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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Nov 18. 2024

신 1

김운경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재미없다. 진짜 재미없다. 지금까지 쓴 것 중에 제일 재미없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4년. 들인 시간이 아까워 이제껏 붙잡고 있지만 반년 전에라도 버렸어야 했다. 그때라도 깨끗이 인정하고 다른 걸 썼더라면 이미 다른 작품을 완성했……을지는 모르겠다. 김운경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리스도여,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한 번만 더 영감을 내려주십시오. 그…… 지금껏 약속 안 지킨 건 진짜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이번엔 진짜! 그리스도 당신을 믿겠습니다. 저 한다면 하는 거 아시죠? 그럼 부탁드려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운경은 ‘새 문서’를 누르고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렸다. 자, 이제 레전드 작품이 탄생할 차례다. 하지만 손가락은 김운경의 지시를 기다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방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뿐이었다.


이쪽이 아닌가. 김운경은 다시 눈을 감았다.


‘부처여,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한 번만 더 영감을 내려주십시오. 지금껏 약속을 안 지킨 건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이젠 진짜! 부처 당신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중용!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그런데 제가 지금 좀 급하거든요. 당장 좀 도와주시겠어요? 부탁드릴게요.’


그래, 사실 예전부터 예수보다는 부처가 더 끌렸다. ‘신의 아들’보다는 ‘인간 성인’이 더 있을 법하지 않은가.

김운경은 두 손을 자판에 올려두고 손가락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김운경의 지시를 기다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렇게 기도하면 새 작품이 술술 써졌는데.


“하아아아.”


김운경은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책상에 엎드렸다. 이렇게 끝인가. 화려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발표한 네 작품이 모두 베스트셀러 1위를 찍고 18개국에 수출되었다. 네 작품 모두 영화와 드라마가 되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서울숲이 훤히 보이는 아파트와 미니쿠퍼, 하와이 해변에 세컨 하우스도 샀다. 김운경은 글을 쓰는 한 이런 나날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천둥처럼 내려치는 법. 4년 전부터인가. 김운경의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작을 내지 않으니 기존 작품들의 판매고도 줄었다. 마지막으로 인세 입금된 게 42만 원이던가. 그간 번 돈은 이럴 줄 모르고 펑펑 써버렸고 그나마 남은 건 삼성전자와 현대차 주식으로 날렸다. 이제는 진짜 신작을 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놨다가는 ‘김운경 감다뒤’라는 평이나 받을 것이다.


김운경은 화장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예수고 부처고 있을 리가 있나. 시간만 버렸네.”


솔직히 말하면 김운경은 부처고 예수고 믿을 생각이 없었다. 신? 내 눈에 보여야 있다고 믿는 거지, 실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존재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스티븐 호킹도 말하지 않았나. 신은 없다고.


볼일을 본 후 김운경은 주방으로 갔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믹스커피를 컵에 담았다. 김운경과 달리 커피포트는 금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김운경은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 주머니에서 폰이 울렸다.


‘황미영’


화면에는 김운경의 담당 편집자의 이름이 떠 있었다. 글을 못 쓰고 있는 작가에게 담당 편집자란 구몬 선생님과 같다. 4년간 마감을 다섯 번이나 어겼다. 이제 마감이 2주 남았으니 독촉 전화가 올 만도 하다. 김운경은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메일 보셨어요?”


황미영 편집자는 인사도 생략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네?”

“메일 좀 봐주세요, 지금.”


김운경은 폰을 스피커 모드로 만들고 메일을 열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작가님의 네 작품 영미권 판권을 가지고 있는 리트머스 출판사에서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중 두 작품이 표절이 아니냐는 건데요(하단에 원문을 첨부합니다), 메일 분위기가 많이 냉랭하네요. 근거 자료들을 저희도 검토했는데…… 작가님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리트머스 출판사는 이런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빠르게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계약사들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리트머스사에서는 내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도 문서 작업을 해야 하니 오늘 내로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꿈쩍하지 않던 김운경의 손이 이제야 저절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 작품이 표절이라고? 그럴 리가! 하지만 메일의 분위기로 볼 때 황미영 편집자도 김운경을 의심하는 듯했다. 김운경은 하단에 첨부된 근거 자료를 읽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작가님?”


너무 긴장했기 때문일까. 편집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김운경은 폰을 떨구고 말았다. 폰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김운경은 다급히 상체를 숙여 폰을 주우려 했다.


아…….


김운경의 머릿속에 6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요가원에서 허리를 다친 날, 그날도 이런 느낌이었다. 허리 안쪽에서 뭔가가 파열되는 느낌. 곧 허리가 뜨거워질 거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거다. 아마 몇 주간은 못 걷겠지.


김운경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손과 무릎으로 바닥을 짚었다. 지금 비명을 질렀다가는 반동으로 디스크가 찢어질지도 모른다. 


“작가님? 여보세요?”


편집자가 김운경을 찾았지만 김운겨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겨우 천장을 보게 되었을 때, 김운경은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김운경은 뻑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메일 봤어요.”

“작가님, 들리세요? 여보세요?”


김운경은 팔을 뻗어 폰을 몸 쪽으로 끌어왔다. 액정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고 마이크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톡으로라도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화면 어디를 터치해도 소용이 없었다. 황미영 편집자는 “작가님? 듣고 계세요?”를 몇 번 더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황미영 편집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기사 떴습니다. 전문 보내드립니다.’

‘베스트셀러 김운경 작가 표절 의혹, 드라마·영화는 어떡하나’


전문을 볼 수는 없었지만 미리보기 메시지 덕에 무슨 내용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김운경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제발, 그리스도여, 부처여, 저 좀 도와주세요. 이번에 도와주시면 진짜 약속 지킬게요. 제발 저 좀…… 한 번만요.


“저 기도를 믿으십니까?”


김운경의 옆에서 부처가 물었다. 예수는 빙긋 웃었다. 예수와 부처는 한참 전부터 이 집에서 김운경을 보고 있었다. 김운경이 오늘 의자에 앉아 기도했을 때도, 네 번째 작품을 쓰려고 할 때, 세 번째·두 번째·첫 번째 작품을 구상할 때, 운전면허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요가를 하다가 다쳐 움직이지 못할 때, 퇴사, 면접, 수능……. 부처와 예수는 늘 김운경의 곁에 서서 기도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김운경은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기도를 들어준 건 아니었지만 두 신은 때로 화가 났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든가, 필요할 때만 신을 이용하려 할 때. 그래서 둘은 4년간 김운경을 무시했다. 다행히 김운경은 글에 재능이 없었고 신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없었다.


예수와 부처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둘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

신은 자비롭지만 때로 변덕을 부린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는 것은 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원래대로’, 준만큼만 돌려받는 것 또한 신이 베푸는 자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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