 아닐지라도, 집 주변이나 동네 공원에 산책이라도 나가 척박한 보도블록 사이나 구부러진 가지 끝에서 산발적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들을 눈에 담아 놓으셨나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에는 고유한 때가 있습니다. 이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면 꽃은 중력의 섭리에 따라 떨어져 대지의 기운으로 되돌아갑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증명하듯, 질서를 가졌던 아름다움은 무질서의 상태로 환원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보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어디 꽃구경만 '때'가 있겠습니까? 시간이라는 숙명적 천형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은 시간의 선형적 흐름과 순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굴레는 인간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생태계의 다른 존재들은 시간의 흐름을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오직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수치화한 인간만이 다가올 소멸을 두려워하며 시간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막연한 공포를 달래기 위해 시간에 '윤회'와 '부활'이라는 단어를 입혀놓고 심리적 안심제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는 시간의 두려움을 안심으로 바꿔주는 진정제입니다. 자연의 순환 패턴을 눈치채고 숫자를 부여해 시간이라 명명한 것은, 유한함을 극복하고자 했던 영악한 인간의 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사회화' 때문입니다. 공동체라는 유기체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기화된 척도가 필요합니다. 같이 살아야 하기에 지킬 수밖에 없는 기본 전제가 시간인 것입니다. 공통된 시간을 정의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현대 문명으로 올수록 시간을 정의하는 간격은 점점 더 촘촘해집니다.


시간의 간격이 초 단위로 미세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의 간극은 좁아집니다. 서로의 시간을 세밀하게 공유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친밀해진다'라고 표현합니다. 서먹했던 관계가 촘촘한 시간의 공유를 통해 연인이 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순간순간으로 미분하여 정밀하게 계산하고, 그 기억들을 쌓아 적분하며 삶을 구성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명의 시간입니다.


존재마다 부여된 시간의 밀도는 제각각 다릅니다. 우리는 인간이 정한 기준에 맞춰 세상을 해석하지만, 눈에 보이는 산의 바위와 그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시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바위가 풍화되어 흙이 되는 시간은 천만년 단위의 지질학적 시간이며, 푸르른 잎과 화사한 꽃으로 대지에 색깔을 입히는 나무들의 시간은 길어야 수백 년 단위의 생물학적 시간입니다. 이에 비하면 인간에게 부여된 시간은 고작 100년 정도일 뿐입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이 짧은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합니다. 무수히 되풀이되는 자연의 순환 시간을 단지 몇 차례 겪다가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유한하기에 무한을 꿈꿀 수 있고, 유한하기에 지금 이 세상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밖에 펼쳐지는 화서(花序)의 순간들을 온 마음을 다해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년이면 또 꽃은 피겠지만, 그 시간을 다시 마중 나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기별, 계절별로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지역 별미가 되는 것도 그 계절의 에너지를 잡아채는 행위이며,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라는 선인들의 지혜 또한 뇌과학적, 신체적으로 최적기가 있음을 알아챘기에 할 수 있는 삶의 충고입니다. 모든 생명 활동에는 가장 효율적인 물리적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 치도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초조해할 것이 아니라 즐기면 됩니다. 주어진 시간에 맞게 움직이면 됩니다. 꽃이 피면 꽃을 즐기면 되고, 태양이 뜨거우면 잠시 피했다가 선선할 때 나오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날 때, 머물렀던 시간의 물리적 길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그 찰나의 멈춤을 우리는 '삶'이라 부릅니다. 생로병사와 애오욕(愛惡欲)이 점철되어 보이는 것은 오직 인간의 좁은 시계(視界)로 시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관점을 넓혀 대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고통조차 거대한 순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됩니다.


벌써 벚꽃 잎이 흩날리고 목련꽃은 갈색으로 산화되어 대지 위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꽃향기 사라지기 전에 깊은 심호흡으로 꽃의 정기를 폐부 깊숙이 집어넣어야 합니다.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방향의 화살과 같습니다. 지나가면 사라집니다. 그러니 놓치지 말고 지금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주가 허락한 짧은 유희, 시간을 제대로 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대를 지금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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