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보는 두 가지 시선
10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다. 10월 한 달은 연차휴가를 냈다. 누구에게나 올 시한부 직장생활이다. 나에겐 이제 왔을 뿐이다. 場은 옮겨가는 것이지만 한 場을 끝낸다는 것에는 어떤 매듭이 필요하다. 출근을 안 하는 시간까지의 심정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
정년퇴직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부터 인생을 즐겨라"라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과 "퇴직한 후에는 다른 할 일은 있고? 이제 어쩌냐 ㅠㅠ 우울증도 오고 사람이 피폐해진다는데 뭐라도 할 일을 찾아봐"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다.
두 개의 시선이 확연히 다르다. 모두 자기가 현재 있는 환경과 위치에서 바라보는 생각들의 반영이다.
정년퇴직을 긍정과 부러움의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 종사자다. 정년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물음을 항상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조차 내년을 장담할 수 없으니 회사를 끝까지 다닌 사람에 대한 부러움으로 작동한다. 직장인들의 꿈은 어떻게든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이라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반면 정년퇴직을 걱정의 눈빛으로 넘겨다보는 사람들은, 이미 퇴직을 해서 그 길을 걸어가 본 사람들이 많다. 자기가 막상 당해보니 그렇더라는 조언이다. 나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고마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너는 나처럼 되지 말라는 다독임이다.
이 두 시선의 바탕에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의 해답을 같이 담고 있다. 정년퇴직을 기점으로 정기적인 수입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가? 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결국은 먹고사는 원초적 행위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남은 인생 먹고 살 준비는 되어 있어? 되어 있으면 남은 삶이 그럭저럭 행복할 수 있을 거고,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할 처지라면 불행의 시작점일 수 있다"라고 하는 양비론의 경계선이다. 너무 인생을 바닥으로 내려놓는 거 아니야?라는 시선으로 작동할 수 도 있다. "아니 어떻게 인생을 밥만 먹고사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지? 이것저것 다른 일도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면서 사회에 공헌도 하고 삶의 행복과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근본 바탕은 먹고사는 문제와 맞닿아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눈앞의 현실이, 깔고 앉아있는 아파트와 달랑달랑하는 통장 잔고와 결혼시켜야 하는 자녀들이 있는 경우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것이다. 서울시내 아파트 하나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으면 뿌듯할 것 같지만 퇴직하고 나면 크게 소용이 없다. 그저 위안일 뿐이다. 팔아서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그때서야 가치로 환원되는 것이지, 부동산으로만 존재하면 당장은 재산세 내는 흉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팔 수 도 없다. 어디서 자라고? 결국 딜레마다. 아파트는 먹고사는 문제의 마지막 보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택연금으로 저당 잡히거나, 팔고 작은 평수의 집으로 옮기거나 시골로 내려가서 남은 현금을 생활비로 충당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거다. 그것도 전세가 아닌 자기 소유일 때 얘기다.
현금은 없는데 꼬박꼬박 세금도 내야 한다. 자동차세, 아파트 관리비,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 심지어 휴대폰과 인터넷 데이터 요금도 있다. 평소에 안 보이던 돈 나가는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 새듯 돈이 나가는 것이 보인다. 수입이 없는데 정기적으로 통장에서 돈이 샌다. 보충할 수 없으니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 곧 바닥을 보일듯하여 불안감에 휩싸인다. 건강보험료 내라는 청구서를 받아 들면 부하가 치민단다. 국민연금 받아봐야 차 떼고 포 떼고 달랑 용돈 몇 푼 안 남는단다. 받았다가 다시 뺏기는 기분이 든단다. 이쯤을 경험하게 되면 은퇴자들이 슬슬 재취업을 기웃거리게 된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
닥쳐보고 당해봐야 그때서야 알게 된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아무리 듣고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해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 상황에 맞닥트리고 그 현실을 헤쳐나가고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을 '산다'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설계와 계획은 잘 되어 있는가? 잘 되어가고 있는가? 계획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님도 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임도 안디. 상황이 조건을 만들고 결과를 만들어 나감도 안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함도 안다. 무슨 일이든 흥미진진하게 혹은 긴장되어 만나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