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들여다보기
10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다. 10월 한 달은 연차휴가를 냈다. 누구에게나 올 시한부 직장생활이다. 나에겐 이제 왔을 뿐이다. 場은 옮겨가는 것이지만 한 場을 끝낸다는 것에는 어떤 매듭이 필요하다. 출근을 안 하는 시간까지의 심정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
시간의 습관은 여전히 작동한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의 두 번째 날의 자유를 얻었음에도 그 자유를 이불속에서 누리는 것은, 아직은 사치인 듯하다. 오늘도 눈을 뜨고 머리맡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5시 27분이다. 이미 휴대폰 알람시간을 지워버렸음에도 신체 알람은 여지없이 이 시간에 눈을 뜨게 한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 이 시간에 눈이 떠지는 경우는 주말 새벽 골프약속이 있을 때 밖에는 없었는데.
멀뚱멀뚱 머리가 맑아온다. 이불속에서 온갖 상상의 뒤엉킴들이 이어지는 짧은 혼돈이 온다. 망설임 없이 일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벌떡 일어나 출근하던 평상시 루틴대로 일단 움직인다. 침구류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들러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려다 잠시 멈춘다. 평상시 루틴대로라면 양치하고 면도하고 변기에 앉아 메일 체크하고 샤워하고 헤어드라이하고 옷을 입는 것이 정해진 순서다. 면도와 샤워를 하지 않고 간단히 세수만 한 이유는 오늘도 점심식사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기 전에 말끔히 목욕재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에 계신 분과 지난달에 약속되어 있는 점심식사다. 이젠 누가 불러주면 "감사합니다"하고 기꺼이 나가야 함을 알고 있다.
서재로 자리를 옮겨 데스크톱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오늘 하루 일정을 체크하고 시간대별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대충 그려본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 종이 틀림없다. 나의 하루를 가만히 지켜보면 그렇다. 그렇다고 짜인 각본처럼 시간을 할당해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시간이 허비되는 것을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책상에 앉아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이 부팅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모니터가 하나밖에 없어 사무실에서 3개의 모니터를 놓고 보던 환경과 달라 조금 불편한 감이 있다. 그래도 화면분할을 해서 국내 포털사이트 화면도 한 화면에 담아놓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톱은 막내 녀석이 사용하던 것이라 컴퓨터 운영체계 자체가 마이크로소프트 에지로 돌아간다. 나는 회사에서 구글 환경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던 터라 조금 익숙하지 않아 화면을 구글로 들어가 평소 작업환경으로 조정한다. 노트북도 막녀녀석이 시카고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가져가버린 터라 곧 새로운 것으로 장만할 예정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쌀쌀하다. 영상 15도인데. 의자에 걸쳐놓은 카디건을 걸친다. 그렇게 시간의 환경에 적응하고 기온의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 했던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자세가 순간을 결정하고 시간을 결정하고 하루를 결정하며 미래를 결정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긍정'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침에 눈뜸에 감사하고 호흡하며 바깥공기의 쌀쌀함조차 느끼고 있는 감각의 살아있음에 고마워하는 일이다. 작은 것, 하찮은 것, 평상시 전혀 생각의 선상에 올리지 못했던 움직임 하나하나조차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력감, 퇴직을 했다는 상실감에 빠져들면 그 심연은 너무도 깊어 빠져나오기 힘듦을 안다.
이 작은 생각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지금 나에겐 주어진 시간이 기쁨이고 설렘이다. 살아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상심의 행복이다. 가진 것과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는 오로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너무도 뻔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것이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자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갈망하던 시간이었음을 불현듯 아는 순간,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음도 동시에 깨닫는다.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인가?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이 말이다. 창밖으로 아파트 마당을 쓸고 있는 경비아저씨의 빗자루 소리가 쓱쓱 들려오고 아파트 뜰 나무에 앉은 까치가 짖는 깍 깍 소리, 멀리 지나는 자동차의 도플러 효과음조차 생명의 근원을 알려주는 원천이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들여다보기가 가능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시간에 대해 긍정의 최면을 걸고 주문을 걸면 세상은 긍정과 행복의 공간으로 바뀐다.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면서 가까이에 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마음을 정하기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참 쉽지 않다. 마음먹기가 말이다. 오늘도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나에게 생겨버렸다. 긍정의 주문을 외며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