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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13. 2024

지금 이 순간, 선택은 나에게 달렸다

호모사피엔스의 물질문명은 동양에서 발원하여 서양으로 이동해 온 역사다. 지금까지 인간역사에서는 그렇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 세대에서는 서양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1760년대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경제생산성에 있어 동양은 서양을 압도했다. 산업혁명 이전인 1700년대 초만 해도 세계 경제생산 규모를 봐도 대략 중국이 30%, 서양 20%, 인도 20% 대였고 당시 전 세계 대도시 25개 중 9개가 중국에 있었고 서양은 5개밖에 없었다. 이런 추세가 산업혁명을 거치고 세계 경제가 재편된 1900년 초로 오면 세계경제 규모는 유럽이 60%, 미국 20%, 중국 7%, 인도 2%로 역전된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물학적 경제가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계생산 시스템을 이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생산시스템의 변화가 영국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중첩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아시다시피 산업혁명을 견인한 것은 석탄 에너지다. 석탄은 영국 산업혁명이전부터 이미 중국이나 몽골 유목민이 난방용으로 사용하던 재료였다. 실크로드를 가로지르는 역참마다 석탄을 난방용으로 제공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석탄을 캘 수 있는 지역은 동북부지방이다. 땅덩이가 넓은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역참마다 원활한 공급이 어려웠다. 반면 영국 런던 근교에는 석탄 탄광이 있었고 면직 방적기를 돌리고 탄광 갱도에 고인 물을 퍼내기 위해 사용하는 양수기를 돌리는데 석탄이 쓰였다. 그리고 양수기가 개량되어 증기기관으로 발전했다. 결핍이 창의력을 낳고 우연이 결합되어 혁명을 만들었다.


동양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를 서양에서 개량 발전시킨 것들은 부지기수다. 화약이 그렇고 종이가 그렇다. 인류 물질문명 뱡향의 물꼬를 바꾼 것들만이 그렇다.


금세기 들어서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문화까지도 동양에서 발원한 것이 서양에서 더욱 활발히 전파되어 주도권이 바뀐 것도 눈에 띈다.

인류 문명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철학에서부터 근대 유럽의 사상들이 현재 인류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고도의 복잡성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환으로 동양의 명상이 차용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60 - 70년대 히피문화와 함께 광풍처럼 불어왔던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의 뉴에이지 시대를 딛고 일어나, 80 - 90년대부터 실리콘벨리의 기업들이 회사 내에 명상룸과 명상 클래스를 운영하며 직원들의 마음 챙김(mindfulness)을 관리해 온 것이다.


"앞으로 뭘 해야 되지" "무엇이 되어야 하지" "그러기 위해서 무얼 준비해야 하지"라는 미래지향적 사고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하여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론의 일환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마음 챙김,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리는 대상은 현재, 바로 이 순간이다. 과거, 미래가 아닌 숨 쉬고 있는 바로 이 시간, 이 순간을 잡아채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호흡하는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공기가 코로 들어와 목구멍을 넘어 허파에 들어차는 경로를 따라가도록 한다. 심호흡으로 횡격막이 들리고 아랫배 근육이 작동하는 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함으로써 모든 생각과 행동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지나온 과거는 다시 오지 않으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해야 할 걱정을 내려놓고 나의 현재를 관찰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집중하는 생각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는 흐름인데 나는 누구이고 '나'라는 self는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숨 쉬는 한숨 한숨까지, 지금 이 순간을 관조하듯 지켜보면 편안함이 다가온다.


선택은 오직 내가 할 수 있다. 현재 이 순간, stay in the moment을 선택할 자유는 나에게 있다. 이 또한 다양성의 한 부분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잘못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지금 내 순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지켜보는 이유는 영적인 희열도 아니다. 그저 들여다보면 편안해지는 마음, 그래서 세상 모든 것들이 가치와 의미로 밝게 다가옴을 깨닫기 위함이다.


서양은 이미 티베트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모든 종교 서적을 번역하여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인류의 지성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공유하고 있다. 동양에서 발원한 경전조차 서양에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인류 문명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지 호흡 하나 관찰하는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두 눈 번쩍 뜨고 심호흡 크게 하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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