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라 Dec 28. 2019

반디와의 10년

7. 중학생 마리


 7. 중학생 마리 (1)


  피터의 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피터에게는 친척이 없지만 단 한분 고모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피터의 부모님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아서 그간 왕래가 없이 살았지만 피터는 장례식에 가고 싶어했다. 최근들어 우울한 피터를 보니 어느 덧 가을이 오고 있었다.    

  피터는 유난히 가을을 탔다. 가을이면 마음을 잡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날도 있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는 항상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피터에게 계절병은 그렇게 찾아 왔다가 슬며시 가는 불치병이어서 그저 막연한 외로움을 계절 내내 앓았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모는 피터에게 관대했다. 가을에는 가급적 피터의 자잘한 부탁들을 군 말 없이 들어주었고 과한 잔소리를 삼갔으며 마음의 상처가 될 일을 만들지 않았다. 피터가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낯선 고모님의 장례식이 아니라 세상에 몇 없는 피붙이의 흔적을 보고 싶은 것일게다. 피터는 이모와 함께 멀리 마산으로 장례식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마산에 다녀오는 이틀 동안 마리가 반디를 돌보았다. 요섭과 나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밤 11시가 거의 다 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책임감 강한 마리가 반디를 잘 돌볼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마리에게는 무엇을 맡겨도 성실히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과연 마리는  반디를 잘 보살폈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TV를 켜놓고 갔으며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왔다. 사료를 먹지 않으면 일일이 손으로 한 알씩 칭찬하면서 먹였고 간식으로 햄도 삶아서 주었으며 물그릇에는 깨끗한 물을 자주 갈아 주었다. 산책은 잠시 거르면 되니까 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데리고 나갔다가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꽤 먼 길을 걸리다가 안다가 하면서 힘들게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밤에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 재우려던 마리의 마음을 몰라주고 나에게 와서 잠을 잔 반디는 마리를 섭섭하게 했다. 반디에게는 마리가 항상 5번째 였다. 그 순위를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그게 이상했다. 어떻게 알까. 마리가 5번째라는 것을. 

마리는 반디를 이틀 동안 잘 돌보았으므로 적절한 상을 받을만했다. 이모는 마리에게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했지만 마리는 괜찮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마리는 눈에 띄게 알뜰했다. 용돈 주는 것을 착착 모으고 어떤 것을 구매하든 신중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마리는 모든 것에 절제하는 습관이 있다. 그게 용돈절약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친구들을 사귐에도 선뜻 나서지 않았으며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그래서 뭐든 오래 걸렸고 한번 갖게 된건 오래 갖고 있었다. 

마리의 서랍을 열어보면 오래전 물건들까지 그대로 정리되어 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쓰던 셈 카드, 4학년때 쓰던 백지도 모형을 비롯해 지난 5년간 반디가 미용하고 나서 달고 왔던 꽃 고무줄, 하다못해 팬티상자와 쇼핑백들도 다 모아 두었다. 뭐든 없을 때 마리에게 말하면 웬만한 것은 해결된다. 버려야 할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나와 마리는 천성적으로 달랐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상관없는데 사람을 버려야 할 때가 문제이다. 나는 친했던 애들과 멀어졌던 기억을 통해 이것이 인생의 보통의 진행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버리지 못하면 버려지는데 그걸 마리가 견뎌내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

살다보면 사람을 버려야 할 때가 있고 버려질 때도 있다. 그때는 함께 버려야 마음의 상처가 덜하다. 내가 버리지 못하면 버려졌을 때 더 상처 받는다. 마리에게 버리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디와의 10년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